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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해마다 오는 게 가을이고, 그 때마다 보는 게 낙엽이면서도, 해마다 그 즈음 바람이 쌀쌀해지면
문득문득 행동에 옮기지도 못할 거면서도 여행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펴든 책이었다.
값진 책의 공통된 속성이라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상을 주고, 반성의 계기가 되며
언제 보아도 소소하더라도, 사소하더라도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아닐지.
꽤 오래 전에 사서 -원래 그러했지만- 조금 더 누래진 책장 하나하나를 다소 꼼꼼히 펴 들면서 여행기의 새로운 맛에 입맛을 들였다.
시인이 바라본 바다는,
실제로 외롭고 적막하고 황량한 모습마저도 참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혼자 바닷가에 누워 달콤한 낮잠을 잘 수도 있고, 새벽녘의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도 흘리고,
일 하는 사람, 땀 흘리는 사람에게서 새생명을 발견하고 사랑의 의미를 찾는,
그런 모습을 보니 그래서 시인이구나, 싶었다.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 ㅡ 여행의 팁이라든가 맛집 소개, 가는 길 안내, 볼 만한 명소...
그런 게 없어도 그저 펼쳐진 바다를 보담고 있는 포구와 그곳에 정박 중인 배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서술이 마음을 움직인다.
특히 저기 저 곳, 여수.
'밤을 세운 긴 기차여행 끝에 당신이 한 낯선 바닷가에 닿는다면 그곳의 이름이 무엇이었으면 좋겠는가.
목포? 부산? 포항? 강릉?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밤을 세우고 햇빛을 만나고 처음 본 바닷가 마을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곳의 이름이 목포면 어떻고 포항이면 어떻고 청진이면 어떠한가.
그러나 소금 내음 속으로 물살 선선하게 번져가는 그 마을의 이름이 '여수'라면,
당신 한눈에 그 마을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 바닷가에 신발 두 쪽을 벗어두고 눈빛 맑은 그곳의 한 처자와 남은 세월을 아득바득 살아봄직하지 않겠는가.
별, 꽃, 바다, 꿈, 생선, 솥, 밥, 나무, 불, 물, 솥, 그물, 달빛 ......
한 두 음절이면 족할 단어들의 서러운 눈빛과 함께, 숨어서 오래오래 적막하게. -151쪽.
새삼스레 다가온 이름에는, 웬지 고즈넉한 분위기와 우수에 찬 눈을 지닌 누군가를 만나 동행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홀로 떠나는 여행. 그 멋을 진작 누리지 못한 나의 두려움이 살짝 아쉬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