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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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책을 좋아하여 읽고 싶어하고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독서량은 많지 않았어요

주문량은 어마어마 했구요

독서의 관심을 주문량으로 따진다면 어마어마 했겠지만요

그러다가 올해부터 지인을 통해 독서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참여를 하게 되어 책으로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구나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다른 독서 모임도 가지게 되어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음.... 책을 읽어야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수 있다, 듣는 것도 좋지만 내가 책의 내용을 알아야 할 말도 생긴다는 점을 깨닫고 강제성을 부여 하게 되었죠

다독이나 속독은 못하지만 책 읽기를 시작 했어요

그렇게 제 독서 생활이 시작 되고 유명도서를 찾고 나보다 먼저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의 글도 읽게 된 게 지금의 서평까페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그렇게 독서모임을 가지다가 어느 날 '이방인'이 도서주제로 선정이 되었고 고전문학의 장벽이 느껴졌달까요? 민음사?어렵다? 그러한 공식이 의도치 않게 세워져 머뭇 거리다가 먼저 읽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를 궁금해하며 찾게 되었죠 이방인의 리뷰를 통해 어떤 도서가 보다 읽기 편한지 찾기 위함도 있었어요

그 때 '이정서'분의 이방인을 알게 되었고 번역과 오역의 사이 그리고 대립.

이방인의 도서 내용보다 그 내용이 더 들어왔고 그러다 의도치 않게 내용도 파악이 되었어요

책을 읽었다기 보다 그 내용으로 독서모임을 참여 하게 되었는데 저도 새로이 알게 된 내용으로 말할 수 있는 권리도 가지게 된 셈이예요 책도 읽지 않고 참여를 하였다는 부끄러움은 잠시였죠

새움의 이방인과 민음사의 이방인 두 권 다 소장하게 되었구요


그러다 어린왕자로 부터 온 편지의 소식을 접했고 지은이가 '이정서'분이라셔서 더더욱 손이 갔어요

읽지는 못했지만 친밀한 관계라 여겼던 걸까요?

익히 알고 있는 어린왕자의 편지 라고 하여 좀 쉽게 다가올까 했습니다.

뭐라고 했을까 어떤 내용이 있을까 많이 궁금했어요


그런데 제 생각과 다른 영역이었어요.


어린왕자의 번역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주인공 '나' 에게 누군가 보내온 어린왕자의 원고?번역의 한 꼭지 부분?으로 시작해요.

편집자 소담과 주인공 나 이정서가 어린왕자의 원고를 네이트온으로 주고 받는 대화 형식으로

처음부터 어린왕저 번역에 응한 것은 아니었다.

편집자 소담은 하나씩 하나씩 주인공인 나에게 어린왕자 말고도 할 일이 많은 나에게


어린왕자가 미국에서 영어로 먼저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하며 미끼를 던지면

나 이정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물었다.

어린왕자가 영어도 불어만큼 잘했나봐요? 하면서

하나의 일화를 소개한다.

출판업계에서 일어나는 리뷰 마케팅의 소개도 잠깐 나왔다.


편집자 소담은 소스를.. 아니 미끼를 계속 던진다

어린왕자 속 헌사는 존댓말이었을까요? 반말이었을까요?

이 당시의 이정서의 생각과 같았다.

존댓말?반말? 그게 중요 했을까?

나도 어릴때는 나이 많은 오빠 삼촌들에게 반말을 했던 것 같은데 어리면 다 용서 되지 않았던가

그게 뭐가 대수냐 묻는 이정서에게

이방인 이정서 때문에 그러한 질문이 오는 것 같다고

이 말이 이정서에게 불을 지핀 것일까 가장 유명한 번역서와 잘 팔린 번역서 그리고 불어원서와 영어번역서까지 사오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이제 부터 시작이다


이 책의 지은이 이정서는 이방인의 이정서가 필명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번역한 이방인을 내기까지 아니 내고 나서 엄청난 곤욕을 치르었고 그 원인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닌 오역을 의역이 아닌 직역을 해야 함을 무수히 강조 하였다.


고전문학을 읽었음에도 그 내용을 잘 모르겠고 어려웠다면 그건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나는 그냥 책을 읽는 자체로 책의 내용을 앎 자체로 만족을 해왔고 이게 오역인지 의역인지 직역인지 궁금해 한 적이 없었는데 이를 글로써 읽으니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서 무겁게 다가왔다.

사실 그러잖은가 같은 나라에서 같은 나라 사람이 나눈 대화에서도 말이 옮겨지면 와전되기 마련인데

외국어를 자국어로 번역하기 까지 100%의 번역본이 있을 수 있을까?

이방인의 오역에 관한 글을 읽었을 때에도 그에 따른 리뷰들을 보았을 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누구든지 자신이 번역한 책에 대해 잘못이 지적 되었다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심지어 대형 출판사에서 이러한 논란이 있음에도 엮은이가 변하지 않음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깊은 내막이야 어찌 알랴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긴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일본서적의 경우 주로 올라오는 엮은이가 있는 것 같다.

그 엮은이가 잘했내 못했네를 따지는 글도 종종 본 것 같다.


이 책에서의 이정서는 어린왕자를 1장씩 번역의 작업을 하며 편집자 소담과 의견을 나눈다.


이렇게 번역을 해 봤는 데 어떤 것 같냐고 어디서 문제가 보이느냐고


상하관계가 분명한 관계에서 소담은 무조건 네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에 자기 의견을 피력을 하고 문제점을 제시하면 이정서는 무조건 내 말이 맞아 하는 부분도 있고 음 그래? 수정해 볼게 이건 어때? 하며 상호 존중보완이 되는 듯한 대화 형식을 가졌다.

이방인 말고도 노인의 바다 번역의 관한 글과 사라에 대한 책 소개도 잠깐씩 나왔는데

책의 견문이 좁은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부분이었다.. 노인과 바다도 아직 안 읽었단 말이예요 ㅠ

순수하게 어린왕자가 보내온 편지를 읽고 싶었던 나는 어린왕자 번역의 과정을 보게 되었다.

번역이 이렇게 어려운 거란 말이다 독자들아

이 말이 하고싶은 걸까...

알겠다고요 ㅠㅠㅠ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이 책을 읽은 후 느낀 점은 이정서의 어린왕자와 집에 있는 어린왕자를 비교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귀여운 삽화에 읽기 좋아 보이는 번역의 도서가 가독성이 좋은지, 직역에 가까운 번역의 이정서 어린왕자가 가독성이 좋은지 두 도서가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이방인보다 먼저 어린왕자를 읽어볼 것 같다.

우리는 단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거야 절대로 필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더 이상 뭔가를 알기 위해 시간을 쓰지 않아.
그들은 가게에서 전부 만들어진 것들을 사지, 하지만 친구들을 파는곳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를 가질 수 없어 만약 네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이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해할 어른은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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