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불평등 - 프레임에 갇힌 여자들
캐서린 매코맥 지음, 하지은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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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기초드로잉 수업에는 인체의 이해라는 수업 목표를 확보하기 위해 여성모델의 누드화를 그렸다.

(당시 우리 학교는 전통적으로 남자 모델이 오는 경우는 없었다. 남성모델은 여성모델에 비해 구하기도 어려웠다.)

남자의 나신을 드로잉한 첫번째 경험은 학부 졸업후 였다. 그림 모임 참가자들이 돈을 모아 남자 누드 모델을 고용했다.

처음 보는 인간 모델이 가운을 벗자 근육이 조금 있는 마른 몸매가 드러났다. 학부 수업때 남자애들이 여성모델의 가슴을 열심히 표현한 것처럼

나는 남성 모델의 중요 부위를 시간을 들여 묘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 둘의 공통점은 '튀어나와 있는 신체 부위'다. 

과거의 나와 남학우들은 아마도 '이걸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순진했다. 그때는 몰랐다. 모든 예술 작품에는 의도가 있고 그려진 상황이 존재하며 치밀한 작동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술과 문화는 젠더와 인종, 그리고 재현의 정치학 토론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 중심에 미술과 문화가 있다(p29, 시작하며).

이미지들이 어떻게 조명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 비너스는 '전쟁터'?

우리는 흔히 '비너스'가 여성성 자체를 상정한다고 믿고 있지만, 

비너스의 몸은 수치심, 욕망, 인종, 성에 관한 토론이 벌어지는 전쟁터와 같다.


그림을 처음 배울 때, 나는 말로의 비너스(두상)를 만났다. 신의 모습을 본따 이마와 콧대에 꺾이는 부분이 없는 비너스 상은 우아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녀는 아버지(우라노스)의 남근과 고환이 바다에 떨어져 탄생한 신이라는 내용을 알기 전까지는.

아프로디테의 '아프로스'가 바다거품이라는 의미를 알았을 때에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라노스의 피와 정액이 바닷물에 섞인 거품이라는 지식은 

더이상 비너스를 '사랑의 비너스❤'라는 아름다운 생각만으로는 그녀를 떠올릴 수 없게 했다.


비너스는 풍요와 복을 바라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신(神)'이라 불리며 숭배받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1940년, 벨라스케스는 한 남성 후원자의  주문으로 나체의 여성(로크비 비너스)를 그렸다. 그는 본 작품으로 인해 예술계에서 파문당할 수도 있었다.

당시 나신의 여성을 그린 작가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위험한' 해당 작품을 의뢰한 어떤 후원자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이 본인을 지켜주리라 강하게 믿었을 것이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작품 또한 '원하는 만큼의 쾌락을 누리기 원했던 특권계층의 기분전환용(본서 p50)' 결과물이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의 '비너스들' 작품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누드모델로 일하는 것이 여성들에게는 더 해방적이라 암시했던 런던의 테이트모던 전시장의 입장(본서 62p참조)은 꽤 충격적이다.  


+작가의 도덕성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흥미로우면서도 불쾌한 기준이다. 예술적 뮤즈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여성편력을 '발휘해' 7-8년마다 아내를 갈아치운 피카소와

아동 성애 취향을 오롯이 드러낸 발튀스의 작품(꿈꾸는 테레즈)이 그렇다. 



2. 성모마리아에서 밀프(milf)까지

예술작품에서 어머니는 언제까지 '인내하며 욕망을 억누르고 지고지순한 존재'여야 하는가? 두 번째 챕터에서는 그러한 렌즈를 때려부수는 것은 어떤가요? 라는 '가벼운' 제안을 건넨다.


여성스럽게 보이기 위한 '드래그퀸', 미술사에서 말하는 '베누스 푸디카' 자세가 예술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수치심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인데 반해

허마이어니 윌트셔의 '황홀한 출산을 하는 테리즈' 작품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여러번 검열을 당했다. 해당 작품에서 작가는 여성이 출산하는 순간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지만 결국은 비슷할 것이라 여기는 감상자의 편견을 박살내는 듯한 작품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경험과 그로인해 생기는 안경으로 세상을 본다.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만' 본다. 그래서 흔히 자신이 본 적 없는 방식의 렌즈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3. 이제까지 당하고만 살았다고요? 

그렇다면 이 그림을 추천합니다.

엘리사베타 시라니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장군을 죽이는 티모클레아(1969)' 작품은 매우 흥미롭다. 

많은 예술작품에서 신화속 이미지를 차용하여 여성을 무력한 존재로 그리는 경우가 잦지만(에우로페의 겁탈, 햄릿의 오필리아, 파리스의 심판 등) 본 작품은 부당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본 서적은 다분히 여성주의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독자의 특성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서적이다. 

예술작품의 상상력이 제한돼선 안되듯, 감상자의 렌즈와 관점도 다양함이 당연하다. 작품 하나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와 폭이 얼마나 넓을지, 관점의 폭을 확장하고 싶은 분께 권하고 싶다. 

작품을 보고 느낄때 단순한 형태, 안료 뿐 아니라 그림이 완성된 시대적 배경과 이슈를 고려함에 나아가 그림 속 모델과 화가가 처한 상황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이전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아트북스서포터즈 활동으로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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