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치는 강가에서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온다 리쿠를 처음 만난 건, '밤의 피크닉'이었다. 나도 이런 추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등장인물들을 부러워했다. 이틀에 걸쳐 전학년이 완주하는 보행제라. 이거라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랑스러운 학창시절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텐데. 걷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런 행사가 있다면 다시 고등학생이, 수험생이 되어도 좋겠다 생각했다. 쓰잘데기 없이 매년 가서 사람 진이나 빼는 극기훈련이나 수학여행 말고 왜 이런 뜻깊은 행사를 기획하는 사람은 내 학창시절에 없었던 걸까 공연한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밤의 피크닉'으로 가졌던 호감을 조금 더 키웠다. 쏟아진다는 말에 걸맞을 정도로 작가의 책이 쉴 새 없이 출간되는 것은 거슬리고 마뜩찮았지만, 자국에서의 주목도에 비해서 국내 소개가 늦은 탓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호의를 가질만큼 책이 마음에 들었다. 바깥 삼월도, 안의 삼월도. 대단한 이야기꾼을 또 하나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삼월 연작이라고 묶인 책들도, 작가의 다른 책들도 하나하나 읽어봐야지 싶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기까지였다. 온다 리쿠에 대한 호의가 가득했던 것은......

 삼월...에서 파생되어 나온 '흑과 다의 환상', (미즈노 리세 시리즈라고도 볼 수 있는)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와 '황혼녘 백합의 뼈'부터는 조금씩 마이너스 감정이 자라기 시작했다. 지극히 소녀스러운 감성의 순정만화 같구나 싶은 것이... 지극히 소녀스럽다는 것이 문제였다. 작가의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분명 그에 열광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전혀 소녀스럽지 않은 감성의 인간으로서는 심히 부담스럽고 거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읽은 '네버랜드'에서는 마이너스 감정이 더 많이 자랐다. 10대 미소녀를 상당히 사랑하는 것 같은 작가가 이번에는 미소년으로 성별만 바꿨구나. 유서깊은 명문교의 오래된 기숙사라는, 만화스러운 배경부터 등장인물들은 죄다 우등생의 미소년. 그동안의 미소녀 예찬만으로는 부족한가? 왜 계속....하다가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게 온다 리쿠 스타일이라는 걸. 그리고 '굽이치는 강가에서'는 그런 확신에 결정타를 날렸다...

 주요 등장인물은 총 여섯으로 10대 여자 넷, 남자 둘. 당연하게도 여자 넷 중에 셋은 모두가 인정하는 각기 다른 타입의 미소녀, 나머지 하나도 본인만 모르는 미소녀인 듯. 남자 역시 하나는 성별이 모호할 정도로 예쁜 미소년, 나머지 하나도 그런 타입은 아니지만 어쨌든 준수한 인물. 과거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어떻게든 관련있는 아이들이, 어른들은 모두 부재중인 여름방학 중의, 오래된 사연있는 집에서 합숙을 하며 일어나는 이야기. 핑계는 있지만, 모이게 된 것이 과거의 그 사건 때문이라는 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설정.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소녀층을 겨냥한 순정만화스러운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역시나 그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하나도 읽지 않았거나 작가 특유의 설정이나 구성을 좋아하는 독자가 읽는다면 매력적인 책일지도 모르지만, 접한 순서의 잘못일까? 그동안 읽은 전작들을 통해 느낀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과 설마 비슷한 설정을 언제까지 써먹으랴 하면서 조금은 믿고 있던, 한때는 아꼈던 작가에 대한 최종판단 보류 상태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확신하는데, 앞으로 더 이상 아직 읽지 않은 온다 리쿠의 책을 집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작가의 장기라고 해도 비슷한 설정을 매번 반복하면서 울궈먹는 것이 지겹고, 연작이나 시리즈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 쌍둥이 같은 이야기들을 계속 읽고 싶지는 않다. 너무 다작을 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너무나 확고한걸까? 아니, 그저 나와 작가의 궁합이 영 좋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밤의 피크닉'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고 느꼈던 감정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으니까 오직 그 두 작품만 나와 상성이 맞았던 건지도.

 온다 리쿠의 책은 여전히 끊임없이 나오는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이제 내 손을 떠난(?) 작가인지라 신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돈과 시간이 문제가 될 뿐, 세상에 재미있는 책과 멋진 작가는 넘쳐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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