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의 두 얼굴 - 조선의 권력자들이 전하는 예와 도의 헤게모니 전략 지배와 저항으로 보는 조선사 4
조윤민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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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고 때론 놀랍기까지 하다!

 

문화유산의 두 얼굴은 지금까지 시중에 나온 문화유산 도서와는 다른 시각으로 조선시대 건축문화유산에 접근한다. 건축물 분야의 문화유산을 다룬 대부분의 대중서는 대체로 기념비적 건물의 외양과 구조를 살펴 건축학적 양식을 분석하거나 당대의 미의식과 문화가치를 논한다. 건립 배경과 사연을 헤아려 거기에 담긴 시대 정서와 선대의 정신을 헤아리고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권력 도구와 통치의 장치라는 틀로 조선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에 다가간다. 책의 핵심 내용과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왕릉과 궁궐, 읍치와 성곽, 성균관과 향교, 서원과 사찰 등 지금은 문화유산이라 부르는 이들 기념비적 건축물이 당대에는 권력 유지와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된, 눈에 보이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나 기구라는 것이다.

 

왕릉을 예로 들면, 정치세력은 사자死者(죽은 선대 왕)와 무덤(왕릉)이라는 지난 시대의 상징물을 숭배와 추모의 의례 공간으로 유지해 권력의 연원과 내력을 신성시하고 당대 권력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한다고 본다. 서원은 겉으로 보기엔 선현에 대한 제례 공간과 유생의 학습 장소지만, 동시에 통치와 지배에 대한 백성의 동조를 끌어내던 헤게모니 전략의 본거지이기도 했다고 한다. 양반만이 주관할 수 있는 서원 제례의 절차와 예식을 통해 신분 우위와 특권 행사에 대한 근거를 마련했으며, 향촌 자치와 유교 윤리서 보급 등 여러 서원 활동을 통해 주민을 감화시키고 가르쳐 순응하는 백성을 길러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이 오로지 권력 강화와 통치의 수단으로만 활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기념비적 건축물에 접근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길이 권력 도구와 통치의 장치라는 틀 하나만이 아니고, 또한 그것만이 바르다고 할 수도 없다. 지은이 또한 그동안의 문화유산 대중서가 거둔 성과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 책을 쓴 목적이 조선시대 건축의 미와 문화적 가치, 이념의 본연과 정신적 유산을 거부하는 건 아니라고머리말에서 분명히 밝힌다. 문화유산에 접근하는 길은 여러 가지이며 그 해석의 틀도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권력 도구와 통치의 장치로 쓰인 거대 건축물이라는 시각으로 조선시대 건축문화의 가치와 거기에 담긴 의미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국내 대중서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건축미와 문화양식, 정신과 사상 등을 앞세우는 찬사와 긍정 일변도의 문화유산 평가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백성의 질곡과 정치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임은 분명하다. 이 책의 성과는 따로 논의해야 하겠지만,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의 폭과 해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한 방안을 제시한 것도 분명하다.

 

동시대 서양이나 주변 국가는 어떠했나?

 

이 책은 1부 왕릉, 2부 궁궐, 3부 성곽과 읍치, 4부 성균관 · 향교 · 서원 · 사찰 등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권력의 도구와 통치의 통로라는 시각으로 이들 건축물의 쓰임새를 전하는데, 동시대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러한 건축물이 어떻게 활용됐는지를 살펴보는 에피소드로 각 부의 서두를 시작한다.

 

이런 외국의 기념비적 건축물 또한 권력 유지와 지배전략의 차원에서 다루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 샤를 5(재위 13641380)는 루브르궁을 개축해 규모를 늘리는 동시에 의상실 · 침실 · 식당 · 응접실 · 집무실 · 도서관 등 공간 구조를 세분화하고 배치를 새롭게 했는데, 이는 지엄한 왕권과 신성한 국가권력이 궁궐 건축물과 거기에서의 왕의 행위 자체를 통해 작동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선전하려는 의도였다.

 

한편, 1315세기에 발전을 거듭한 유럽의 성은 외부의 적대세력을 방어하는 데만 목적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성곽은 국왕의 현존을 알리고 왕권을 과시하는 권력 상징물이었으며, 통치의 권위를 드러내고 지배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또한 성 내부와 외부를 경계 지어 영역을 나누고, 성에 사는 사람과 성 바깥에 거주하는 사람을 구별하는 배제와 차별의 장벽이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 시대의 빛나는 기념비와 동상은

 

책을 덮으면 자연이 이런 상념이 떠오른다. 그러면 우리 시대의 궁궐과 왕릉, 성곽, 서원, 사찰은 어떠한가? 거기에서 무엇을 만들고 무엇이 이뤄지고 있는가? 힘을 가진 자들이 우리 시대의 기념비와 동상을 앞세우고 던지는 찬란한 미래에 대한 약속의 구호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책 또한 이러한 물음으로 글을 맺으며, 우리 시대의 권력자와 지배세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행복을 제시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훗날 문화유산이 될지도 모를 이 시대의 빛나는 기념비와 동상 뒤로 그림자와 어둠은 여전히 길고 깊다.” (문화유산의 두 얼굴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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