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캔버스
하라다 마하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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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숲에서 출간된 낙원의 캔버스는 현재 MoMA에 전시된 앙리 루소의 그림 "꿈"을 모티브로 삼은 일종의 아트 미스터리라 하겠다.이 책으로 25회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한 저자 하라다 마하는 미술사과를 졸업하고 한때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파견근무를 한 프리랜서 큐레이터 출신이기도 하다.
루소와 함께 당대에 활동하던 피카소와 시인 아폴리네르,앙데팡당 전시회와 그 시대의 화가들,경매업계와 미술계를 가로지르는 정통한 지식의 향연으로 말미암아 일본의 작가가 쓴것이 맞나 싶기도 했다.주인공인 팀 브라운과 맞서는 일본인 여인 오리에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깜빡 속을 정도..
2000년 구라시키를 시작으로 1983년 뉴욕,1983년 바젤,1906~10년 파리,2000년 뉴욕을 오가며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성으로 되있어 더 미스터리하고 호기심 돋게 읽어 내려 갈 수 있었다.
앙리 루소의 그림 "꿈" 을 둘러싼 루소와 피카소의 비밀은 무었이였을지,꿈 속에 나오는 나체의 여인 '야드비가'는 과연 누구일지.한때 강렬한 색채와 환상적인 내용의 그림으로 내마음을 홀려 놓았던 화가 앙리 루소에 관련된 책이라 하니 긴장과 호기심을 동반한 채 읽어 나갔다.

치프 큐레이터 톰 브라운 밑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하며 앞에 붙은'어시스턴트' 딱지를 떼기 위해 고분분투하던 팀 브라운은 어느날 자신의 앞으로 온 의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전설적인 컬렉터 바일러에게서 미공개된 루소의 그림을 감정하기 위해 바젤로 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는데 사실은 치프 큐레이터 톰에게 보낸것인데 팀으로 잘못 타이핑 되어 전달된 것이다.
스펙이라면 사실 톰에게 뒤지지 않았고 루소에 대한 애정 또한 만만치 않았던 그였기에 이 우연한 기회에 가슴 떨려한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였는지도 모른다. 모마에선 이미 루소의 전시회를 기획중이였고 루소에 관해서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팀은 불안하긴 하지만 나중에 들통이 날지언정 루소의 숨겨진 미공개작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 속에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톰은 하와이로 휴가도 간 상태였고 비록 원웨이 티켓만을 소지한채 비행기에 오른 팀이지만 이 기회를 빌미 삼아 모든 면에서 톰과 비교되어진 그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그러나 바일러의 저택에 도착하자 루소의 그림을 감정할 사람은 그 뿐만이 아니였다. 미모의 일본인 여인 오리에도 함께 였는데 그녀는 이미 루소 연구자로서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고 주목 받고 있는 실력자이다.
바일러가 공개한 그림은 놀랍게도 MoMA가 소장하고 있는 "꿈"과 거의 같은 그림이였는데 "꿈을 꾸었다"란 제목의 이 그림은 나신의 여인 야드비가의 손 모양만 미묘하게 달랐을뿐 별반 다르지 않은 그림이여서 팀을 충격에 빠트린다.
이미 테이트 갤러리의 유망한 치프 큐레이터에게 진작임을 평가받은 상태였는데 그렇다면 지금 MoMA의 그 그림이 가짜란 말인가? 눈 앞의 이 작품이 위작인가? 아니면 두 작품 모두 루소의 작품이란 말인가?
과연 궁핍한 생활 속에서 캔버스를 마음대로 구입할 수 없었던 루소가 이런 대형 캔버스와 많은 물감이 필요한 대작을 그것도 같은 그림을 두 번씩이나 그린걸까? 루소의 그림 앞에서 팀과 오리에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진위를 밝혀내는 사람에게 이 그림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겠다는 바일러의 제안 또한 충격적인 것이였다.
게다가 그림을 오랫동안 관찰하고도 진위여부가 밝혀질지 의문인데, 그림을 살펴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서적으로 보이는 책을 하루에 한 장(章)씩 각자 따로 읽으며 일주일 뒤에 판단하라는 바일러의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주문이였다.
미모와 지적인 매력으로 그를 들쑤셔 놓는 오리에와 팀의 대결은 긴장되면서도 야릇한 면이 없지 않다.
과연 그들은 마지막에 어떤 파트너로 남게 될것인가?


달콤한 꿈속 야드비가는
부드럽게 잠에 빠져든다
들려오는 것은 사려 깊은 뱀 피리꾼의 피리 소리
우거진 꽃과 수풀을 달빛이 비추고
붉은 뱀들도 아름다운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루소가 '꿈'을 위해 지은 시 -p 50 -

오랫동안 세관원으로 일하다 40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루소는 이 그림을 66세에 완성한다.독학으로 공부한 그림은 원근법이 무시된, 환상적인 소재와 아이가 그린듯한 그림 스타일로 그 당시 야유와 조롱 속에 '일요 화가'란 타이틀 마저 갖게 되면서 그의 그림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 그의 그림을 눈여겨 본 자가 있었으니 바로 파블로 피카소다.
동료들 가운데서도 이미 한걸음 나아간 실력으로 모자상과 아를르캉,눈먼 걸인등 사회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로 그린 그는 기술과 야심 모두 그들을 앞서 나갔지만 잘 그린 그림이란 과연 '기술'만인가?란 화두를 늘 가진 그가 열망한건 "새로운 표현"에의 욕구였다.
그리고 모두의 관심 속에 아비뇽의 여인들을 들고 나타난 피카소. 모자상과 아를르캉에 열광했던 그의 친구들은 완전히 새로운 그의 기괴한 그림에 질겁하고 만다.훗날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를 발전 시켜나간 조르주 브라크마저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그림을 완성 시킨건 피카소가 루소의 그림을 본 후 2년 후의 일이다.살롱 도톤의 야수 우리에서 '굶주린 사자'란 그림을 본 그는 과거의 어떤 화가와도, 현재 주목받고 있는 그 누구와도 전혀 비슷하지 않은 루소만의 스타일을 인상 깊게 지켜 보았다.
피카소는 루소의 그림에 영향을 받아 '아비뇽의 여인들'을 탄생시킨 것일까?
오리에와 팀의 한치의 양보없는 치열한 두뇌싸움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과 루소의 비밀스런 이야기가 담긴 고서를 하루에 한 장씩만 볼 수 있는 만큼 다음 章에 대한 극렬한 호기심은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루소의 그림 속 야드비가는 어떤 여인이였을까?
책 속에선 이미 가정이 있는 유부녀로 그려진다.일요일마다 우물에 나타난 그녀를 혼자 짝사랑한 루소는 그녀에게 팔고 남은 풍선이나 그림들을 선물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늘 시큰둥하다.오히려 그림을 배달하면서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그녀의 남편이 더 호의적이였을 정도로..
마음을 주지 않고 그의 그림을 오로지 압생트 한잔 값으로 여기는 야드비가는 루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여인이였는지 그림 속 그녀의 얼굴이 조금은 말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 장의 마지막에 나오는 알파벳의 의미는 무엇일지도 ,"꿈"이란 대작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루소의 지지자였던 피카소가 이 그림에 어떻게 연관되어진건지 ,1900년 초반 활기 넘치던 파리의 정취와 예술품 밀거래의 현장,전시회를 성사시키기 위해선 어떤 일도 불사하는 큐레이터들의 모습,경매상의 민낯도 소설에 자연스레 녹아있어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길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과연 이 책은 실존한 책일까? 누가 쓴 책일까? 결말을 향해 치달을 수록 그 반전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살인과 복잡한 범죄가 등장하는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고서 속 그 당시 루소 주변인물들과 현재의 팀과 오리에의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어떤 미스터리 소설보다도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미스터리 속 사랑이야기도 감초 역활을 해준다.
깊은 밀림속 모습과 신비로운 여인 야드비가를 그린 이 루소의 그림 한 장으로 이런 이야기를 끌어낸 작가의 상상력과 풍부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필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일요화가니,세관원 출신의 화가란 타이틀을 앞에 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유명하고 인정받고 있는 앙리 루소의 그림을 한번쯤이라도 보신 분들이라면,그의 그림에 지지를 보낸 피카소를 좋아하시는 분들이시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물론 앙리 루소란 이름을 처음 들어보았다해도 겉표지를 벗기면 속표지엔 아름다운 그의 그림 "꿈"이 인쇄되어져 있으니 이 그림을 한번 보기만 한다면 충분히 이해되어지는 내용들이라, 아트 미스터리의 세계로 풍덩 빠져보고 싶은 분들에겐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 될것임이 분명하다.



오리에의 아버지는 동물원과 식물원을 '미술관과 비슷하되 다른 곳'이라고 표현했다. 

소녀 시절에는 의미를 잘 알 수 없었지만 최근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했다.

 미술관이란 예술가들이 표현해서 탄생시킨 '기적' 이 집적된 장소,동물원과 식물원은 태곳적부터 예술가들이 표현 대상으로 바라봤던 동물과 꽃, 이 세계의 '기적'이 모여 있는 곳. 아트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이 세계를 이해한다는것, 아트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이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

 아무리 아트를 좋아해도 미술관이나 화집에서 작품만 보면 되는 게 아니잖니? 정말로 아트를 좋아한다면 네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보고 느끼고 사랑하는 게 중요한 거야.


                                                                                                                                                                                                                                       - P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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