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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확실히 초기작이라 그런지, 더 모가 나 있다. 찔러오는 곳이 더 아프다. '내 아들~'에서도 심장이 저릿하고 목이 답답했지만, 이 소설집은 목을 옥죄는 느낌이었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해서 아마 이 소설집부터 읽었다면 이 작가의 글은 아마 연달아서는 못 읽었을 것 같다. 가독성이 좋아서 하루만에 다 읽었지만, 다시 펼쳐볼 용기도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을 엄두도 안 난다. '나도 숨 좀 쉬자'고 뇌 한 부분이 짜증을 낸다.
이 소설집이 2002작이고, '내 아들~'이 2008년 작이니 6년만에 결이 훨씬 부드러워진 것이 눈에 보인다. 맛은 변하지 않았지만, 식감이 변했다고 할까. 어느 쪽이 우위인지 말할 수 없는 것은 젊음의 상큼함과 중년의 원숙함을 비교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재밌게('재밌게'라는 말이 이 소설집에 쓰일 수 있긴 한지 모르겠지만!) 읽은 단편은 '나릿빛 사진의 추억'과 '호텔 유로', '성스러운 봄'이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표제작이지만 가장 마음에 안 들었다.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이 이 소설집의 전체 주제인 듯하고, 그 주제를 가장 친절하게 쓴 글은 '피투성이..'이지만, 이 작가에겐 친절이 미덕이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성스러운 봄'이야말로 표제작에 어울리는 글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