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7
한스 페터 리히터 지음,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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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로 겪어야 했던 그들의 민족사에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쏟아지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지금과 달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들 가운데 관련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는 ’안네의 일기’정도가 다였지만, 그 일기와 관련 자료들을 통해서 히틀러와 나치의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발상과 처사에 소름끼쳐 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에게 지지를 보낸 독일국민들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그런 무리에 지지와 동조를 보낼 수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런 생각들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와 책들은 크면서 더욱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세계의 각 분야에서 대단한 인재들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유대인들에게 일종의 경외심마저 얼마쯤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무렵, 팔레스타인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그 이후, 더는 유대인에 대해 이전과 같은 호의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막대한 부와 힘을 바탕으로 그들은 더 이상 가련한 피해자가 아닌 잔인한 가해자가 되어버렸으니. 한참 전 전국을 강타했던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 세상은 요지경이다. 아니, 인간사가 요지경인 건가.

 히틀러와 나치의 극악무도한 학살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에 지지를 표한 당시의 독일국민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괴벨스의 지능적인 책략에 우매한 민중이 휩쓸렸을 뿐이라 해도 면죄부는 주어지지 않는다. 제 아무리 히틀러라 해도 민중의 지지가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일을 벌이지 못했으리라는 건 자명한 일. 유럽 타지역과 달리 역사적으로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보지 못했다는, 아니 언제나 변방의 들러리에 불과했던 것에 대한 국민적인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그런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을 것이다. 딱히 유난스럽지는 않았을지라도 전 유럽에 걸쳐 반유대정서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도 부가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테고. 안타깝지만 잔혹한 진실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경험을 가진 유대인들이 힘없고, 가련한 처지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히틀러와 나치가 자행했던 것과 다를 바 없어보이는 처사를 감행했다는 사실이다. 절대자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사상을 가진 ’특별한’ 그들로서는 애초에 자신들의 것이었던 약속된 땅을 되찾았을 뿐이니, 오랜 세월 그 땅을 터전으로 살아온 민족의 역사와 삶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일까?-_- 자국 내에서 유대인들의 입지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었고,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던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준 게 있으니 마땅히 받아야만 하는 대가인 것인가? 그렇다면 당사자임에도 황당하게 문제에서 배제된 채 쫓겨나버린 팔레스타인 민족과 그들의 삶은 누가, 어떻게 해결해준다는 것인가?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전 세대가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주섬주섬 보고 들은 게 많아져버린 어른의 시각으로서는 예전처럼 순수하게, 프리드리히 가족의 아픔에만 가슴 아파할 수가 없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이 이야기와는 관계도 없는데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동시에 펼쳐진다. 올 상반기를 강타했던(?) 책도둑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독일인의, 그것도 아이의 시점에서 그 시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독일인들의 죄책감과 속죄 의식이 반영되면서, 이런 책에서는 유대인들의 비극이 -실제로도 그랬지만-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나치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정심도 유발하고. 큰 관점에서 보자면, 유대인도 독일인도 모두 피해자이다. 그들 모두가 결코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괴롭지 않을 수 없으니까. 다만 유대인도, 독일인도 아닌 변방국가의 아는 게 부족한 사람의 생각으로서는... 2차 세계대전보다 현 시점과 훨씬 가까운 시대의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된, 지금도 진행중인 비극은 문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힘의 논리에 밀려 중심 화두가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씁쓸하다. 돈에서 비롯된 힘으로 지배되는 세계에서 약자는 언제나 피해자일 수 밖에 없다. 주체할 수 없는 우울에 눌릴 걸 알면서도 굳이 읽은 게 어리석었는지도...... 

 

+) 요즘은 워낙에 관련 책도 많고, 인터넷 검색으로도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으니 아이에게 이 책을 읽게 한 부모님이라면, 잊지 않고 팔레스타인 분쟁과 그들의 비극적인 역사 또한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유대인들의 비극은 반드시 주지해야하는 역사적 진실이지만 팔레스타인 문제 또한 다를 바 없다. 혼자서 그게 가능한 나이라면 스스로 찾아서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한살이라도 어릴수록; 아니, 어릴 때부터 균형잡힌 시각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라면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문제든 그렇게 바라볼 수 있고, 편협함을 떨쳐낼 수 있다. 슈퍼맘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괜한 오지랖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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