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 아프리카의 슬픈 역사, 르완다 대학살
필립 고레비치 지음, 강미경 옮김 / 갈라파고스 / 2011년 7월
품절


제노사이드 규약이라는 장밋빛 약속은 인종 청소 시도를 막아야 한다는 도덕 명령이 독립 국가들로 이루어진 국제 사회를 움직이는 이해관계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이미 세계주의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수많은 실험이 입증하고 있듯이 이러한 도덕 명령은 주권국의 원리와 근본적으로 충둘한다. 주권국들이 그야말로 사심 없이 인도주의 차원에서 행동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휴머니즘을 보호하는 것이 모든 국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신기한 발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노사이드를 저지하려면 무력 사용은 물론 자국민의 목숨이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런 위기에 맞서 세계가 치르는 대가는 수수방관했을 때의 대가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신념이었다. 제노사이드 규약이나 뒤이어 나온 난민 규약을 입안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세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까?-210쪽

르완다는 히틀러가 유대인과 벌인 전쟁 이후 가장 명백한 제노사이드 사례로 남았다. 세계는, 미래에는 모두가 올바로 처신하기를 희망하며 살인자들이 통제하는 난민촌에 담요와 식량과 의료품을 보냈다.

서구 사회는 홀로코스트 이후 다시는 제노사이드를 용납하지 않겟다고 맹세했지만, 이 맹세는 빈말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아우슈비츠의 기억은 사람들에게 정의감을 일깨워주었지만 소리 높여 악을 비난하는 것과 묵묵히 선을 실천하는 것은 여전히 별개의 문제로 남아 있다.-211쪽

크세르크세스 일세가 유대인을 멸족하라는 처음의 명령을 취소하자 에스더는 그에게 조항을 하나 더 추가해 "유대인이 함께 모여 스스로를 방어하면서 그들을 공격할 위험이 있는 종족이나 지방의 무장 세력은 그 아이들과 여인들까지 더불어 한 명도 남김없이 멸족하고 그들의 물건을 약탈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한다. 간추리면 성경은 유대인과 그 동맹군이 '적' 7만 5,800여 명을 도륙하고 나서 '잔치와 기쁨'의 나날과 함께 제국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고 전한다.-420쪽

1997년 4월 30일, 내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거의 일년 째 되던 날 르완다 텔레비전은 이틀 전, 자신이 기세니의 한 기숙학교에서 여학생 17명과 62세의 벨기에 수녀를 살해한 제노사이드 주동자였다고 고백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교를 노린 그런 공격은 한 달 새에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키부예의 학교에서 일어났다. 키부예에서는 학생 16명이 살해되고 20명이 다쳤다.

텔레비전에 나온 죄수는 학살이 후투 파워의 '해방' 작전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속한 민병대는 인원이 150명으로, 주로 전 르완다 정부군과 인테라함웨가 그 구성원이었다. 그보다 먼저 키부예에 있는 학교를 공격했을 때처럼 기세니의 학교를 공격할 때도 민병대는 자고 있던 학생들을 깨워 후투족은 후투족끼리, 투치족은 투치족끼리 모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거부했다. 두 학교 여학생들은 모두 자신들은 르완다인일 뿐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무차별하게 매질과 총격을 당했다. -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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