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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새벽빛으로 가득한 시간들 사이 이어진 전화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나는 신경숙 소설가가 작년에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시작했던 그 초여름에서 일년이 지나 책을 펼쳤다.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너무 술술 넘어가서 몇 번이고 앞장을 들춰보게했다. 그래서 책 속의 풍경들에 더욱 몰입이 되었다. 때때로 나는 윤이기도 했고 명서이기도 했으며 미루이기도 했고 단이기도 했다. 그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나 역시도 청춘이었기 때문이겠다.
첫 문장을 쓰기 전, 신경숙은 하나의 약속을 했다. 새벽 세시에 깨어나 아침 아홉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겠다는, 그 동안 이 소설에 집중하고 몰입하겠다는 약속. 그래서 이 책은 새벽향기가 물씬 풍기고 새벽빛이 짙고 새벽공기처럼 차면서도 곧 떠오르는 햇살처럼 따뜻하다. 온통 새벽의 풍경들이 짙은 배경에 윤이와 단이 명서와 미루는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과 섞이던 공기들 틈으로 은은한 새벽빛이 툭툭 터져 눈이 시리곤 했다.
처음은 팔년 만에 걸려온 이른 시간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한다. 거기, 이야기를 끌어나갈 두 주인공인 윤과 명서 사이 늘어져있는 전화선을 볼 수 있다. 팔년만의 통화에도 만난 지 얼마 안 된 듯 어디야? 하고 묻는 윤의 물음에 명서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대답한다. 윤 교수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그 소식으로 하여금 윤은 폭설 속의 풍경을 떠올리고 윤 교수와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고 그러다 명서와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오늘을 잊지 말자-고 말했던 그의 말대로 윤은 '오늘'을 기억하고 있다. 이 소설의 반을 이끄는 갈색노트를 건네받았던 그 '오늘'을. 그러다 명서가 건네 온 한 마디, "내.가.그.쪽.으.로.갈.까?" 하지만 윤은 "내.가.알.아.서.할.게" 라고 답한다. 전화를 끊고 병원을 가기 위해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윤이 저도 모르게 책상 쪽을 돌아다보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이 소설에는 끝맺음이 아닌 나른한 새벽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온점들이 찍혀있다. 흐릿하면서도 뚜렷한 그 말들로 그들은 서로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숨.을.쉰.다 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소재들이 많았다. 창문을 열면 고개 내미는 백합들이라든지, 다리를 꼬리로 감아오는 에밀리라든지..역동적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숨을 쉰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소한 몸짓들이 그려졌다. 반면에 미루의 걸음걸이는 숨소리가 약했다. 여전히 어깨를 안으로 오므리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심장을 들여다보며 걷는 듯한 걸음걸이(119쪽) 로, 마치 무언가를 지고 가는 듯 윤에게 걸어오던 미루. 두 가녀린 어깨에 지워진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탓인지 고개를 숙이던 미루. 그것은 복선이었다.
우.리.는.숨.을.쉰.다 책장을 넘기던, 에밀리의 털을 쓰다듬어주던, 윤의 신발끈을 묶어주던 미루의 손은 화상을 입어서 쭈글쭈글한 손이다. 그래서인지 ‘손’에 대해 세 사람이 이어쓰기를 하던 장면이 있었다. 신경숙은 가능한 시대를 지우고 현대 문명기기의 등장을 막으며 마음이 아닌 다른 소통기구들을 배제하고 윤이와 단이와 미루와 명서라는 네 사람의 청춘들로 하여금 걷고 쓰고 읽는 일과 자주 대면시켰다고 했다. 풍속이 달라지고 시간이 흘러가도 인간 조건의 근원으로 걷고 쓰고 읽는 일을 생각했기 때문에.(377쪽) 그래서 그토록 윤이 도시를 걸었고, 단이 그토록 윤에게 편지를 썼고, 명서가 갈색노트를 채웠고, 미루가 우.리.는.숨.을.쉰.다를 읽었을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은 업어주고 업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설의 초반에 윤교수가 말했듯(아래 붙임 참조)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며 세상이라는 강을 건너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기 위한 전화벨들이 새벽마다 울린다.
[붙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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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들이네.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 나르는 자들이기도 하지. 거대하게 불어난 강물 속에 들어가 있는 운명을 지닌 자들이란 말이네. 강물이 불어났다고 해서 강 저편으로 아이를 실어 나르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네, 강을 가장 잘 건너는 법은 무엇이겠는가?
(중략)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 함께 아이를 강 저편으로 실어 나르게. 뿐인가. 강을 건너는 사람과 강을 건너게 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네. 여러분은 불어난 강물을 삿대로 짚고 강을 건네주는 크리스토프이기만 한 게 아니라 한 사람 한사람이 세상 전체이며 창조자들이기도 해. 때로는 크리스토프였다가 때로는 아이이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를 실어 나르는 존재들이네. 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기게.
-67쪽 윤 교수의 강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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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에서 윤은 이전에 윤 교수의 강의에서 들었던 바로 이 크리스토프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들은 한 학생이 “그러면 우리는 크리스토프인가요? 아니면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인가요?” 라는 질문을 한다. 예전, 윤교수의 강의 때 윤교수가 학생들에게 던졌던 질문이 고스란히 윤에게로 돌아온 셈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질문의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붙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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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은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354쪽 윤교수의 유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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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붙였듯 윤교수는 자신을 찾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크리스토프들"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업혀 강을 건넜기 때문에, 즉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강을 건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 역시 혼자서는 강을 건너지 못하니 친구, 가족, 선생님 등의 인연들에 업힌 아이일 것이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줄 수도 있다. 이렇듯 사람마다 크리스토프가 한 명 쯤은 있을 것이다.
[붙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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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쓰는 작가로서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 있는 청춘소설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내가 지금 쓰려는 소설이 그런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지금 청춘을 통과하고 있는 젊은 영혼들의 노트를 들여다보듯 그들 마음 가까이 가보려고 합니다. 더 늦기 전에요. 청춘에만 갇혀서는 또 안되겠지요. 누구에게든 인생의 어느 시기를 통과하는 도중에 찾아오는 존재의 충만과 부재, 달랠 길 없는 불안과 고독의 순간들을 어루만지는, 잡고 싶은 손 같은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74쪽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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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을 마무리하면서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싶다. 앞서 붙인 신경숙의 말에서 봤듯 당신들에게 이 소설은 어땠는가. 인생의 어느 시기를 통과하는 도중에 찾아오는 존재의 충만과 부재, 달랠 길 없는 불안과 고독의 순간을 어루만지는, 잡고 싶은 손 같은 작품이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