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노네 고만물상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정신적인 소모가 크거나 감정적인 괴로움이 뒤따르는 독서 이후에는 반드시 가볍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어줘야 한다. 지독하게 매운 음식을 먹고 난 다음이면, 당연한 순서인양 차가운 우유를 들이켜거나 여느 때라면 조금도 달갑지 않은 달디 단 음식을 먹는 것으로 속을 보하는 것처럼. 그래야만 신속하게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금 여느 때의 모드로 돌아와서 영양가 없이 축 처지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나카노네 고만물상은 그런 용도로 집어든 책이다. 표지에서부터 풍기는 이미지가 그에 제격임을 보여주지 않는가. 적절한 선택이었다. 적당히 가볍고, 술술 읽히며, 정신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부담스럽지 않다. 우리네 일상처럼 별 다를 건 없지만 예상외의 면이 있어 지루하지도 않고.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 보고 생각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건 예상대로지만, 고만물상이라는 장소와는 꽤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니까. 특히 고만물상의 주인장인 나카노 씨가 뜻밖의 캐릭터였다.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들었고, 노년이라고 하기는 아직 약간의 미안함이 드는 연배라는 설정은 예상대로였다. 고만물상에는 어쩐지 이런 연배의 분들에게 안성맞춤인 듯한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아니, 그러니까 말이야’ 라는 뜬금없는 말버릇을 가진, 평범한 인물... 인 듯 했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의외의 설정. 이 주인장이 3번의 결혼을 통해 얻은 3명의 배다른 자식들을 두고 있으며, 여전히 부인 외에 2명으로 추측되는 애인을 가진 양반일 줄이야... 이쯤 되면 천하의 난봉꾼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야기의 배경이 가정이 아닌지라 나카노 씨는 밉살맞지 않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긴 하지만, 독특한 개성의 일부로 보인다고 할까. 푸근하진 않아도 기본적으로는 선하고, 심술궂거나 궁상맞지 않기 때문에 그를 미워하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어디인지 나사가 한두개 빠진 듯한 고만물상의 청춘남녀 직원 둘과 나카노 씨와 다른 듯 닮은 누님 만년소녀 마사요 씨까지 모두 평범한 듯, 특이한 캐릭터들. 이런 인물들이 고정멤버인데다 수없이 오가는 손님들 중에 엉뚱한 인물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그저 진부하기만 할 리는 없지 않을까.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재미있고 인상적인 읽을거리를 원한다면 적절한 선택이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충격완화나 심신안정, 혹은 시간 죽이기 용의 책이 필요하다면 집어들기 적당하다. 기본적으로 고만물상 자체가 긴요한 생활필수품을 구매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작가의 선견지명인지 몰라도 제목에 딱 들어맞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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