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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웬디 미첼 지음, 조진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0월
평점 :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은 그 어떤 에세이보다 가슴 아프게 다가왔고, 많은 생각을 바꾸게 했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마무리되었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의료적인 관점으로 치매에 대해 서술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제목처럼 치매 환자인 저자가 직접 겪었던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감동적이고 유익했다.
이 책의 원제는 《What I wish people knew about dementia》이다. 제목처럼 작가가 치매에 대해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부분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이야기 해준다.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저자는 20년 동안 영국국민의료보험(NHS)에서 비임상팀 팀장으로 일하던 중 2014년 7월, 58세에 조기 발병 치매를 진단받았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거의 7년이 흐른 지금까지 간병인 없이 혼자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매는 혼자 생활이 불가능한 질병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7년 간 그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은 치매로 인해 우리가 가진 모든 감각들이 왜곡된다는 사실, 그리고 치매 환자가 실제로 어떤 식으로 느끼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가 본인의 상태를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왜곡되는 '감각'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첫부분은 치매 환자들이 겪는 감각에 대한 이야기였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에만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뇌에 문제가 생기면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 감각인 먹는 것에 관한 부분까지 왜곡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저자는 감각들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얼마나 오래 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충분히 씹지 않은 상태에서 삼키려고 하다가 목에 걸려 캑캑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마도 저자는 덤덤하게 글을 썼겠지만,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누리지 못하는 쓸쓸하고 서글픈 감정에 격하게 감정이입이 되어버렸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보통의 일상, 그보다 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식사에 대해서, 치매 환자들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지 몰랐다.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이전에는 환자보다는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입장에서 더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으며 환자들의 고통이 느껴져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아이패드는 위층에 있었고 그것을 참고하려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이패드를 가지러 위층에 도착할 때면 그 질문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을 테니 말이다."
치매 환자들이 겪는 생각의 흐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많은 순간들이 계속 단절된다면 얼마나 괴롭고 자괴감이 들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환자 스스로 가장 많이 자책하게 되는 질병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은 자책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치매 환자라면 누구나 이런 일들을 겪게 된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서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일반인들에게는 환자들이 겪는 여러 어려움을 알려주어 환자들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을 읽어보면 치매라는 질병이 환자의 일상을 얼마나 뒤흔들어 놓는지 알게된다. 미각, 후각, 청각, 시각, 촉각까지, 정말 모든 감각에 이상이 생기고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한다.
후각 왜곡이 일어나고 작은 소리에게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하나하나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저자는 여러가지 감각의 왜곡들을 다양한 예시를 들어가며 아주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다보니 치매 환자들이 겪는 모든 상황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 이해할 수 있었고, 모든 환경을 치매 친화적인 환경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저자의 말이 정말 크게 와닿았다.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저자는 시각의 왜곡에 대해 이야기 하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았던 일에 대해서 말한다. 저자는 그 순간을 치매로 인해 환각을 겪는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선물을 받는다고 표현하며 자신의 감각들을 받아들인다. 질병으로 인해 생기는 여러 낯선 감각들과 마주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저자의 자세에 놀랐다.
그래서 이 책은 치매와 관련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도 큰 위로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환자든 아니든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을 보다 긍정적이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치매 친화적인 '환경'
치매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막연하게 환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저자는 혼자 살아가고 있다. 본인의 집에서 이웃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사람에게 타인과의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일반인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말이다.
치매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영화 '트루먼 쇼'와 드라마 '완다비전' 속 웨스트뷰 마을이 생각났다. 읽으면서 조작되고 부자연스럽다는 작가의 생각에 많이 공감됐다. 누구나 내가 살아가던 그 곳에서 살고 싶지, 그와 유사하게 꾸며진 가상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치매 환자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출 수 있을까?
치매 환자들이 겪는 여러 감각의 왜곡을 잘 이해하면 치매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는 이 시점에 전세계 모두 치매 친화적인 환경을 갖추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 그러면 치매 환자들이 병원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타인과 어울려 일상적인 생활을 함께 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긍정적이어야 할 '태도'
가족 중 누군가가 치매 진단을 받는다면 다른 부양가족이 모든 것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을 읽으며 치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특히 치매 환자라도 그들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큰 깨닳음인 것 같다.
저저의 딸의 편지를 읽으며 사람은 사람답게 살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치매환자도 원하는대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어야한다. 환자 가족이 모든 것을 부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를 양육할 때 모든 것을 부모가 해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하듯, 치매환자 역시 인간으로서 그의 삶의 존중해주고 스스로 삶의 여러 부분들을 선택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치매 진단을 받으면 낙담하고 자기의심을 하기 쉽지만, 제 책은 절대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포기는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해줄 겁니다."
마지막 감사의 글 첫 문장을 읽으며 눈물과 웃음이 함께 났다. 치매 환자가 겪을 좌절감이 느껴져서 마음이 저리면서도 저자의 위트있는 모습을 보며 치매를 막연하게 두려워하기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작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은 치매 환자를 비롯해 치매라는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서 치매라는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