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이끄는 삶
마이클 하딘 지음, 이영훈 옮김 / 대장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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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추천하신 분께서는 호기심을 주시려는 듯 ‘위험한 책이니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위험성을 알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 받은 도전은 “ 사도적 교회는 성서의 빛으로 예수를 읽기 전에 예수의 빛으로 성서를 읽었다.”(p.45)이다.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또한 내가 아는 하나님과 '예수의 아바(Abba)'가 다를 수도 있다니, 얼마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일까?

   게다가 예수님을 지칭하여 이미 정형화된 개념인 ‘메시야’와 ‘인자’라는 용어까지도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재건되어야 할 것 만큼이나 많은 해체작업이 수행되어야 한다며, “우리가 예수가 아니라 우리의 신학 속에서 감성적으로 투자하도록 배웠기 때문에, 그런 해체작업은 아주 뼈아픈 것이다.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예수냐 아니면 우리의 신학이냐를 알아보기 좋은 테스트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어떤 것을 배우려 하지 않으며 어떤 새로운 것은 배우고자 하는 정도를 분별하는 것이다.”(p.171) 라고 말한다.

   다행히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 예수로부터인가, 혹은 구약으로부터인가?”(p.140)라는 물음은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만약 성자가 하나님의 형상이며 성자가 보복적이지 않으면, 성부와 성자도 그렇다.”(p.146)는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저자는 구약에서 읽는 진노하시는 하나님, 심판자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가 믿은 하나님, 곧 비폭력적(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콘스탄틴적 기독교’편에서는 시대가 지나는 동안 제국에 굴복했던 신학에 대하여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리고 예수와 사도적 교회의 메시지를 잊은 것을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서 ‘승리주의/폐기주의, 가현설, 가난한 자들의 소외, 폭력/전쟁의 정당화, 제도의 옹호’(p.200)를 설명한다. 아, 결코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그는 ‘모방되는 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해결책’으로서 예수의 죽음에 대하여 ‘새로운 모방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리를 용서하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오명을 씻은 희생자와 우리가 만나는 것’(p.230)이라고 한다. 여기서 ‘모방적 현실주의’와 ‘희생’ 등, 르네 지라르의 성서읽기를 다룬다. 이것이 이 책 후반부의 시작인 5장이다. 다음 장부터는 창세기로 시작한 구약 해석과 바울, 요한복음을 다루고 있다. 그 뒤에도 묵직한 내용의 부록A와 부록 B가 있다.

   역시 어려운 책이다. 쉽게 덤벼든 수학문제를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 듯하다. 그러나 풀이 과정 속에 배우는 것이 있고 결국 답은 같다는 느긋함으로 계속 들여다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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