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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마스다 미리 책의 공통점은 쉽게 읽힌다는 것뿐일까? 그랬다면 과연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책을 출간하고 또 독자들의 관심을 유지시킬수 있었을까? 고수들이나 가능하다는 쉽게 그린듯, 읽기 쉽게 쓰여졌지만 그 속에 담긴 따듯한 위로와 공감은 결코 가볍거나 쉽게 지나쳐지지 않는 성질의 것이였다.읽고난 뒤에도 잔잔한 파문들이 살랑살랑거리며 내 몸과 머릿속을 간질이며 돌아다니는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그녀와 같은 여자이고 그녀와 같은 시기를 살아가고 있기에 더 공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었던 그녀의 책 '주말엔 숲으로' 를 읽은 뒤의 그 느낌. 세상과 사회의 무겁고 찌든 공기 속에서 나를 탈출시켜 피톤치드 가득한 숲 속에서 나와 같은 고민과 걱정거리를 짊어지고 있는 친구들과 가슴 가득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랄까
불안한 미래와 현재의 답답함,혼자만 가지고 있는 문제라 여겼던 포인트들을 속속들이 만져주고 터트려 주는 마스다 미리의 만화와 에세이는 뜨거운 찌개 국물처럼 쾌감이 넘친다거나 늘 그리운 엄마의 음식처럼 감동이 철철 흘러 넘치지는 않지만 은은한 평양냉면의 국물같은 묘한 매력이 넘친다.그래서 비슷 비슷해보이는 그녀의 책들을 읽고, 또 읽고 지금 또 읽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예전 출간된 책들에서 종종 선보였던(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어릴적 즐겨 읽던 그림책들의 추억을 만화와 에세이로 풀어내는 '어른 초등학생'
그림책 작가이기도 한 그녀이기에 더 소중히 자주 언급되어지는 주제가 아닌가 싶다.
첫 챕터, '친구에게 온 편지'가 이 책을 쓴 계기를 말해 주는 게 아닌가 지레짐작 해보는데,
어린 마스다 미리에게 그녀의 친구는 참 재미있는 책이니 읽어보라며 아끼던 동화책을 빌려준다.
색감도 칙칙하고 전혀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 내팽겨두다 책표지에 녹차도 쏟게 되고
심지어 자신의 책이라 여기고 학급문고에 기증까지 해버려 친구를 실망시키고 만다.그때까지도 그 책을 전혀 읽지 않았던 마스다 미리.
30년 만에 드디어 책을 구입해서 읽은 그녀.친구에게 한 번도 편지를 받아본 적 없는 두꺼비에게 개구리가 너의 친구가 되어 기쁘다는 짤막한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는 내용의 그림책이였다.
아마 그 친구는 그녀와 더 친해지고 싶어 그 그림책을 빌려준건 아닌가하고 뒤늦은 후회를 남기게 되지만 이미 과거의 일이 되고 만다.

우리의 어린 시절,과거는 늘 아쉬움 투성이로 남아 있다.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더 좋아지진 않았을까?하고
하지만 우리가 다시 그 시절을 산다고해도 별로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앞뒤를 재고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어른인 우리가 그 추억을 곱씹으며 그대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모를까. 그러지 못했던 순진한 아이인 체로 실수와 아쉬움을 사전에 예방하고 살아가진 못했을거 같다.
아쉬움이 남고 아련해서 더 아름다운게 어린 시절의 우리들 모습이 아닐까
부모님의 맞벌이와 터울차가 많은 형제자매들로 인해 내 어린시절은 막내였지만 많이도 외로웠었다.친척언니가 방학때 놀러와서 내게 건넨 '소공녀'그림책.지금은 어느 출판사의 책이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그림못지 않게 글도 많았던 작은 판형의 그 책이 지금껏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만큼 내겐 작은 사건이였고 즐거움이였다.
걸리버 여행기나,톰소여의 모험,안데르센 동화집등등은 직접 구입해서 읽었지만 늘 소공녀에선 망설였던 나.왜 그랬을까? 아마도 어린 나에게 그 단어가 조금 어색하게 들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날,언니에게 고마운 마음만은 아니었던 사건도 있었다.공기놀이를 하다가 작은 다툼이 있었고 어린 내가 언니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말았는데 커서 늘 이때의 장면이 떠오르며 철없이 왜 그런 행도을 한건지 늘 후회가 된다.아직까지 내게 그 책은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고마움의 대상이 된 언니인데..친척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키덜트란 말이 생길 정도로 요즘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 그때 마음껏 구입하지 못했던 피규어,동화책,인형.캐릭터 굿즈들을 광적으로 모으며 가슴에 난 공허함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90%이상 어둠속으로 침잠해버린 그 기억들이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옛 기억들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내 어린시절들.하지만 그 속에서도 잊고 싶지 않고 꺼내고 싶은 추억들도 있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켜켜이 쌓여갔던 그 시절,어둠 속에 놔둬버리기엔 너무나 소중한 시절이기도 했다.
마냥 주는게 행복했었던,뽑기판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주기도 하고 하루종일 친구네와 동네를 뛰어다니던 시절,불량식품을 먹으며 재잘재잘거리고 저녁무렵 옆집의 찌개냄새에 배고파 집으로 돌아가던 그 시절이 몹시도 그리워지게 만들었다.
컴퓨터 하드에 담긴 잊혀져 버린 사진들을 정리하듯 너무 먼 기억 속으로 파고들어간 소중한 내 어린시절도 가끔씩 꺼내어 반들반들하게 닦아주고 싶다.
나를 만들고,나를 이끌어 줬고 앞으로 힘을 내어 나를 이끌어가줄 내 어린 시절을..
나라도 소중히 보듬고 기억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