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듀나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읻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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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표지에 제목도 저자명도 출판사명도 아무것도 없다. 글자는커녕 귀여운 토끼 한 마리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표지를 처음 보았을 때, 기본 정보가 없어 당황스러우면서도 만듦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시도가 신선했다. 지난달에 읽었던 『서울의 워커홀릭들』도 그렇고 읻다는 책의 내용에 걸맞은 옷을 입히기 위해 고민하며 과감한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곳이라고 느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애정 어린 손길이 책 곳곳에 세심하게 묻어 있다. 어디 하나 대충 만든 부분이 없어 보인다. 책머리, 책입, 책발에 모두 디자인 요소가 들어가 있으며, 파란색 배경과 깨진 듯한 폰트로 그 시절 하이텔 감성(사실 난 잘 알지 못한다.)을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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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가 신문물이었고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초, 듀나 작가는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SF의 개척자라 불리는 듀나의 데뷔 30주년을 맞아 기획된 이 책에는 1994년 데뷔작부터 2009년까지 초기작들이 수록돼 있다.

 듀나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작품을 직접 읽는 건 처음이라 기대되었다. 평소에 SF를 좋아하지만 2020년 전후의 비교적 최근 작품만 읽었던 터라 한국 SF와 장르소설의 시초는 어떨지,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다.

 수록된 21개의 단편은 오싹한 농담 같은 이야기들이다. 특히 시간 여행 설정이 자주 등장하는데, 대탈출3의 타임머신 에피소드가 떠올라서 재밌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바벨의 함정」과 「그레타 복음」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렇게 하나의 세계관을 (그것도 한국 SF의 계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창작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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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인물들이 타임 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듯이 나도 듀나의 초기작들을 읽으며 하이텔을 타고 과거로 다녀온 듯한 느낌이었다. 한국 SF를 좋아하지만 듀나의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자에게는 그를 알아가는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고, 듀나에 대한 애정으로 작품을 따라 읽고 있는 독자에게는 처음 보는 단편들과 각 단편 뒤에 있는 코멘터리를 통해 듀나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는 책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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