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 MBC 창사 60주년 VR 휴먼 다큐멘터리 대기획
김종우.MBC <너를 만났다> 제작진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래 전에, 얼핏. 짧게 나온 광고만 보고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잃은 엄마.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로써는 상상만으로도 감정이 북받쳐오르고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 짧은 광고 영상만으로도 너무너무 슬퍼서 다큐멘터리를 볼 엄두는 내지도 못했었다. 그렇게 나는 이 프로그램을 잊고 있었다.



MBC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책으로 나왔다고 했을 때, 사실 나는 책을 집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누군가의 상실의 아픔을 함께 공유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으로 만난 《너를 만났다》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본다기 보다는,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자의 제작노트를 보는 느낌이었다. 에세이 같기도 했다.  《너를 만났다》에는 제작진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고민을 거쳐서,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구현해냈는지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너를 만났다》에는 주인공 가족들을 섭외하는 단계부터 생생한 체험을 전달하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한 흔적이 남겨져있다.

<너를 만났다>를 제작한 사람들은 VR전문가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깊이 있게 바라보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 그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사람들이 메타버스와 VR이라는 과학기술을 만나 그동안 실현해내지 못한 세상을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 놀라웠다.



제작의 과정에 담긴 여러 기술적 노력들은 정말 대단했다. 결과물만 보았을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고민들이 보였다. 가상세계에서 실제 걷고 움직이는 체험자 시점의 활동부터 시작해서 그 속에서 만날 떠난 이의 생김새와 움직임과 목소리를 구현해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이 엄청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너를 만났다》 책 중간중간에는 제작과정을 연결해둔 QR코드가 있다. 사실 나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책만 읽어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영상까지 볼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면모보다 더 경이롭게 느껴진 것은 사람에 대한 진심이었다.

재회의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제작자의 수많은 고민이 담긴 과정들은 기술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향한 진심과 애정어린 마음들이 결합된 복합체였다.

진심을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 문학도, 음악도, 그림도, 그리고 영상매체도, 진심을 다한 것은 시대를 관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MBC VR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2020년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이 주관하는 ABU상 TV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수상한 것은, 떠나보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 남은 이들의 소망을 진심을 다해서 실현해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리라.



《너를 만났다》 저자인 김종완PD는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를 회복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평소와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또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억들 속에서,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남은 이들은 어떻게 그 고통에서 회복될 수 있을까?

상실은 늘 슬픔을 동반한다. 그 슬픔은 떠난 이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떠난 사람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울음이 밀려왔다.

상실의 아픔만큼 우리는 망각이 두렵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떠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내딛는 이 한 걸음이 그들을 회복시켜주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내가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너를 만났다》 제작진들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겪은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던 지점도 이야기 하고 있다.

VR기술과 다큐멘터리의 결합을 시도하는 그 시작점 단계에서 단순히 기술적인 완성도에만 집중하지 않고 이런 다양한  문제를 고민했다는 점이 단순한 테크 기술들과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었다. 과학기술이 결합되어 상상만 했던 일들을 이루어냈지만, 그 근본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품고 있는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 잘 기억하기 위해 그를 재현하는 과정이 애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를 기억하면 너무나도 슬퍼서 잊어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했던 좋은 기억들을 잘 갈무리해서 더 오래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이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너를 만났다》를 읽은 후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라는 점이었다.

기술 발전 속에서 우리는 윤리적 문제를 걱정하고 있지만, 인간은 단순히 효율성이나 편의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류애와 존엄성에 대한 인식은 《너를 만났다》 제작진 뿐만 아니라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인식이라고 믿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과학기술을 통해 또 다른 상상 속 세상을 현실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