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성이 간다 - 신주쿠 구호센터의 슈퍼히어로
사사 료코 지음, 장은선 옮김 / 다반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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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현수성은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다. 평범하게 산 사람들은 결코 접하지 못할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그는 맨 몸으로 이겨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악의 경험들을 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 책으로 접하게 된 현수성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맨 먼저 '괴물'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삶 자체가 생존 이었던 그가 견뎌내야 했던 시간들을 되짚어 보면, 부모와 사회가 그를 괴물로 조련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강하다'라는 말은 바로 현수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유명한 조폭 보스는 현수성을 '익혀도 구워도 못 먹을 사내'라고 평했을만큼 현수성은 지독할만치 강한 사내였다. 그 강함이 살아 남기 위해서 어쩔수없이 터득한 거였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현재의 문제가 과거의 경험과 트라우마로 인한 무의식의 발현이었다는걸 치료나 상담 과정에서 알아내기도 한다.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폭력적인 사람의 어린 시절을 되짚어보면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 였었다더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현수성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폭행으로 얼룩져 있었다. 어떻게 부모라는 사람이 약한 자식을 무방비 상태로 두고, 버리고, 죽을만큼 때릴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약한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지독한 폭력을 당한 현수성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게 기적일 정도였다.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폭행과 무관심, 그리고 아이가 누릴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조차 박탈당했던 현수성의 삶에 자꾸만 눈물이 난다.  

어느 아이가 급소를 채일걸 대비해 잘 때 배를 보호하면서 잘까? 어떤 아이가 부모에게 사랑받았던 따뜻한 추억이 단 1초도 없을수가 있을까? 여섯살 때 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환영하지 않는 아버지와 살면서 계속 폭행을 당한 현수성은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겨우 여섯살 짜리가 말이다. 현수성에게 도둑질은 나쁜 짓 이라는 개념 대신 생존에 필요한 절대적인 일 이었다.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판인데 죄책감과 양심이 어찌 생기겠는가. 또 조센징 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에겐 더 한 방법으로복수를 해줬다. 따뜻한 집과 돌봐주는 부모가 있는 녀석들처럼 약점이 있는 애들에겐 절대로 안 진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잃을 것도 없었고,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더 한짓도 할수 있었다. 

재능도, 학력도, 지원해줄 가족도 없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남들보다 두 세배 더 일했고, 악독한 짓도 서슴치 않았다. 악당이 하는 모든 일을 했다고 할 정도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업었다. 그 과정에서 돈 뿐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과 다루는 법을 익히게 됐다. 그렇게 욕을 들어가며 큰 돈을 번 그는 유흥가에 돈을 뿌리며 놀고,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하지만 현수성은 돈을 흥청망청 쓰며 노는것에만 집중한게 아니라 오히려 더 냉철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돈을 벌기 전에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정제계 인사들과 고급 인맥의 교류를 보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걸 경험하는 것으로 끝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인맥을 유지하고 넓히는데 애를 쓰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수익을 기대할텐데 말이다.

그런 현수성이 돌연 사람들을 도와주는 구호센터를 연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잠깐의 변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빚을 받아내기 위해 채무자의 부인을 매춘까지 시킨 사람이, 조폭들과 협상을 하며 더러운 돈을 긁어모으던 사람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구호 센터를 연 것일까. 갑자기 그의 등에 천사의 날개가 생긴것도 아닐테고, 하늘의 계시를 받은것도 아닐텐데 대체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사람들은 현수성에게 다른 삶을 살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어했다. 그러니까 갑자기 착한 일을 하게 된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현수성은 여러 매체를 통해 사카이 대사를 만나 개심을 했다거나, 아카사카에서 남을 돕던게 계기가 됐다고 말한 모양이지만 그건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것이었단다.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그 답다는 생각이 든다. 단 한가지의 경험만으로 지금까지의 인생을 바꿀만한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찾자면 백혈병 바이러스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던 시점일 것이다. 처음엔 에이즈 인줄 알았던 그는 자신이 죽게 된다는 걸 알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혼자 저 세상으로 갈순 없으니 복수할 다섯명을 죽이자 라는 것이었다.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게 아니라 살의를 먼저 느껴버린 현수성은 뒤늦게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살인에 사용하려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한지,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다가 죽는 것인지 묻게 만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방에 들어간 그의 눈에 '비영리 법인'과 '자원봉사'라는 글귀가 들어오게 된다. 그 글귀가 묘하게 마음에 남았던 그는 살의로 불태웠던 에너지를 봉사로 바꾸게 된다. 남은 목숨을 거기에 쏟아붓자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현수성이 얼굴 만면에 미소를 띄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피해자들을 달래주고 눈물을 글썽이며 사연을 듣는다면 이런 변화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수성의 도움의 방식은 다른 곳과 많이 달랐는데, 처음 상담 모습을 보는 사람들에겐 독설을 퍼붓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또 피해자가 완전히 문제를 해결하고 자립할수 있을 때까지 모든 걸 지원해주기 보단 "사람은 자기 몸뚱이 하나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수 있다" 며  자신이 할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주고 그 후의 일은 본인의 노력에 맡겨둔다. 그 모습이 때론 매정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니 그만큼 현명한 처사도 없는 것 같다. 구호센터를 찾아오는 사람들 모두를 100% 책임지다보면 10명을 살릴수 있는 시간에 단 1명도 살릴수 없을지 모른다.  

왜 남을 도와주느냐는 물음에 그가 한 대답이 현수성을 제대로 이해할수 있게 해주는 답 같다.   

"쪼잔한 고민 가지고 죽느니 사느니 하고 있기 때문이야. 사람을 돕는 다기보다는 개구리 돌 치워주기 같은 거지. 자비라고 해둬. 그런 간단한 동기면 됐잖아. 뭐 이런 걸로 감사하냐고. 죽을 거면 맘대로 하시고, 고민도 맘대로 해. 난 누가 죽건 힘들어하건 가렵지도 않아. 하지만 온 힘을 다해 살고 싶은 사람이 온다면 전수해 줄 작적이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그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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