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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게 좋은 ㅡ•ㅣ
전정숙 지음, 김지영 그림 / 올리 / 2022년 9월
평점 :
책을 많이 읽지 않을 때는 단순히 책 그 자체만 봤었고 작가나 출판사까지 살펴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저런 책을 많이 접하다보니 '이 책 마음에 드는데?' 싶어서 살펴보면 '오, 이 출판사였군!' 하는 곳들이 생겼다. '이 출판사 책이면 재미있을 것 같아!' 하는 믿음이 생긴 것인다.
출판사 '올리'는 그런 곳 중 한 곳이다. 최근에 올리에서 출간한 책을 몇 권 만났었는데 모든 책이 내용이나 완성도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노는 게 좋은 ㅡㆍㅣ》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책이었다. 아이들에게 한글의 모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원리를 알려주면서 아이들이 시선을 놓치지 않게끔 재미있는 스토리가 더해졌다.
사실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는 '어? 이거 어떻게 읽더라?' 하고 당황했다. 'ㆍ'는 훈민정음 창제 시 존재했으나 오늘날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잊고 있었다. 'ㆍ'의 명칭은 '아래아'이기 때문에 《노는 게 좋은 으아이》라고 읽으면 될 것 같다.
《노는 게 좋은 ㅡㆍㅣ》는 훈민정음의 자음과 모음 중 모음의 제자 원리와 역할을 쉽게 알려 주기 위해 기획된 그림책이다.
ㆍ(하늘天), ㅡ(땅地), ㅣ(사람人), 이 세 가지 기본 글자를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귀여운 캐릭터로 표현했다. 서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를 통해, 한글의 가치와 우수성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재미있게 잘 담아냈다.
《노는 게 좋은 ㅡㆍㅣ》의 주인공은 땅이(ㅡ), 하늘이(ㆍ), 사람이(l)다.
땅이와 사람이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만 서로 너무 달라 친하지 않았다. 그래서 땅이와 사람이는 다른 동네 자음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가 이사를 온다.
동글동글 둥글둥글 어디든 잘 굴러다니고 누구와도 잘 지내는 하늘이 덕분에, 세 친구가 모이면 뭐든지 만들어 더 신나게 놀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세 개의 기본 자음이 따로 떨어져 있으면 쓸 수 있는 글자가 많지 않지만, 모두 모여 결합했을 때 더 많은 글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모음의 창제 원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달하고 있다.
《노는 게 좋은 ㅡㆍㅣ》은 모음을 의인화해서 친구 사이로 설정한 것이 아주 재미있었다. 아이들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양 주인공들에게 감정이입해서 책에 빠져들었다. 친구와의 우정과 화합이라는 재료를 이용해서 훈민정음 모음이 만들어진 원리를 알려주는 책을 만들어낸 저자의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책을 읽었다.
훈민정음 모음 글자 제자 원리
《노는 게 좋은 ㅡㆍㅣ》 마지막에는 훈민정음 모음의 제자원리를 설명해두었다
훈민정음의 모음 기본 글자는 하늘(ㆍ), 땅(ㅡ), 사람(ㅣ)을 본떠 만들어졌다. 기본 세 글자를 결합해 지금 우리가 쓰는 모음의 형태가 완성된 것이다.
모음은 기본 글자인 'ㅡ'와 'ㅣ'를 기준으로 'ㆍ'를 결합하는 '가획의 원리'와 상하좌우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대칭의 원리'로 고안된 과학적인 글자이다.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 창제 시 닿소리(자음) 17자, 홀소리(모음) 11자, 총 28자를 만드셨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은 자음 14자, 모음 10자, 총 24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ㅿ(반시옷), ㆁ(옛이응), ㆆ(여린히읗), ㆍ(아래아) 4자가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는 한글을 배울 때는 ㆍ(아래아)를 만날 수가 없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배울 때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노는 게 좋은 ㅡㆍㅣ》라는 잘 만들어진 그림책 덕분에 아이들은 사라진 우리 글자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고, 한글이 모두 개별적인 별개의 글자가 아니라 기본 글자에 추가되고 결합되어 만들어진 참 재미있는 글자라는 걸 배울 수 있었다.
독후활동, 하늘땅사람 모음 놀이
《노는 게 좋은 ㅡㆍㅣ》에는 모음 놀이를 할 수 있는 하늘(ㆍ), 땅(ㅡ), 사람(l) 독후활동 카드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카드를 3장씩 나누어 가진 후 가지고 있는 카드를 이용해 낱말을 만드는 놀이이다. 예를 들어 하늘 카드 1장, 사람 카드 2장이 나왔다면, 'ㅔ'가 들어가는 벌레나 레몬을 만들 수도 있고, 'ㅏ'와 'l'가 들어가는 가지나 기차를 만들 수도 있는, 낱말 만들기 놀이이다. 책을 읽고 하늘, 땅, 사람 카드로 모음 놀이를 한다면 모음에 대해 더 잘 이해하면서 재미있게 글자를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책 뒷편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수업 자료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현직 교사이자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소속 김다혜 선생님이 짜 준 수업 자료라고 하는데, 책과 함께 낱말 더하기, 낱말 릴레이, 문장 말놀이 등 어휘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한다. 다양한 교과와 연계해 그림책 수업을 하면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림책을 읽은 후 독후활동으로 연계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은데, 이렇게 자료를 함께 첨부해주어 그림책을 더욱 풍성하게 읽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니 참으로 유익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 해례본
1443년 제작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나라 국보 제70호임과 동시에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고대 글자 모방설, 몽골 문자 기원설을 비롯하여 창호지를 보고 모양을 본떴다는 등 한글을 비하하는 말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며 한글이 계통적으로 독립적인 동시에 당시 최고 수준의 언어학, 음성학적 지식과 철학적인 이론이 적용되어 있는 놀라운 글자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보물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이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는 책이다. 한글처럼 독창적으로 새 문자를 만들고 한 국가의 공용문자로 사용하게 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며, 이 해례본의 발견으로 인해 한글 창제의 원리에 대해 많은 것들이 확인되고 알려지게 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한글 창제 원리의 소개 외에도 훈민정음이 정확히 언제 반포됐는지도 표기가 돼 있어서 10월 9일이 한글날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 ㅏ, ㅑ, ㅓ, ㅕ 와 같은 음소(音素) 단위까지는 가르치지만 한글 창제 원리와 제자 원리까지 가르쳐줄 생각은 단 한 번도 못했었다.
우리의 귀한 한글이 만들어진 그 원리는 청소년쯤 되어야만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하고 어려운 내용인걸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쉬운 책이 없었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주제는 연령불문 누구나 이야기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대화 주체의 수준에 맞게 재해석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싶다.
《노는 게 좋은 ㅡㆍㅣ》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훈민정음 모음의 제자원리를 쉽게 풀어쓴 책이다. 《노는 게 좋은 ㅡㆍㅣ》와 함께라면 '훈민정음 창제'라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도 우리 아이들이 마치 전래동화 듣듯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