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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반딧불의 묘 : 디지팩 넘버링 한정판 - 아웃케이스 + 포스터 카드 + 필름 북마크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타츠미 츠토무 외 목소리 / 더블루(The Blu)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 리뷰 : <반딧불의 묘>
소개
영화 <반딧불의 묘>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1988년에 제작한 영화입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등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한 영화의 프로듀서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는, 감독이라는 직책으로서 <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이웃의 야마다군>등의 많은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죠.
지브리 스튜디오 이전의 시절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애니메이션인 <알프스 소녀 하이디>, <플란다스의 개>,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등의 세계명작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연출을 담당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한 영화 <가구야 공주 이야기> 또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입니다.
지금 이야기할 <반딧불의 묘>는 ,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첫 번째 작품입니다.

영화의 지향점 : 반전(反戰)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일본. 부모를 잃고 기댈 사람 없이 전시에 세상에서 방치된 아이들의 삶을 다룬 영화로, 큰 틀에서 보자면 전쟁의 해악을 고하는 일종의 반전(反戰)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아이들의 행복했던 과거와 참혹한 현재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비참함, 전쟁으로 인한 수도 없는 비극을 생생하게 묘사해 냅니다. 전쟁은 군인 뿐만이 아닌, 전혀 전쟁과는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행복했던 삶들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짓밟는지를 끊임없이 보여줍니다.
영화는, 여동생을 둔 14~15세가량 되어보이는 한 소년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소년은 폭격(도쿄 대공습)에 의해 어머니를 잃고, 이웃 아주머니 댁에 얹혀 살다가 구박에 의해 결국 오빠와 여동생 둘이서 집을 나와, 방공호 근처에 둘이서만 터전을 꾸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돈도 쌀도 전혀 충분치 않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동생을 위해 오빠는 마을에서 구걸을 하고, 의사를 찾아가 여동생을 위해 무언가 조치를 취해 달라고 부탁도 해 봅니다. 그러나 전쟁통에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빠는 공습 때를 틈타 민가를 헤집고 다니며 도둑질까지 해 보지만 결국은 여동생의 죽음을 지켜보기만 할 뿐입니다.
이 영화는 전쟁이 빚어낸 비극과 시대의 참상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보는 사람이 불편해질 정도로 일말의 미화도 없이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그려내고 이야기는 결국 남매의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고서야 끝이 납니다. 시종일관 잔잔하고 조용한 연출로 묘사되지만 분위기는 어둡고 절망적이죠. 전쟁에 방치된 아이들의 비극적인 생활과, 그것이 무색할 정도로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대조되어 보는 사람을 울리는 영화입니다.
감독은 소소하고 작은 사물들을 잘 활용하며 잔잔하고 구슬픈 감성을 극대화시키죠. 영화적 구성이나 줄거리 자체가 간결하면서도 상당히 인상깊었고, 영화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 또한 직선적이고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반전(反戰)을 주요 테마로 다루고 있는 영화 중에서도 이 영화만큼이나 강렬한 임팩트와 메시지를 보이는 작품은 몇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전쟁의 잔혹성과 무자비함 뿐 아니라 전쟁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기는지, 그 과정을 잘 보여준 영화입니다.
보편적인 전쟁영화와 달리, 사람이 총이나 포탄에 맞아 죽는 등의 직접적인 사망 장면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오히려 군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상이 깨져 가는 과정을 조명함으로써 '전쟁은 결코 일어나면 안 된다' 라는 메시지를 애니메이션을 통해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어린 여동생의 활기차고 순수했던 모습 그리고 전쟁 이후의 병과 죽음에 포커스를 맞추어 남매라는 일반적 보편적 관계의 정서에 기인한 스토리로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몰입하게 합니다.

일본 작품으로서의 역사인식의 한계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면서 영문 모를 거부감이 계속 느껴지더군요. 영화가 끝난 후에 이 정체모를 거부감과 언짢음의 원인에 대해 생각을 조금 해 봤습니다.
원인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 는 언급이 일언반구도 없다는 점이죠. 일본은 폭격으로 인해 무수한 사람들이 희생당한, 세계대전의 피해자라는 느낌만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말입니다. 작품 속에서 시가지 공습의 주체는 모두 미군(혹은 연합군)이고, 막상 전쟁을 일으킨 주범국인 일본의 침략적 면모는 전혀 뵤사되지 않으며 일본시민의 피해자스러운 모습만이 묘사될 뿐입니다. 영화에서는 '전쟁 앞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으며, 모두의 가슴에 상처만이 남을 뿐이다...' 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여기서 상당히 언짢음을 느꼈습니다.
물론 전쟁을 겪은 국가가 모두 피해자라는 것은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 일본' 이라는 개념 자체를 꺼낼 기회조차 주지 않습니다. 영화 안에서는, 일본이 많은 나라를 정복했던 침략국이라는 사실을 잊으려는 듯 마치 전쟁에 휘말려 침략당하는 나라 정도로 묘사됩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집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 적어도 이 영화를 본 일본인은 자신들의 국가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피해자로만 묘사되는 일본을 보며 '전쟁의 책임은 다른 나라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영화를 포함한 '매체'란 이런 이유 때문에 엄청난 위력을 지닙니다. 우리가 보는 영화의 메시지는 우리도 모르게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스물스물 들어가 가치관과 사상을 구성하는 일부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동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서구 혹은 제3세계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일본을 전쟁의 피해자로 인식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소름끼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극단적 비유를 들어 일본 대신 나치독일을 그대로 대입해 보자면, 전쟁의 불씨를 먼저 당기고 국가의 주도로 무려 600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 독일이, 미영프 연합군에게 폭격을 당하고는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부르짖는 셈입니다. 생각하면 섬뜩하죠.
전쟁이 불러오는 비극, 전쟁의 극단성이 잘 표현된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바로 이러한 부족한 역사의식, 그리고 이 영화가 다른 이들에게 미칠 왜곡된 역사인식입니다. 마치 '일본은 전쟁의 피해자일 뿐이다' 라는 메시지를 아름답게 포장시키려고 아이들의 참혹한 모습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군요.
일본의 입장에서 '전쟁의 참상' 을 그려내려는 시도 자체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전쟁을 일으킨 주체(일본)가 조금이라도 언급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네요. 우익스러운 느낌이 풀풀 나는 영화는 아니지만, 시종일관 감수성을 자극하며 자신들이 침략자였다는 사실을 잊으려 한다는 냄새가 나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영화에 나타나는, 전쟁의 주체를 착각한 듯한 왜곡된 역사인식 때문에 반전적 메시지를 잘 담고 있는 좋은 영화의 의미가 퇴색되어 매우 안타까울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