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1세기북스>에서 출판된,  《행복의 기원》이 올해 10주년을 맞이하여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행복에 관한 잘못된 오해를 아주 정면으로 깨어주고,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주게 하는 책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요.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잊고 있던 내용이 많이 떠오르기도 하고, 새롭게 생각해 볼 질문도 많이 얻을 수 있어 즐거웠어요.


수차례 강연으로 이름을 알린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은 이렇게 추천사를 남겼어요. "사람들이 심리학자인 내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고. 이 어려운 질문에 지난 10년 전부터 항상 《행복의 기원》부터 읽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 책의 저자인 서은국 교수님께선 결코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서의 행복을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어쩌면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책을 깊이 다 읽고 나면 특유의 유머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지식을 전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7장, '사람쟁이' 성격,을 중심으로 감상을 남겨보려 합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라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저는 오랫동안 동의했습니다. 굳게 믿었죠. 하지만 몇 년 전 이 책을 읽고서 믿음이 깨졌던 걸 기억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어요.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의 본질적인 모습을 알지 못해서 잘못된 오해를 지니고 산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너무 과장되어 있고, 정작 중요한 요소는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행복이란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행복의 본질'이란 건 무엇일까요?


저자는 먼저 이성과 욕구의 차원에서 행복을 설명해요.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어져 온 행복에 관한 믿음은 '이성으로 욕구를 통제해야 한다'라는 형태를 띠고 있어요. 이성의 힘은 매우 가치 있는 걸로 여기고, 욕구는 억눌러야 하고 조절해야 하는 걸로 대했죠. 저자는 정작 인간의 생존에 더 도움이 되는 건 이성이 아닌 욕구라고 말하며, 인간이란 동물은 생존이란 과제를 중심으로 행동하고,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에 욕구의 가치가 아주 높다고 설명해요. 이성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행복'에 있어서는 이성보다는 욕구가 좀 더 중요할 수 있어요.


저자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봅니다. 인간을 생존이라는 과제를 잘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이라는 점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해요.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고, 따라서 쾌락과 불쾌함 또한 생존을 위해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행복이란 본질적으로 쾌락이 불쾌보다 많은 상태로, 더 많이 기쁘고, 덜 불쾌하면 행복하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을 여러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저자가 말하는 행복의 본질이란 인간이 생존에 더욱 열심히 임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목적에서 느끼는 쾌감입니다. 인간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자극이나 자원을 얻으면 다음에도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그 행위에서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 쾌감의 다양한 형태가 바로 행복이라는 거죠.


저자는 다소 잔인한 사실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어떠한 사람이 행복한지 아닌지는, 절반이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겁니다. 행복하기 유리한 유전자와 기질 특성을 타고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더 행복하기 쉽다는 거죠. 행복할 가능성의 50%가 태어나면서부터 혹은 아주 어릴 때의 경험을 통해 결정된다는 게 참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은 50%를 잘 높여나간다면, 타고난 사람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필요한 만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행복에 있어 중요한 예측 요인은 '성격'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성격 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건 바로 '외향성'입니다. 한 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외향성에 바탕을 둔 '사회성'입니다. 쉽게 말해, 외향적으로 활발하게 사람들과 교류하며, 관계를 돈독히 쌓을 수 있는 사회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의미합니다.


저자는 외향적인, 특히 사회성이 높은 성격을 '사람쟁이' 성격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사람과 잘 어울리는 능력이 있는 성격이라는 뜻이죠. 외향성이 높은 사람의 대표적인 특성은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도 높아지고, 그 관계가 지속되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확보하기에도 유리해지는 거죠. 또한 행복에 있어 '즐거운 경험'을 많이 쌓아가는 일이 참 중요해요.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에 비해 좀 더 많은 경험을 추구하고, 따라서 즐거움 경험도 보다 많이 쌓기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가 행복을 직접적으로 결정한다기보다는 외향적인 사람일수록 사회적인 상황에 더 많이 머물게 되고, 그러니 더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행복해진다고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러니 내향적인 성격을 타고났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없는 건 아니에요. 내향적인 사람일지라도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그러니 외향적인 사람들만큼 활발히 사람을 만나고 다니진 못하더라도, 가능한 만큼 사회성을 발휘한다면 내향적인 사람들도 충분히 행복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수록 그리고 관계의 질이 높을수록 사람은 더욱 행복합니다. 관계의 질이 높다는 건 함께 있을 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서로를 신뢰하며,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상태를 뜻합니다. 반대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으면 적을수록 행복과는 멀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닌, 외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의 주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고립과 외로움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에요. 오래전부터 외로움과의 사투를 국가적인 단위에서 벌이고 있는 일본은 '외로움청'이라는 국가기관이 생길 정도로 진지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 몇 년 뒤에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기관이 생기거나, 관련 정책이 시행되리라는 슬픈 예감이 듭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행복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가장 크게 상처받는 것 또한 사람에게서입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외로워지는 이유도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계속 심화되는 데는 '획일적인 행복의 기준' 또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획일적인 사고가 행복에 큰 타격을 준다고 말합니다. 행복에 정해진 정답이 있다는 듯 여러 메시지들이 인터넷 세상을 떠돕니다.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좋은 집안의 파트너와 결혼하는 등 개개인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정도 정형화된 행복의 규준이 존재합니다. 이 규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불행한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불행한 사람으로 평가된다는 걸 마냥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요.


"과도한 타인 의식은 집단주의 문화의 행복감을 낮춘다"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획일화된 행복의 기준을 갖고,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점점 외로워지고 있습니다. 불행 3대 천왕이 모두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행복 지수는 좀처럼 높아지지 않습니다.


행복하고 싶다는 소망 자체는 나쁠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규격화된, 획일화된 행복에서는 다소 멀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행복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정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랬습니다. 


행복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유일한 인생 나침반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즐겁고, 화나고, 웃다가 우는 것이 인생이다. 이 모든 순간들, 뇌가 필요해서 찍어 놓는 인생의 인증 샷들이다. 버릴 장면이 없다. 이 매력적인 여정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생명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Enjoy the ride! - P2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