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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평점 :
뉴스에서 사건 사고를 접할 때마다 곧잘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대체 왜?'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그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가해자 두 명은 사건이 일어난 그 자리에서 자살을 했다. 살아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내고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예방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니 우리들은 가해자들의 생각을 제대로 알아낼 수 있을까?
학교라는 집단은 참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작은 사회라고도 할 수 있지만 기막히게 폐쇄적이기도 하다. 그곳에 적응하기까지 꽤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잘 적응하고 사회화를 배운다. 헌데 만약 그 중에서도 끝까지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 있다면. 선천적으로 자신의 행동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아는 능력을 타고 났다면. 자신은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며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을 한다면.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세상에 부글거리며 끓는 분노를 가지고 있다면. 폭탄과 총으로 사람을 심판해버린다는 상상을 감히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런 인물이 다니고 있는 학교는 어떠한 결과를 안게 될까? 만에 하나, 학교에 이런 인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인물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는 강력한 어떤 동기가 필요하다. 콜럼바인 고등학교에는 그런 인물이 함께했다. 강력한 우울을 지닌 존재. 폭발적으로 폭주하는 에릭과 깊은 늪에 가라앉아 있는 딜런은 서로에게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콜럼바인 사건은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콜럼바인 사건은 워낙 유명했던 일이기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정도의 정보를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던 중 아주 우연히 수 클레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접했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가해자의 부모가 사건과 관련된 책을 냈다는 것에 제일 먼저 놀랐다. 많은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이 그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런 가해자를 낳은 부모의 입장에서 어떻게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 책의 핵심은 가해자인 아이들이 '자살'을 했다는 점이었다. 정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에릭과 딜런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만드는 시사점이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죄가 씻겨지는 것을 절대 아니다.)
<콜럼바인>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건이 있은 직후, 많은 사람들은 사건의 원인을 궁금해했다. 하지만 가해자가 죽으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예측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왕따를 당했을 것이라는 것부터, 고스족이었을 것이라는 짐작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에릭과 딜런은 그 범주에 들어가지지 않았다. 인기 많고 문학작품을 가까이하는 에릭과 어렸을 적엔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리했고 학업성적이 뛰어났던 딜런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그렇게 잔인한 상상으로 가득 차 있을 줄은 그들의 부모도 알지 못했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객관적 정보를 가지고 그 사건 주위에 있었던 잘못된 점들을 뾰족하게 지적한다. 경찰의 잘못에서부터 사건을 이용해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려 했던 이들의 잘못까지 가감없이 밝힌다.
콜럼바인 사건이 학교 테러사건의 시발점이 되면서 많은 사건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를 따라하는 모방 범죄도 상당히 많았고, 복잡한 사건의 경위가 그랬듯 굉장한 뜻을 품은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소중한 저널리즘이 나오게 된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또한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가독성이 뛰어나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읽히는 책이었다. 긴 연휴동안 '나와는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또하나.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게 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을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잘한 선택과 잘못된 선택의 구분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에릭과 딜런의 선택이 잘한 선택인지 잘못한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나는 감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선택은 참으로 슬픈 선택이었다. 그들에게도, 콜럼바인 학교 학생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