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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 지금은 사라진 고대 유목국가 이야기
사와다 이사오 지음, 김숙경 옮김 / 아이필드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흔히 접하는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서,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목민족에 대한 관심은 극히 적었고 그런 민족들의 존재여부도, 우리가 배워왔던 세계사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목국가 혹은 중앙아시아의 이미지란 - 흔히 거란, 여진, 몽골, 그리고 만주족에서 끝나곤 합니다. 이 정도 아는 것도, 한국사 시간에 배웠던 '우리나라를 침탈한 유목민족'이라서 그나마 알고 있는 것일테죠.
오늘날의 역사서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서양의 입장에서 그 중심으로 쓰인 것이 압도적인 양을 차지합니다. 한편, 동양의 고대~중세사같은 연구의 경우에는 중국의 기록과 역사를 많이 참조할 수밖에 없습니다.(중국의 역사서나 문자사료가 워낙 방대하기에 그렇죠) 그런데 이 또한 철저히 중국의 시각과 입장에서의 역사라는 한계가 남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흉노족을 비롯한 많은 민족들은 그들 고유의 문자가 없거나, 혹은 문자가 있더라도 사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있지 않고 양 자체도 적기 때문에 이들의 역사를 파헤치려면 중국의 역사서에 온전히 의존하는 수밖에 없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의 입장에서 이들을 보게 되며, 중국의 시선에 비친 이들은 흔히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일이 잦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흉노'라는 이름 자체도, 중국이 이들을 부를 때 비하의 의미를 담아 통칭하던 단어입니다)
흔히들 중국이 몇천년간 이어져 온 하나의 강대하고 영속적인 국가라고 하지만, 사실 고대부터 그 근간은 유목민족이 없었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국을 정복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중국 영토는 현재의 1/4정도밖에 미치지 않는 대륙 남부 쪽에 한정되어 있었겠죠. 그리고 애초에 거란, 여진, 몽고, 만주 등의 정복왕조들을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데에 성공한 중국인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중국이 몇천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거지, 사실 만주족이 정복한 청나라, 혹은 몽골의 원나라를 '중국'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알고 보면 상당한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중국'을 강조한 중국정부와 역사가들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중국의 역사는 그렇게 쓰여지고 가르쳐져 왔지만, 그 유목 정복왕조들과 남쪽의 한을 비롯한 중화 왕조들은 서로 아예 다른 나라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죠.
여튼 서양중심의 세계사 연구에서, 꽤나 오랜 시간동안 유목민족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역사 연구는 항상 변방에 위치해 있었고 큰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허나 그들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지대하며, 이들을 빼놓고는 지금의 세계사를 완벽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책은, 그 유목민족 중 거의 원류에 해당하는 흉노를 다루는 책입니다. 기원전 4세기 정도에 발흥하여 10세기 정도를 구가하다가 사라졌다고 알려진 이 민족, 흉노족이 끼친 영향은 동서양 세계를 막론하고 무지막지합니다. 기원전 1세기부터 몇백년에 걸친 한나라의 중원 공략 대상의 최전방에는 항상 이 흉노족이 있었고(우리에게 친근한 '삼국지'의 위서에도 흉노족이 자주 언급됩니다), 기원후 5세기쯤 서방세계를 침탈해 동로마와 서로마제국에 무지막지한 공포를 안긴 아틸라 대왕의 훈족도 흉노에서 비롯된 민족이었고요. 또한 이들 훈족의 팽창으로 인한 연쇄반응으로 유럽대륙에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만 봐도, 이들이 서양사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신라시대의 기록을 보면 흉노와 신라의 물적, 인적 교류 또한 무시할 수 없었던 수준임을 감안할 때 흉노라는 민족은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들이기도 하고요.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으로, 엄청나게 소상한 서술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흉노의 기원가 발흥부터 멸망까지의, 거시적인 흐름을 한 눈에 이해하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책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 흉노라는 하나의 유목민족을 조명하며 그들의 문화, 관습, 언어, 행정조직 등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기에 흥미로운 책입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 더군다나 흔히 언급되는 몽골 혹은 만주가 아닌 - 흉노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 자체가 얼마 없다는 점에서라도, 이 책의 가치는 상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