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용서받지 못한 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3월
평점 :
“유 짱, 그러다 잘못하면 떨어진다.”
오전 11시가 지난 시간, 장을 보고 돌아온 애쓰코가 베란다에 소리를 질렀다...
소설의 첫 시작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첫 장면이나 첫 글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역시 베란다에서 떨어진 엉컹퀴 꽃 화분이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헤친다.
“내 딸이 아내를 죽였다.”
책 뒷 표지에 쓰인 자극적인 글귀가 인상적이어서 단숨에 읽게 된 책 <용서 받지 못한 밤>.
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등의 눈>으로 호러서스펜스대상 특별상을 받았고, 일본 추리작가협회 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판타지 요소와 미스터리한 소설로 이야기 반전을 기대하며 읽었지만, 반전이 약해서 끝부분이 좀 아쉬웠다.
그러나 8만 8천 개가 넘는 일본 특유의 민속 신앙 신사의 묘한 분위기와 산울림제의 갑뿌들, 번개가 내리치는 마을, 그 번개가 치면 더 잘 자라는 버섯, 어머니의 수상한 죽음, 독이 든 버석국 살인, 천벌을 받듯 번개를 맞은 누나, 신관의 죽음, 딸의 실수로 인해 죽은 아내, 유성이 떨어지는 사진, 벼락으로부터 몸을 지켜준다는 꽃말을 지닌 엉컹퀴 꽃 등이 절묘하게 버물어진 이야기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서 딸을 지키려고 했던 따뜻한 부정(父情), 그 부정이 아내를 잃은 슬픔까지도 비밀로 지켜야만 했던 처절한 가족들의 모습이 처연하기까지하다.
“살인자라고 다들 흉포하지 않았고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가치관을 앞세우지도 않았어요. 그건 아사마씨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니면 이렇게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을 리 없죠. 다들 이렇게 아사미씨를 지키려 했을 리 없어요.”
“살의는 분명, 언제나 수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겁니다. 그 대부분이 살인으로 이어지지 않는 건 그저 운이 좋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벼락처럼, 끌어들이는 요소와 응하는 요소가 우연히 맞닥뜨려서 살인이 일어나는 거겠죠. 약간의 불운이 살의를 살인으로 바꾸는 거에요.”
약간의 불운이라니...
비록 살인을 했지만 아사미씨는 기에씨와 가족들의 사랑받았으니,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가족을 지키고 딸을 지키기 위해 비밀을 지켜야만하는 아버지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지만, 사랑하는 딸이 끝까지 엄마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몰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