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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없는 생활
둥시 지음, 강경이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8월
평점 :
미래가 없는 생활에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 - 언어 없는 생활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는 어이없는 사고로 두 눈을 잃고 아들은 선천적으로 청각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리고 이 두 부자 앞에 나타난 여자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아버지와 아들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은근한 무시를 받는다. 특히 아들은 동네의 어여쁜 아가씨를 사랑하지만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리고 말을 못하는 아가씨를 배필로 맞이하고 자신들을 괄시한 마을의 강을 건너 자신들만의 터전을 만들어 살아가게 된다.
언어 없는 생활이라는 어떠한 것일까. 책을 읽기 전에 호기심을 일으키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그 생활이라는 것을 장애로 인해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가족들을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어느 날 앞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비누를 사오라고 부탁을 하며 열심히 손으로 비누모양을 그려 보지만 아들은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엉뚱한 물건을 사온다. 그리고 늦은 밤 며느리가 곤경에 빠져 소리를 질러도 남편은 들을 수가 없어서 알 수 없고, 아버지는 앞이 보이지 않아 나갈 수가 없다. 이렇듯 불완전하고 갑갑한 생활이 바로 언어 없는 생활이었다.
책을 보는 내내 이들이 정상인이 아님으로써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어쩔 때는 웃기고 어쩔 때는 안타까울 정도로 실감나게, 그리고 해학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비단 언어가 없는 생활이 이들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일 뿐일까?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가정에서도 언어 없는 생활은 계속 되고 있으며 소통되지 않아 서로 고립되고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렇듯 소설은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어도 소통이 어려운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이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있다면 자신들이 낳은 아이일 뿐이다. 그러나 그 아이도 학교라는 사회를 경험하고 바로 거기서 자신들의 부모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결국 자신도 눈과 귀와 입을 굳게 닫게 된다. 미래가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소통해 갈 것인가는 결국 독자의 몫이 된다.
이 책은 언어 없는 생활 외에도 ‘느리게 성장하기’, ‘살인자의 동굴’, ‘음란한 마을’, 시선을 멀리 던지다‘ 라는 제목을 가진 단편들이 묶여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소설 한 편, 한 편씩 마다 각자가 가진 주제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면 작가가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중국 소설에 대해 관심이 있고 좋아했기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