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인 '한오치(半落ち) '는 경찰용어로 용의자가 범행의 일부에 대해서는 자백하지 않은, 미완의 자백을 말한다. 적절한 제목인 것은 분명하지만, 따로 설명이 없다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국내에서 '사라진 이틀'이라고 제목을 바꿔붙인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싶다. 한오치라는 용어만큼이나 '사라진 이틀'은 이 소설의 핵심적인 부분을  나타내고 있으니까.

 온화한 성품의 모범적인 경찰 간부, 가지 경감이 아내를 목졸라 죽였다. 알츠하이머로 투병중이던 아내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자신에게 절망해 더이상은 싫다며, 죽여달라고 애원하자 가엾은 마음에 이를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제 발로 찾아와 자수했고, 범행 동기와 과정 일체를 자백했다. 그런데, 그가 자수를 위해 온 날은 아내를 죽이고 이틀이 지난 시점. 그리고 그는 그 이틀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않고, 침묵을 고수한다. 그 이틀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라진 이틀을 미스테리 소설이라고 놓기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역자가 후기에 썼듯이, 미스테리 형식을 빌린 사회소설이라고 해야 적당할 것이다. 소설 전반적으로 사건과 사건의 해결보다 사건 이후와 관련자들 각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소설이라는 장르의 작품들이 비교적 딱딱하고 건조한 것과 달리,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경찰과 검찰, 변호사, 기자 등으로 소속된 사회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일들을 비롯해서 알츠하이머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시종일관 그들 각자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따뜻한 사회소설이라는 어색하게 느껴지는 조합처럼 이 책이 안겨주는 감동의 무게는 낯설고 묵직하다.

 가지 경감으로 인해, 누구를 혹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느냐는 질문에 마주하게된 등장인물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가지경감의 답을 알고자 한다. 경찰 지도관 시키, 담당 검사 사세, 기자 나카오, 변호사 우에무라, 재판관 후지바야시, 그리고 교도소 담당관 고가. 대체 무슨 이유로 존경받는 경찰에서 졸지에 범죄자가 된 가지 경감이 아내를 죽이고 뒤따라 자살하려다 죽지 않은 것인가? 그가 자수 직전에 쓴 의미심장한 人間五十年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째서 1년만 더 살고자 했는지, 자신을 지탱해 온 모든 것을 잃고도 죽을 수 없었던 그 가슴 아픈 이유는 책의 말미에 가서야 밝혀진다. 그리고 바라던 1년의 시간이 지난 후... 살고자 했던 그 이유는 없어졌지만, 자신이 세상에 남겨둔 하나의 끈으로 인해서 가지 경감은 다시금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그가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적어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사건이나 시건의 해결과정에 집중하지 않는다. 사건에 있어서도 사람이 중심이고, 사건 이후 관련자들의 이야기와 범인의 행적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미스테리 소설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찬찬히 작가가 보여주는사회의 면면과 사람들의 아픔을 들여다본다면 슬프지만 사람이 있어서 아프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쌀쌀해진 날씨에 잘 어울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아릿함이 가슴 한 켠에서 차오르는 걸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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