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있음 - 브뤼노 라투르와 파국의 존재론
김홍중 지음 / 이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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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가장 절실하게 '우리'가 될까? 김홍중 교수의 『가까스로이음』은 그 순간이 빛나는 승리의 역사를 공유할 때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공유된 파국의 감각" (p.31) 속에서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시대는 "거의 모든 매듭들에서 실존적 부정과 물리적 살해" (p.84)가 일어나는 위기의 순간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 '파국'을 절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을 위한 거대한 '무대' (p.82)로 재조명한다.

파국이 가져온 충격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낡은 생각들을 뒤흔든다. 그리고 그 틈새로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인식 가능성의 지금" (p.36)을 열어젖힌다. 이 무대 위로 그동안 목소리를 잃었던 두 명의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지구', 즉 '가이아(Gaia)'이다. 오랫동안 인간은 지구의 행위능력을 박탈하고(p.80) "무상의 자원을 제공하는 자연" (p.81)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은 '땅으로의 귀환'을 선언하며, 지구가 더 이상 "자애롭게 품어주는 어머니 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광폭하고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행위자" (p.81)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우리 삶에 거칠게 난입하고 있다.

두 번째 주인공은 고통을 겪어내는 '감수자'이다. 이들은 외부의 고통을 그저 수동적으로 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 책은 이들이 "시간 속에서 숙성되어 행위의 힘으로 전환되는 과정" (p.39)에 주목한다. 감수자들은 고통을 겪어내는 특수한 방식을 통해, 스스로 행동하는 힘을 축적해나가는 또 다른 행위자이다.

결국 『가까스로이음』은 이 새로운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그물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행위능력을 되찾은 지구와 고통 속에서 힘을 키운 인간의 "행위의 물결들은 서로 간섭하며" (p.79) 새로운 '공생의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는 '내가 환경 속에 존재한다'는 낡은 구분이 무너진다. 대신 "개체 자체가 이미 환경" (p.79)이 되는 새로운 관계가 펼쳐진다.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것이 위태로운 이 파국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서로 '가까스로' 이어지며 공생의 길을 찾을 수 있는지, 그 절박하고도 희망적인 사유를 만나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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