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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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가 있다. 편모 슬하에서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자란.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아이를 짐스럽게 여길 뿐이었고, 아이가 홀로서기를 시작한 즈음이 되자 혼자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성인이 된 남자는, 아이를 낳고 싶을 뿐 기르고 싶지 않은 여자를 만나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여자는 갓 한살을 넘긴 아이를 맡기고 떠나버리고, 남자는 알지 못하는 아버지 역할과 겪어보지 못한 어머니 역할을 모두 감당해가며 아들과 살아간다.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끝이 예고된 형태였지만 그들은 적어도, 3년 뒤 아이의 생모가 불쑥 돌아와 일상에 혼란을 초래할 때까지 행복했다. 어머니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게 어머니가 된 두 여자. 이 여자들로 인해 비극은 시작되고 말았다.

 세상에는 자격없는 부모들이 너무도 많다. 결코 부모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들이, 신중치 못하게 부모가 되어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픔을 주고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그런 아픔과 상처는 끊이지 않고 대물림되어 후대로 갈수록 더 깊고 지독해지기 쉽다. 이 남자 역시 그저 평범한,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할 수 있었다면 이런 운명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평범과 보통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는 삶이란 어쩌면 빛나고 화려한 것보다 더 어렵고 드물게 주어지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으로 사는 것이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미덕이자 행복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양친 슬하에서 자라든, 편부모 아래서 자라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부모자격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될 뿐.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려도, 남보기에 빠지는 게 없는 삶이여도... 기본적인 토대가 결핍된 이들은 살아가는데 더 어려움을 겪는다.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다. 날 때부터 주어진 삶이 그랬다. 결코 스스로 원하지 않았다. 피하는 방법도 몰랐다. 피하자니 나같은 인간이 하나 더 나오는 것이 아닌가 두려웠다. 그래서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함 없이, 지나칠 정도로...... 그런데 그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잔인한 파국뿐이라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소설은 얄쌍한 두께만큼이나 간결하다. 작가도, 화자도 남성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결이 섬세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이 비극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깊은 심연으로 침잠하게 만든다. 마지막 두 페이지는, 독자가 제발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 결말일지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결말은 우리를 아프게 하고, ’에릭 포토리노’라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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