다크 챕터
위니 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한길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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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챕터>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소설이다.


예부터 지금까지 여성은 성폭력의 그늘에 짙게 그리워져 있었지만, 피해자가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감추려했다. 우리가 살면서 부끄러울 줄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가해자가 범죄를 저질러 놓은 사건을 피해자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워해야 하는가? 작가 위니 리의 말을 듣고는 이전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거기에 성폭력까지 한다. 견딜 수 있을까?

위니 리의 소설을 읽으면서 성폭력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한다는 말은 어쩌면 피해자에게 폭력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피상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이 아프고 나서야 진심으로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소설 전반부 하버드 출신 소설속 이름 비비안이 벨파스트에서 홀로 하이킹을 한다. 유랑민 16살의 조니가 그녀를 타켓으로 성폭력을 가한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더이상 거칠게 대항하지만 일단 살아야하니 가해자가 원하는 대로 응한다. 그 이후 비비안의 삶은 예전의 비비안이 아니었다. 지리한 1년간의 법정 싸움과 성폭력의 고통과 상처때문에 비비안은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나날을 보내며 그런 자신을 서서히 극복해 나간다.


작가는 비비안을 통해서 성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아일랜드 유랑민 가해자 조니의 생각과 생활도 같이 엮어내려간다. 두 관점으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글을 쓰려고 한 흔적이 보였다. 피해자 입장에서 가해자의 처지가 되어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해자를 생각하는 것조차 너무나 힘든 일일텐데 말이다. 이 힘든 과정을 극복하는 저자를 보면서 얼마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주위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직접 고통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백프로 헤어려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그들에 의해서 단단하게 형성된 자존감과 자기애가 그녀를 살린 것 같다. 그녀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 본인과 더 많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치유와 희망을 주고 있다.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뭔가 조치가 취해질 테니. 그러나 정말로 쉽지 않은 문제이다. 내 문제를 공개해서 이중으로 고통을 당하는 자가 바로 피해자이기에 말처럼 쉽게 신고할 수 없을 것이다. 비단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 깔려있는 문제가 아닐까? 법은 멀리 있고 보복성 행동은 즉각적이며 사회적인 인식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렇게 관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후반부 비비안 리가 고통을 극복해 과정에서 눈물이 났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다. 부모님은 아직까지 사건에 대해 모른다. 게다가 부모님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는 건 그녀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선택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쓸모 있는 사람, 생산적인 사람, 무언가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 세상을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는 상처투성이 난파선이 아닌(500쪽).



한때 어떠한 충격으로 자기 생을 끊은 사람들.

이런 마음일 것이다. 내가 쓸모 없는 사람, 생산적이지 않은 사람,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세상을 목적 없이 떠돌아다니는 상처투성이 난파선처럼 말이다.


자신의 삶이 중요한 만큼 남의 삶도 그러하다. 그 고통이 엄청나다는 것을, 한 인생이 여지없이 무져졌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낀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까?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면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인성교육 뿐만 아니라 예방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일이 터진 후 수습도 중요하지만 어려서부터 서로의 성을 존중하며 같이 공존해 나가는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전문 작가는 아니지만 본인의 이야기를 펴낸 첫 장편 소설 <다크 챕터>가 한편으론 살짝 아쉬웠다. (내심 더 강한 필력을 원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와 여성의 성 인권에 대해서 정말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본다. 그동안 억눌렀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변화해야 하며 사회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성, 젠더는 그냥 다를 뿐 차이를 두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진심으로 고대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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