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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어디서 게으름을 피우는가 걷는사람 시인선 25
김개미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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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붙잡아주는 ‘너‘의 손 덕분에,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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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악마는 어디서 게으름을 피우는가 걷는사람 시인선 25
김개미 지음 / 걷는사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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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인 문장들은 솔직하고 거리낌없다. 마음에 솔직해본 적 없는 내가 글로써 말해본 적도 없는 것들을 시인이 대신 말해준다는 착각과 함께, 나는 통쾌하고 즐거워진다. 책장을 넘기는 손길은 지체 없다. 한 장씩 넘어갈수록, 더 대담하고 직설적인 문장들이 기다리고 있다. 여러 번 되짚어 읽기도 모자라 입속말로 몇 번은 더 중얼거려보게 되는 구절들이 많았다. 시집이 주었던 전체적인 인상은 다음과 같다. 손바닥이 따가울 정도로 깔끄럽고 거친, 무게감 뚜렷한 붉은 벽돌.

 

그러니까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사랑은 때로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지만 때로 격정과 환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랑은 뜻대로 멈추거나 다시 시작할 수 없는 의지 바깥의 것이기도 하다. 시를 읽으며 나는 함께 침잠하기도, 함께 들뜨기도 하며 화자의 사랑을 함께 경험한다. 애초에 화자는 이 사랑을 포기할 마음이 없다. 시인 역시 사랑의 이야기를 그만 써내려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사랑은 가장 친숙한 동시에 언제나 낯선 주제이며, 따라서 시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각자가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흥미롭고 빛이 난다.

 

1부의 말들은 날아가는 화살 같다. 무심하게 던진다기보다는 작정하고 쏘아 보내는 듯한 언어들이다. 거침없는 문장들을 신나게 읽어내리며 나는 한껏 유쾌하다. 그러다가도 2부로 접어들며 수많은 를 향한 말들 앞에서는 막연해지고 만다. 화자의 감정들은 짙게 농축되어 있고, 꼭 그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가끔은 어디에 빗맞기도 한다. 책장 너머의 독자, 다시 나의 어깨너머에 있는 어떤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듯한 문장들이다. 3부에서 말들은 이제 내부로 흘러들어온다. 말려들어온다. 전달되지 않는, 그래서 생각이나 혼잣말에 불과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결코 무용하지는 않은데, 화자는 언젠가 그것을 소리내어 말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며, 아직 전하려는 의지 역시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부로 이어지며 화자는 점점 더 멀리, 혹은 점점 더 가까이 밀려나다가, 다시 끌려들어온다. “, 거기 어디야?”라는 의 물음만으로.

 

를 붙잡는 의 이미지가 오래오래 강렬하게 남는다. 사랑이란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지만 시집을 읽는 내도록 나는 자꾸 이다음은 어떻게 될지를 가늠해보게 되는 것이다. 가슴 아래에 묵혀둔 말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차마 뱉어두지 못하고 지금껏 참아왔다면. 화자의 입을 빌려 대신 성토할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마침내 돌아갈 곳을 찾은 유랑객의 기분으로 책장을 덮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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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걷는사람 시인선 28
희음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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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 뼈들이

빛에 겨워 반짝이는 거?

p.23 보물찾기

 

밀려나온 우리는 밀려나온 우리를 알아보았으므로.

p.57 우리는 반쯤 잠이 든 채로

 

 

선득하고 날카롭게, 그리고 정확하게 그려지는 이미지들은 명징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상아를 거칠게 깎아 만든 마네킹 같은 느낌이 든다. 반듯하고 위험한 모서리나 꼭짓점을 만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단단한 이미지보다 또렷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이다. 쏟아지는 말들은 직선으로 내리꽂힌다. 외침이고 고함이다. 이렇게 확실한 말이지만 그 안에 위협이나 불안은 없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떨쳐내고 자립하는 사람의 선언을 듣는 느낌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1부가 면대면으로 직접적인 을 하고 있다면, 2부는 발화자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는느낌으로 보다 우회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3부는 좀더 막연해진다. 꿈에서 하는 약속처럼 현실감 없는, 하지만 잠든 동안만큼은 더없이 선명한, 그래서 오히려 현실과 닿은 지점이 발생하며 진짜처럼 느껴지게 되는 이야기들. 언어는 현실에서든 몽중에서든 마찬가지로 유효한 것이다. 이러한 발화들은 4부로 넘어오며 더욱 분명해진다. 벽과 마주쳤을 때조차 화자는 우는 대신 크게 묻는다. “벽이란 무엇입니까?”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았다. 맨발정확하게 반반으로 나뉘었던 나무젓가락 맥락도 없이 허리가 부러지고라는 문장, 그리고 온쉼표 기호를 제목으로 붙인 3부의 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 특징적인 지점이 있었다면 시를 읽는 내내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겠다. 해설에서도 언급되었듯 나 역시 화자가 지칭하는 우리는 시집 바깥에서 희음의 시를 읽고 있는 우리를 포함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곁에 오래 두고 읽고 싶어지는 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살아나갈 힘이 부족해 망연해질 때마다 이 외침을 반복해서 듣는다면 나 역시도 좀더 분명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긴다. 무엇보다 함께 말하고 있다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종종 고립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꾸준히 찾아보는 책이 될 거라는 예감이다. 아직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존재를 되새기도록 돕고, 우리가 포기할 필요 없음을, 더 당당히 해도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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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걷는사람 시인선 28
희음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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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시끄럽게 말해도 된다고, 우리가 여기서 함께 말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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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은 채식주의자 짧아도 괜찮아 4
구병모 외 지음 / 걷는사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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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새롭게, 다시 고민할 수 있도록 도와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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