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책임 - 한홍구 역사논설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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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책임은 불가분의 관계다. 한국 근현대사의 연대기를 잠깐이라도 살펴보면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전가하며 회피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본서는 근현대사의 직무유기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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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
리차드 미들톤 지음, 이용중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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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그리고 이곳에서

 

톨스토이는 세 가지 질문이라는 단편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며, 가장 소중한 일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이라고 하였다. 가장 소중한 삶의 가치는 먼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현재의 시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행하라, ~지켜라, ~가라, ~하라 등 거의 대부분의 가르침은 현재를 위함이다. 지금 내가 행하지 않고 지키지 않는다면 그리고 지금 가지 않고 하지 않는다면 어떤 가르침이든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바로 지금 현재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의 영역 중 유일하게 현재를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영역이 있는데 그건 바로 종말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잠시 머무는 곳이며, 앞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천국소망(?)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인 내세관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삶은 그저 버티고 살아가면 그만이다. 더 좋은 곳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이 땅을 포기한 것처럼 보여 지기도 한다.

 

이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용되고 있는 종말론에 앞서 미들턴은 성경신학적으로 종말론을 치밀하게 연구하며 따지고 있다. 단순히 가는 종말론에서 이 책의 부제처럼 변혁적이고 총체적으로 종말론을 화려하게 펼쳐놓고 있다. 책의 서문에서 미들턴은 이미 학부생 때 성경은 하늘이 구속받은 자가 최종적으로 가야하는 곳이라고 그 어디에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성경을 가르치는 곳에서 만약에 그리스도인이 최종적으로 가야하는 곳이 하늘이며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성경구절을 찾는 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그런 본문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런 본문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경은 일관되게 다른 방향으로 말하고 있다. 그건 바로 현재 우리가 머무는 이 땅 전체가 구속되고 회복된다는 것이다.

 

미들턴은 가장 대표적으로 오해를 주고 있는 개념이 바로 하늘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성경에서 영원한 소망으로서 하늘에 대한 개념이 구조적으로 그리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한다. 결코 하늘이 인간구원의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운명이나 목적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에 하늘을 앞으로 우리가 가야하는 최종 종착지로 여긴다면 이 땅에서의 삶을 평가절하하여 땅과 하늘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해버릴 수 있다고 한다. 조금만 참고 인내하면 더 좋은 곳으로 가는데 굳이 이 땅에서 애쓸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이렇게 현세적 삶에 대한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미들턴은 결정적으로 계시록 21장을 근거로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하늘에서 준비되어 있는 것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 우리에게로 내려온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땅에서 준비해야한다. 그 준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땅에서 윤리적 긴장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새롭게 되어 질 이 땅이 불의와 악의로 가득 차게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다. 이 땅을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로 가득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종말을 준비하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곧 변혁적이고 총체적인 종말론은 우리 삶의 근본적인 방향이 전환되는 변화를 요구한다. 바로 지금 그리고 이곳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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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 10 - 자유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십계명 탐구
숀 글래딩 지음, 임고은 옮김 / 죠이선교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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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커피 문화에 살아가고 있다. 여기 저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커피숍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하다. 오히려 식사 값은 아낄지언정 커피 값은 과감히 지출하는 소비형태를 보이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카페에 앉아있는 것은 온갖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는 나만의 휴식시간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수다삼매경에 빠지는 것은 현대인들의 새로운 스트레스 해소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끔은 가벼운 커피타임 때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가 뜻하지 않은 깊은 깨달음과 의미를 찾는 시간을 가질 때가 있다. 

   성경의 가장 뒷장을 차지하고 있는 십계명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과는 달리 홀대 받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고리타분하고 금지사항들로 가득 찬 그 계명을 어느 누가 달게 받고 묵상하는 이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홀대받는 십계명을 커피 한 잔과 함께 수면위로 끌어 올린 이가 있는데 그는 바로 탁월한 이야기꾼인 션글래딩이다. 그는 성경의 이야기를 언약이라는 주제로 재밌게 풀어 쓴 “더스토리”의 저자이기도 하다. 


   본서의 제목은 “TEN“이다. 제목부터 신선하다. 젊다. 뭔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  탁월한 이야기꾼 인만큼 션글래딩은 본서의 시작을 한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대화에서부터 시작한다. 20년 된 고물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존 목사는 십계명을 법원 건물 내부에 게시하는 문제 때문에 카페에 있는 사람들과 논쟁이 생겼고 결국은 매주 월요일마다 한 계명씩 서로 이야기하기로 한다. 10계명부터 시작하는 그들의 모임은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하는 듯 했지만 커피를 리필해가며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그 내용과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본서는 십계명 해설서이다. 저자가 의도했을 수도 있는데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사람 또한 10명이다. 모인 사람들 또한 다양하다. 목사, 반기독교 성향의 사업가, 교수, 집사, 알코올 중독자였던 남성, 여고생 등 직업과 나이를 초월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입장에서 십계명에 대해서 고민한다. 한 계명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10가지 다양한 고민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개가 그 옛날의 십계명을 오늘 날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로 재현시켜 펼쳐놓고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웠던 삶의 고민들과 문제들 또한 십계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모임을 통해 십계명이 재해석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본질을 잃어버리지는 않고 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던 그 의미와 본질을 하나하나씩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십계명이란 사람들을 얽어매는 족쇄가 아니라 오히려 참된 자유로 가게하며 참 생명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의 부제는 “자유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십계명 탐구”이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십계명을 통하여 참된 자유를 발견하고 싶지 않은가? 그런 이들에게 커피향이 가득한 십계명 한 잔을 권하고 싶다. 뜻하지 않은 십계명의 깊은 뜻과 적용점을 찾아 훌륭하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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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본 세월 - 4.16이 남긴 것
김민웅 외 지음 / 포이에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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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건의 슬픔 헤아리기

헤아려 본 세월을 읽고

 

    일본의 영화배우인 기타노 다케시는 2011년 어느 인터뷰에서 3.11 동일본 지진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 지진을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건이 있었다. 2만 가지 죽음에 각각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슬픔과 고통에 대한 심연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1년 전 한 사람이 죽은 304건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것은 한 가지 사건이 아니다. 304건의 사건이다. 한 사람이 깊은 슬픔을 당했을 때 그는 하늘이 무너졌다고 표현 하곤 한다. 그렇다면 304개의 하늘이 무너진 것이다. 그뿐인가 한 사람의 슬픔은 그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깊은 슬픔을 당하고 있는 유가족을 향하여 교통사고다. 이젠 그만해라 지겹다.’라며 독설을 내뱉는 것은 다시 한 번 304개의 하늘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월호를 304건의 슬픔으로 이해하고 헤아리는 11명의 필진들의 마음이 한 곳에 모였다. 신학자, 교사, 작가, 목회자 등으로 이루어진 필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세월호를 헤아리고 있다. 김회권 목사는 세월호 사건을 갑오참변’, ‘양민수장학살사건으로 규정한다. 다소 섬뜩한 표현이지만 참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무리되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슬프고 참담하다. 김영봉 목사는 고난을 당하여 왜? 라고 묻는 이유는 이에 대한 정답을 원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함께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절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고난 당한 자와 함께 있어 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위로며 치유이다. 백소영 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제안한다. 슬픔과 분노를 공동 기억으로 승화시키는 공동의례의 힘으로서 세월절을 제정하여 해마다 기억하자라는 것이다. 한 번 일어난 사건이지만 다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마다 애곡함으로 기억하자고 제안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슬픔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무례하기도 하고 서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을 소중히 여겼던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전부인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가 전부이다. 하나가 모두이다. 그 전부를 되찾아 기뻐하는 우리를 꿈꾼다.”라고 김민웅 목사가 한 말은 슬픔을 잃어버리고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 세상에 꼭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304건의 슬픔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여전히 유가족들은 제2의 세월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 않았다. 피해자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철저한 진상규명만이 제2의 세월호에서 침몰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구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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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사랑 - 롬 8:1-39 복음주의 설교자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 시리즈 4
존 파이퍼 지음, 이선숙 옮김 / 좋은씨앗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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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너머의 궁극적인 승리

 

로마서가 쓰여진 그 시대는 황제 숭배사상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복음, 즉 힘과 폭력으로 세워진 사탄의 나라를 무너뜨릴 하나님의 복음은 요란하지 않게 허름한 한 편지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음은 구원의 능력을 주시며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생성시키는 생명의 복음이었다.

 

로마서는 기독교 복음의 정수이다. 복음을 접함에 있어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보석과도 같은 서신서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로마서 8장은 빛나는 보석 중에서도 감히 그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값어치가 있는 보석 중의 보석이다.

 

존 파이퍼 목사는 1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본 교회에서 로마서를 강해하였다. 현재 국내에서 총7권을 목표로 전 강해를 출판계획 중에 있는데 현재 본서까지 4권이 출판되었다. 그 중에 본서는 오직 8장만을 다루고 있으며, 현재 1장에서 7장은 1~3, 그리고 아마 앞으로 출간 될 9장에서 16장은 5~7권으로 출간될 것으로 예상된다. 8장만으로 이루어진 본서를 통하여 존 파이퍼 목사가 8장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책의 전체 구성으로도 알 수 있다.

 

그의 강해설교는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복음주의적이고 실제적인 적용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 받지 않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을 시작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은 영의 해방과 죄의 속박, 죄를 이기게 하는 칭의의 능력, 본서의 백미인 후반부에서는 자기 백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끈질긴 사랑을 끊임없이 설파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한 복음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이렇게 장황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복음을 아는 자에서 복음을 살아가는 자로의 존재론적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라의 시스템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들을 본의 아니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제국의 시스템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변형된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존 파이퍼 목사는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지리적, 심리적인 것들이 결코 우리에게 소망을 주지 못한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구원자요 최고의 왕으로 신뢰한다면 그 어떤 시스템도 파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참 소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순명료한 이 진리가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인생의 모든 시험과 환난으로부터 능히 승리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에 다시 귀 기울여야한다. 복음의 능력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내 삶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다시 들어야 한다. 만약에 그 복음이 내 삶에서 체화되고 실제적으로 복음을 살아가면 뜻하지 않은 수많은 위험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위험의 한 가운데일지라도 노골적으로 복음을 드러내고 살아가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이 땅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초월하는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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