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친 말의 수기
마광수 지음 / 꿈의열쇠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마광수의 '시학'을 읽고 이해하기 쉽게 읽혀서 좋았었다. 그래서 마광수의 소설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채 그의 홈피에만 가끔 방문해서 그의 사상을 엿보는 것이 요즘이다. 책은 2번이상 읽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거 같아 아직 제대로 된 리뷰를 적기보다는 인상깊은 구절을 메모해 두는 형식으로 쓰고자 한다. 내가 이 분께 자꾸 끌리게 되는 것은 나도 특이한 것이 좋고, 또 id와 superego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를 보며 id자아를 확고히 뿌리박은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아직은 기독교적 사상과 마광수교수의 문학관 사이에서 나 스스로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으나 적어도 이렇게 뭔가를 찾아나가려는 지금 나의 모습에서 발전된 내 미래가 보인다.
아래는 책中에서......
나는 이드가 발달한 '관능 지향'의 자아를 가졌고, 아내는 초자아가 발달한 '정신지향'의 자아를 갖고 있어 서로의 관계가 삐거덕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능 지향적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은 한마디로 예술가타입이다. 그리고 정신지향적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은 한마디로 말해 학자(또는 종교인)타입이다. 나는 교수직을 유지하기 위해 학술논문을쓰긴 했지만 내가 더 공을 들이고 있었던 것은 문학창작이었다. 그런데 같이 살아보니 아내는 그야말로 학자스타일, 즉 공부벌레 스타일이었다. 그러니 둘 사이에 이심전심의 교류가 불가능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자신의 자아가 어떤 형인지 발견해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아무리 남들과 다른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더라도 그런 걸 부끄러워하거나 은폐하면 안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불행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예술창작의 목표를 '격노하는 본능'과 '위압적인 도덕률'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문학작품들이 이른바 야하고 퇴페적인 내용으로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학에 종교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사상적메시지를 담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러면 문학은 예술작품이 아니라 그저 '교양서'정도밖에 안된다. 문학은 잠재의식에서 솟구쳐 오르는 본능적 일탈욕구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시스란 '동물적 본능의 대리배설, 또는 대리충족'을 가리킨다.
나는 독서만 잘해도 다시 말해서 읽을 책만 잘 골라 읽어도 자신의 운명을 독서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물로서의 '행운'으로 전환시킬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자연은 결코 아름답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그 곳은 오직 약육강식의 장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설파한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의 말은 공염불이 될 수 밖에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업적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조작자들에 의해 과장되게 부풀려질 수도 있고 아예 묻혀버릴 수도 있다. 비겁하게 살진 않으면서 자기체질에 맞춰 야한 (즉 솔직한) 정열을 추구해나가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애쓰되 명분이나 명예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이웃전체의 구체적인 쾌락과 행복을 도모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고 나는 믿는다.
위선적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이 겉으로 표방하는 정의, 자유,도덕 같은 것들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속아왔던가. 이 세상에서 소중한 가치는 오직 '솔직성'하나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윤동주는 당시의 문학인들 중에서는 가장 순진하고 솔직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육체적욕구에까지 솔직하지는 못했다. 아니 그는 그가 처한 지적환경,즉 보수적 청교도주의가 그를 솔직하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쩌면 톨스토이도 마찬가지였다고 볼 수 있다.
꼭 미혼남녀들만이 가을에 외로움과 씨름하며 몸부림칠 것 같진 않다. 기혼자들 역시 외로움을 탄다. 다만 그들이 겪는 외로움에는 단순한 종족보존의 욕구 이외에 여러가지가 더 보태어지는 게 다를 뿐이다. 죽음직전의 상태에 처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실존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인생에 대한 허무감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요즘 느끼는 '불안'은 실존적 불안도 아니고 죽음에 대한 불안도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불안도 아니다. 그저 막연한 불안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형태로든 복지부동을 안 하면 누구나 '막연한 불안'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라는 사실을 나는 차츰 깨달아가고 있다. 그래서 새삼스레 절망하고 있다.
분단이데올로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도 인권보장이나 표현의 자유가 자리를 못잡고 있어서그럴까 아무튼 모든 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공권력도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주변사람들의 눈초리도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사랑 자체도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잘 알려진 동화 가운데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이 있다. 이 동화는 어린이들이 읽기엔 좀 벅차다 싶으리만큼 날카로운 풍자정신을 담고 있는 명작이다. 이 얘기를 통해 작가 안데르센은 인간이 갖고 있는 허영심과 위선을 예리하게 고발하고 있다. 또한 자기의 직관적 판단보다는 남들의 눈치에 더 매달리고 사회적 통념에 이끌려 다니기만 하는 줏대없는 인간들의 나약한 분별력을 비판한다. 특히 어린아이와 어른을 비교하여 어렸을 때는 누구나 순진무구한 직관을 소유하고 있는데 어른만 되면 갖가지 선입견과 지적 허영심때문에 현학적인 궤변론자가 되버리고 마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