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의 남자
백민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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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의미가 없다'가 아니라 '내가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의미를 찾지 못하면 무엇이든 소홀히 하기 마련이다. -223쪽

나는 앞으로도 그런 위기가 또다시 닥치면 몇번이라도 작가로서의 나를 죽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살게 할 것이다. 그래도 책은 계속 읽었다. 나는 작가가 되기 훨씬 전부터 도서관 소년이었고, 그래서 죽고 죽이는 와중에도 또 하나의 나인 도서관 소년은 살아남아 하던 일을 계속할 수가 있었다.-229쪽

내가 글쓰기를 그만두자 비로소 그 끔찍한 세계의 문도 조금씩 닫히기 시작했다. 자크 아순은 '증오의 모호한 대상'에서, 증오란 "사랑의 이면"이 아니라, 사랑이 "중단"되었을 때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그 문은 닫혔고, 나는 글쓰기에 대한 나의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231쪽

그러니 어쩌면 나는 혀끝의 신을 본 것일 수도 있다. 남자도 여자도 인간도 아니라면 방금 내 혀끝에서 태어난 신일 수도 있다. 일억이나 되는 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오 분 전에 내가 새로 구워낸 신일 수도 있다. 신이라면 나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내 혀끝이 종교의 발상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종교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은 다시 씌어져야 한다.-49쪽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너무 피곤했고 너무 뚱뚱했고 너무 더러웠고 너무 잘못한 게 많았다. 그랬다. 나는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잘못들을 어떻게 바로잡지도 못한 채 또 다른 잘못들을 저지르기 위해 항상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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