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이별해야 멋지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BU 케어 보험
이희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1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별 후의 삶을 대비하기 위해 보험을 든다는 설정에 눈길이 갔다. 자녀들이 향후 겪을지도 모를 이별에 무너지지 않도록 산후조리원에 머무는 엄마 4명이 보험 계약의 주체이다.
본 소설에는 보험 컨설턴트(보험사 직원) 대신 BUC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일명 이별 상담 전문가(Break Up Consultant)는 다양한 이별 유형을 다루기 위해 정신분석학, 심리학, 상담학, 철학, 문학 등 여러 학문을 섭렵해야 한다. 주기적인 세미나와 강의에 참석하고, 독서 경험을 쌓는 건 필수. BU 케어 보험, 즉 이별 보험이 등장하고 그것이 유지된다는 말은 곧 이별의 무게가 천차만별이며, 심지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방증한다.
소설 속 이별한 혹은 이별을 결심한 이들의 사연이 만만치 않다. 그중 '스토커'인 한 남자에게서 안전하게 벗어나려는 한 여성의 사연이 특히 가슴에 와닿는다. 집착과 통제가 사랑으로 둔갑하는 안타까운 현실, 가스라이팅과 스토킹을 통해 한 사람의 심신을 병들게 하는 이야기는 며칠 전 내지 몇달 전 기사에서 볼 법한 것이다. 그밖에도 썸과 사랑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플러팅, 환승연애(환승이별) 등 현 시대와 공명하는 키워드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이별 보험이 출시된다는 상상은 상해ㆍ화재ㆍ암ㆍ치아ㆍ실비 보험을 들어 인간의 생명, 신체나 재산 등을 지키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부서지거나 다치지 않게 보호해야 함을 말하려는 것 아닐까 싶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오랜 기간 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만큼 마음에 난 생채기를 누군가 보살필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선택하는 건 온전히 피해자의 몫이다. 때론 가족, 친구나, 지인 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사연이 존재하는 법. 그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낯선 이를 찾게 되는 듯하다. BUC는 그러한 요구에 따라 생겨난 직업일지도 모른다.
이희영 작가의 차기작이 기대될 정도로 흡인력 있는 전개에 수려한 문장까지 갖춘 소설이라 평하고 싶다.

위기의 역사, 단절의 역사, 전환의 역사

위기의 역사 - 외환위기부터 인플레이션의 부활까지 경제위기의 생성과 소멸
오건영 지음, 안병현 그림 / 페이지2(page2) / 2023년 7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하여 작성한 서평입니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최근 금리가 오르면서 '영끌(영혼을 끌어모아)'로 투자해 산 주택의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가계대출은 1000조를 넘은 지 오래다. 2030 세대의 파산 신청 횟수도 상승 중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중소 은행을 어떻게 보호할지 그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국내 새마을금고 몇몇 지점에서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나선 것이 그 예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제유가가 2008년 이후로 최대치로 올랐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처럼 한 국가의 경제(금융) 상황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특정 국가의 결정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
저자는 2000년대 전후로 생긴 굵직한 위기들의 원인, 과정, 결과를 분석함으로써, 현재 국내외적인 경제(금융) 정세를 이해할 틀을 제공한다. 하나의 위기는 이후 위기를 가져오는 단초가 되고, 위기로 인한 파장은 상당한 기간 지속되기도 한다. 즉, 경제 위기는 경제사의 단절이자 연속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먼저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준 뒤 그 장면이 나타난 배경을 설명해주는 영화처럼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 연대기가 아닌, 사건의 연결성, 맥락에 좀 더 집중한다.
또한 짧은 컷의 만화를 그려넣고,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경제 기사를 중간중간 여러 개 삽입하는 등 경제 위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게다가 에세이 형식으로 18편의 글이 기술된 점 덕분에 경제에 관심은 있으나 세세한 지식은 부족한 이들에게 충실한 교양서로 다가온다. 경제(사) 공부 입문하려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도서다!!

#오건영 #경제위기 #역사 #외환위기 #닷컴버블 #글로벌_금융위기 #해답을_찾아가는_여정 #페이지2북스 #서평

사랑하는 너에게 보내는 편지, 널 위해 쓰는 일기장

노 휴먼스 랜드 ㅣ 창비청소년문학 120
김정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1.
최근 코로나19, 잦은 자연재해 등을 겪으며, 인류를 향한 '자연의 경고'를 이제는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아래의 질문들이 뒤따른다. 구체적으로 인간은 어떠한 활동을 줄여나가야 하는가. 인간 없이 지구가 일정 기간 휴식을 취한다면, 그래서 지구가 본래의 상태로 회복할 시간을 가진다면, 근래 벌어지는 재앙 같은 사태가 줄어들 수 있을까. 인간이 지구를 떠나야 한다면, 인간이 어디로 이주하여야 생존할 수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김정 작가의 《노 휴먼스 랜드》가 해결해주는 듯하다.

2.
《노 휴먼스 랜드》는 세계적인 식량 재난으로 인간의 활동, 주거지 등이 통제된 사회를 배경으로 삼는다. 즉,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된 지역에 살아서는 안 되며, 만약 거주한다면 극심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이렇게 지구 회복의 일환으로 노 휴먼스 랜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문제가 생긴다. UNCDE(유엔기후재난기구)의 일부 구성원들이 모여 인간의 감정을 사라지게 만드는 '플론'이라는 독성 식물을 재배하여 그 종자를 널리 퍼트릴 계획을 세운다. 이는 전인류를 일체화하여 인간의 욕심, 사람들 간의 갈등, 전쟁을 아예 없어버리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플래그리스'라는 단체는 '나'와 타인의 경계를 무너뜨려 개인성을 몰살하려는 계획에 저항한다. 이 두 단체의 은밀한 작전이 어떻게 전개되고 또 어떤 계기로 좌절되는지가 본 텍스트를 감상하는 핵심 포인트이다. 소설은 각 장마다 적절한 타이밍에 딱 끊어지면서 다음 서사를 궁금하게 만들고, 그런 이유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3.
'노 휴먼스 랜드'에 대한 상상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상상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구상과, 소설과 유사한 현실이 도래했을 때 피부에 와닿는 영향이 무엇일지에 대한 감각은 당연히 무궁무진하다. 마찬가지로 이를 감상하는 독자들의 해석, 사고 세계도 필연적으로 광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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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한밤의 시간표

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6월

표지부터 눈길을 확 끄는 정보라 작가의 신작...! 《저주토끼》로 작가와 처음 만났는데, 이번 만남은 어떨지, 작가가 어떻게 저를 놀라고 감탄하게 만들지 무척 설레고 기대되네요~~ ㅎㅎㅎ

천 개의 세계, 만 개의 정체성

호랑이가 눈뜰 때 ㅣ 소설Y
이윤하 지음, 송경아 옮김 / 창비 / 2023년 5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한국계 미국인 이윤하는 2017년에 미국의 유명한 SF 문학상 '로커스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소설가다. 이번 작품에 그는 한국 고유의 문화유산에 천착하여 이를 스페이스 오페라에 환상적으로 구현해낸다. 그의 신작《호랑이가 눈뜰 때》는 'Disney+' 시리즈에 영상화가 확장되었다고 한다. 이윤하는 물론 한국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나, 그가 직접 한국의 이야기, 문화 요소를 탐구하여 영어로 창작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는 K-콘텐츠의 인기가 올라가 그 저변이 확대되어 간다는 점을 드러낸다.

2.
소설은 '천 개의 세계'라는 우주 공간을 무대로 전개된다. 천 개의 세계 속 공용어는 한국어이고, 군인을 포함하여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한복을 착용한다. 또 우주군 전투식량으로 잡채가 나오기도 한다.
그밖에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구미호, 우주를 배회하는 여러 귀신들, 영혼과 소통하며 원혼을 위로하고 잡귀를 축출하는 무당 등 한국 설화에 기반한 초능력이 등장하고, 풍수지리에 관한 내용(풍수지리에 따라 건설된 우주기지)이 등장하기도 한다.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주황 부족 호랑이령에 속한 13살 '세빈'. 그는 우주군 전함의 전 선장인 삼촌 '환'을 존경하여 명예로운 우주군 선장이 되기를 꿈꾼다. 천 개의 세계를 위협하는 세력을 비밀리에 조사 중인 특별 조사관 '이'를 돕고 있는 여우 부족 '민', 이무기 부족 '남규', 천인(天人) 부족 '유나' 등은 세빈이 우주군에 입대 후 만나는 친구들이다.
처음에 세빈은 주황 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우주군 생도로 활동한다. 삼촌 환이 천 개의 세계를 파괴할 마법 물건을 훔치려고 군을 배신했다는 혐의, 즉 반역죄로 기소되어 도망을 다니는 중이기 때문이다.
주황 부족장 '가모장'은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는 엄격하고 용감한 호랑이라는 이미지를 이전부터 세빈을 포함한 부족 구성원들에게 강조해 왔다. 그 때문에 환이 저지른 반역죄로 체포 영장이 발부된 사실은 부족의 명예, 호랑이의 선량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세빈은 부족의 명예와 가모장과 맺는 맹약을 지킬 것인지, 그보다 큰 우주의 안전과 평화를 수호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갈등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광활하고 다채로운 우주를 경험하기도 하고, 삼촌을 둘러싼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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