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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핑 뉴스
애니 프루 지음, 민승남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작품으로 『브로크백 마운틴』을 읽은 게 다인지라 반가운 한편 걱정스러웠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달랑 두 권이다) 인생이 꼬이디 꼬인 박복한 남자가 주인공인데 배경마저 척박하기만한 낯선 곳. 대체 작가는 얼마나 이 남자를 괴롭고 아프게 만들까? 이리저리 치이고 치인 끝에 죽어버리는 거 아냐? 그게 아니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싶게 갖은 고생을 하거나. 가뜩이나 우중충한 날씨, 불행한 소식만 들리는 때에 읽었다가 제대로 처지는 거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조금씩 끊어 읽을 생각으로 손에 들었다. 계획과 달리 밤을 꼴딱 새워 끝을 봤지만 중간에 끊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불운했던 사나이 쿼일이 행복과 안정을 거머쥔 모습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으니까.
『시핑 뉴스』는 쿼일이라는 무능하고 못난 사내가 운명의 거친 소용돌이에 휘말려 허우적거리다가 우연히 자신의 자리를 찾고 결국 인생의 절정기를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변두리에서 태어난 그는 외모부터 지적 능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실패작이고 집과 학교에서 구박덩어리, 외톨이로 지낸다. 대학을 중퇴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변변한 직업 한번 가져보지 못하고, 어쩌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지만 그 결혼은 비극으로 끝난다. 절망의 벼랑 끝에 서게 된 그는 어린 두 딸을 데리고 고모를 따라 조상들의 땅 뉴펀들랜드로 향한다. 얼음, 빙산, 눈보라, 바위, 폭풍우의 섬.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서 그는 좌절만을 예감하지만 바로 그곳에 그를 당당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해줄 일과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할 여인과 세상이 살만한 곳임을 느끼게 해줄 사람들이 있다. 뉴욕에서 실패자로 한심하게 살아가던 그는 뉴펀들랜드의 대자연속에서 서서히 자신감을 찾아가며 배에 관한 멋진 칼럼을 써내는 기자로,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연인으로 탈바꿈한다. (p476~477,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 척박하고 낯선 곳으로 떠나왔다면, 흔히 예상되는 경우는 가속도를 더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일 터. 하지만 작가는 그런 진부한 예상은 우습다는 듯 간단히 비켜간다. 가혹한 자연과 궁핍한 생활, 암담한 미래에서 벗어나고자 사람들이 떠나가는 뉴펀들랜드. 그러나 그렇게 떠난 이들의 후예 쿼일은 조상들이 버렸던 땅으로 돌아와서야 마침내 살만한 인생을,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세상에, 사람에 늘 상처받기 일쑤였던 천덕꾸러기 쿼일. 하지만 이 척박한 땅의 강인하고 푸근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그를 다정히 감싸 안고, 자신들의 일원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절망과 좌절 속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길에서 맞은 안정과 행복, 이것이 드물게 찾아오는 인생의 고마운 아이러니가 아닐까. 굽이굽이 길고 긴 길을 돌아온 끝에 일도, 우정도, 사랑도 손에 넣은 쿼일의 앞날에 부디 행복만 가득하기를. 당신은 충분히 그걸 누릴 자격이 있어요, 쿼일씨.
+) '애니 프루'라는 이름에 반갑던 마음을 주저하게 만든 건, 거슬리는 제목이었다.『시핑 뉴스』라니, 처음 출판되었을 때처럼『항해 뉴스』라고 하지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