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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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동화작가의 첫 소설이자 읻다의 한국 소설 첫 책인 『메리 소이 이야기』는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맛의 이야기다. 첫입은 달콤한데 끝은 쌉싸름한, 그저 동화 같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쿡 찔리는. 은수의 엄마는 어릴 적에 동생 메리 소이를 잃어버렸다. 미미제과에서 이 사연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 후 많은 ‘메리 소이’들이 딸기맛 웨하스 모양의 집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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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무게는 기억을 조작한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에 곱하기를 하는 것이다. 나와 내 동생의 시간이 모두 통편집된 것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 중에 의미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P.155)

이야기는 은수의 시점에서 ‘편집’된다. 『메리 소이 이야기』는 은수가 쓰는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은수에게 의미 있는 건 살해 사건이나 방화 사건이 아니라 삼촌과 마로니와 함께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 마영희(마로니)의 막장 드라마 같은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은수에게는 메리 소이가 아니라 제리미니베리가 의미 있기 때문에 제리미니베리가 진짜 메리 소이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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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드라마에선 조금만 아귀가 안 맞아도 난리를 치면서 자기 삶은 온통 미스터리로 남겨두고도 당연하다고 생각해.” (P.194)

특히 드라마 작가 마로니는 은수에게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였는데, 마로니는 욕하면서도 자신의 드라마를 계속해서 보는 대중에 대해 위와 같이 말한다. 즉 “드라마는 삼류 드라마일지라도 개연성이 있어야 하지만 삶은 도무지 아무런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마치 제리미니베리처럼.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삶에 대한 화풀이를 막장 드라마 같은 데에 쏟아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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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히 웃을 만한 이야기인데도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그런 일들이 있다. 슬픔을 봉인한 채로 우스꽝스러워진 이야기들.“ 위 구절을 보고 기쁨과 슬픔은 반대말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메리 소이 이야기』는 기쁨과 슬픔을 잘 버무려 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웃음과 슬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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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읻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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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시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 씨가 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일을 다녀온 후 개와 산책을 나가고 바에 들른다. 지루하리만큼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성냥갑에서, 아내 로라에게서,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버스를 운전하면서, 시를 발견하는 패터슨 씨의 시선은 되풀이되는 하루하루가 결코 똑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 씨의 일주일을 다룬 영화 〈패터슨〉은 도시를 남성과 동일시한 동명의 시집 《패터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패터슨》은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가 패터슨이라는 미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쓴 서사시이다. “개별적인 것들로부터 시작할 것, 그리고 결함을 지닌 수단으로 전부 그러모아 그것들을 보편화할 것-“(15p)이라는 서시의 구절에서 시인이 다른 도시가 아닌 패터슨을 택한 이유가 드러난다. 패터슨에는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는 없는 ‘지역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패터슨에는 또한 퍼세이익 폭포가 있다. 시인은 퍼세이익 강의 흐름에 따라 《패터슨》 1권부터 4권까지 네 권의 책을 썼다.(후에 5권도 썼다.) 폭포 위의 강, 폭포 자체가 맞이하는 파국, 폭포 아래의 강, 마지막에 이르러 거대한 바다로 흘러드는 것까지. 영화 속 폭포와 주변 경관이 참 멋있었는데, 표지 뒷면을 단색으로 하지 않고 폭포 이미지를 넣은 점이 좋았다. 무엇보다 예일 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패터슨》의 타이핑 원고 이미지를 활용한 앞표지가 매우 마음에 들었고, 원서를 출간한 뉴디렉션스 출판사의 보도자료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종이의 질감이 부드러워 넘기는 맛이 있었다.

시인은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다는데(독자의 입장에서도 몹시 애써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기는 했다.),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실험적인 장시라 나에겐 난해하고 어려웠다🥲 번역가님께서 정말 애쓰셨을 것 같다. 황유원 시인이 번역한 《패터슨》의 국내 첫 완역본이라는 데 이 책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뒤에 있는 번역가의 해설이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저자의 글들을 그대로 가져와 보여줌으로써 저자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시를 진정 이해하려면 논문 같은 관련 자료를 따로 많이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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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0 그것이 바로 시인의 업무다. 내과 의사가 환자를 다루듯, 모호한 범주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앞에 있는 것에 대해 자세히 쓰며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발견하는 것. (순전히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존 듀이는 “지역적인 것만이 보편적인 것으로, 그것을 기반으로 모든 예술이 만들어진다”라고 말한 바 있다.

P.332 저는 흐름을 따라 바다로 이어지는 강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할 일이라고는 강을 따라가는 게 전부였고, 그러자 시가 생겨났죠. 그곳에는 강둑에 사는 사람들, 제가 저의 이야기에서 썼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곳에는 흐름을 따라가는 강과도 같은, 제가 인생에 대해 느끼는 방식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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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듀나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읻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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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ᵔ.ˬ.ᵔ₎

 앞표지에 제목도 저자명도 출판사명도 아무것도 없다. 글자는커녕 귀여운 토끼 한 마리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 기본 정보가 없어 당황스러우면서도 만듦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시도가 신선했다. 지난달에 읽었던 『서울의 워커홀릭들』도 그렇고 읻다는 책의 내용에 걸맞은 옷을 입히기 위해 고민하며 과감한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곳이라고 느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애정 어린 손길이 책 곳곳에 세심하게 묻어 있다. 어디 하나 대충 만든 부분이 없어 보인다. 책머리, 책입, 책발에 모두 디자인 요소가 들어가 있으며, 파란색 배경과 깨진 듯한 폰트로 그 시절 하이텔 감성(사실 난 잘 알지 못한다.)을 잘 살렸다.


₍ᵔ.ˬ.ᵔ₎

 컴퓨터가 신문물이었고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초, 듀나 작가는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SF의 개척자라 불리는 듀나의 데뷔 3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 책에는 1994년 데뷔작부터 2009년까지 초기작들이 수록돼 있다.

 듀나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작품을 직접 읽는 건 처음이라 기대되었다. 평소에 SF를 좋아하지만 2020년 전후의 비교적 최근 작품만 읽었던 터라 한국 SF와 장르소설의 시초는 어떨지,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다.

 수록된 21개의 단편은 오싹한 농담 같은 이야기들이다. 특히 시간 여행 설정이 자주 등장하는데, 대탈출3의 타임머신 에피소드가 떠올라서 재밌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바벨의 함정」과 「그레타 복음」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렇게 하나의 세계관을 (그것도 한국 SF의 계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창작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놀랍다.


₍ᵔ.ˬ.ᵔ₎

소설 속 인물들이 타임 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듯이 나도 듀나의 초기작들을 읽으며 하이텔을 타고 과거로 다녀온 듯한 느낌이었다. 한국 SF를 좋아하지만 듀나의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자에게는 그를 알아가는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고, 듀나에 대한 애정으로 작품을 따라 읽고 있는 독자에게는 처음 보는 단편들과 각 단편 뒤에 있는 코멘터리를 통해 듀나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는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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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우리 문화유산 그림책 - 신석기 시대 암각화부터 조선 후기 민화까지 462가지 유물을 그림으로 만나다
안승희 지음 / 한권의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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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이후로 박물관에 자주 가지 않으니 문화재를 볼 기회가 없었다. 박물관에 직접 가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 문화재를 볼 수 있지만, 교과서나 전시 도록 속 이미지는 딱딱하고 건조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 있는 문화유산들은 왠지 모르게 따스하고 정감이 갔는데,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거리감 있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문화재의 영역을 따뜻하고 감성적인 시선으로 담아내고“자 서술 형식이 아닌 화집 형식을 채택했으며, 같은 주제의 문화유산들이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한 장 안에 그렸다고 한다. 실제로 언뜻 보면 사진이라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미지는 최대한 꽉꽉 들어차게 하고 설명은 간략하게 하여 이미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좋았다. 이 점이 문화유산을 다룬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독자를 위해 맨 뒤에 ‘찾아보기’ 페이지도 따로 들어가 있다. 또한, 문화재를 하나하나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특성에 따라 네 개의 장으로 분류한 데서 독자를 고려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첫 번째 장에서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도자기를, 두 번째 장에서는 벽화, 초상화, 지도 등 그림을 다룬다. 이어서 세 번째 장에서는 불상, 탑, 사찰 등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를,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장에서는 군사, 장식, 건축, 과학까지 여러 분야의 문화재를 소개한다. 이처럼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한 문화재를 다채롭게 볼 수 있었다. 마치 박물관을 구경하고 온 듯한 느낌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유산을 더 친근하게 접하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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