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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에셔, 무한의 공간 ㅣ 다빈치 art 14
모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외 지음, 김유경 옮김 / 다빈치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에셔의 판화들과 그가 끝내 강단에 서지 못한 두 편의 강연이 수록된 책.
처음 에셔의 판화를 보았을 때(아마도 도마뱀이 책에서 빠져나왔다가 다시 책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이미지), 아 이것은 내가 쌈싸먹은 상추쌈 횟수와 삐까삐까하게 많이 보아왔던 윤회의 이미지가 아닌가 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미란? 미적 지각의 대상. 미적 지각은? 미에 대한 지각! ...... 예술이란? 예술계가 자격을 부여한 대상. 예술계는? 예술에 자격을 부여하는 세계.(<미학 오디세이2> p.307, 진중권) 바로 이런 이유로 에셔는 뼛속 깊이 판화가(!)로서만(미술가가 아닌) 힐베르쉼 문화상을 수락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끊임없이 패턴의 유희를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서...
서로 맞물리는 형상들 사이의 윤곽선은 이중적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윤곽선을 따라가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나의 형상은 윤곽선의 이편과 저편에서 동시에 구체화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는 것처럼,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의 신속하고 지속적인 이동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매혹적인 난관을 극복하려는 욕망 때문에 제가 이 분야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p.47)
1950년 4월 26일에 오에이 텡 시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에셔는 "혼돈은 시작이며, 단순함은 끝이다."라는 말로 자신이 판화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요약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됨됨이였다. 에셔는 일생동안 무질서에 저항하였다. 그는 무질서를 두려워했고 혐오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포와 혐오는 애증 관계의 소산이기도 했다. 1958년 12월 4일의 달력 메모에서 그는 "우리가 혼돈을 사랑하는 이유는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이다."라고 적고 있다. 즉 혼돈은 질서 창조를 위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혼돈과 질서는, 에셔가 '조화의 기적'이라고 간주했던 현실을 이루는 두 가지 구성요소였다. 그는 1965년에는 "나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형태 없는 혼돈 속이 아닌,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세계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p.145)
『판화예술』에 실린 글에서 에셔는 규칙적이고 조화로운 형상들로 평면을 분할하는 자신의 발견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하나의 형상을 다른 것과 구분하는 모든 선은 이중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즉 모든 선은 하나의 형상을 양쪽에서 구획한다. 이러한 발견은 그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원시적이면서도 영원한 무언가에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여기에서 '원시적'이라는 단어와 '영원한'이라는 단어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견 모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두 단어의 상호의존성을 음미해본다면, 우리는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 즉 존재의 비밀에 대한 끈질긴 모색을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평면을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p.157)
모든 것에서부터 해방되는 느낌과, 가능한 한 무한성에 가까이 가보려는 열망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깊고도 깊은 무한! 무의식을 향한 꿈.... 휴식, 꿈." 무한성=휴식=무의식=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된 자유로움. <원형 극한 III>에서 에셔는 무한성이라는 관념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적절한 이미지 언어를 찾게 되었다. 여기에서도 '보는 것 이상으로 볼 수 있다(혹은 보아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수학의 일부분을 시각화함으로써 수학적 질서를 지적으로 '유희'하려는 것이 에셔의 원래 목적은 아니었다. 그러나 에셔만의 고유한 방식에 의해 지성은 감성과 결합되고 있다. 혹은 거꾸로 말해, 그는 지적인 방식으로 감성을 시각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주된 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이미지의 언어를 구사하여 자연을 지배하는 질서의 원칙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자신만의 조화로움을 찾은 것이다. (p.159)
그는 "자신을 공 모양의 나선 속에 파묻었다." 즉 지성을 통하여 감성을 다루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 있는 것은 어떠한 알레고리도, 직설적 상징도 아닌(아마도 그는 이것이 너무 인위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 깊은 곳에 흐르고 있는 고독의 경험일 것이다.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