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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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넘나드는 이야기.

살아있는 사람과 세상에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이야기.

그러나 원이라는 아이에 집중되어 사람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진심을 엿볼 수 있다.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경험으로 인생은 내 마음대로가 아닌 세상이 원하는 대로 혹은 내가 가는 길이 오래 전 부터 정해진 것 처럼 원이는 그렇게 살았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투정 없이 착하게 언니의 빈자리를 그렇게 채웠다.



금정동 화재사건, 금정동 화재사건 생존자, 11층 이불아기...

유원은 화재사건이 당사자이다. 대구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검색해봤을 그 사건. 그래서인지 새학기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도 외면하지 않고 먼저 다가와 주었으니...

다가오는 친구들이 고맙지만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동정은 아닌지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권유로 챙겨주는 척을 하는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원이는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을 먹는 것이 아닌 종종 옥상으로 향한다. 학교는 5층 건물인데, 5층엔 쓰지 않는 낡은 책상과 의자가 쌓여져있다. 그곳은 원이의 아지트다. 이곳에서 미리 준비해온 빵,우유를 먹고 시간을 때우며 영어단어를 외운다.



오늘은 그 날이다. 화재사건이 있던 날.

원이의 언니 '유예정' 은 이 날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전 이불에 동생을 감싸고 있는 힘껏 들어올려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렇게 해서 '유원'은 살 수 있었다. 생존자가 되었다.

1층에서 이불로 감싼 아이를 받아낸 시민에게도 집중되었다. 그 시민은 11층에서 떨어지는 무게를 견디며 받아냈지만 한 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 시민과 원이네 가족은 뗄 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아저씨는 늦은 시간 원이네를 종종 찾아왔다.

사업이 잘 안풀린다는 이야기, 사는게 어렵다는 이야기 등등 좋은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국가에서 나오는 보상금과 시민 단체들의 후원금이 많았음에도 아저씨는 사업을 위해 투자했다가 실패하고 이렇게 종종 찾아와 심심풀이 하듯 떠들다 돌아간다.



원이는 아저씨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지만 늦은 밤 찾아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부모님의 손을 빌어 한 푼이라도 챙겨갈 심산이 항상 있기 때문에....
의자 두 개를 붙여 다리를 뻗고 쉬고 있을 때 모르는 아이가 올라왔다. 나의 아지트에 침입자가 들어 온 것이다. 달갑지 않았다. 그 침입자는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고 놀라기는 했지만 그냥 내 시간을 보내며 있는데그 아이가 나를 지나 옥상으로 나가며 '들어올래?' 하고 묻는다. 어떻게 열쇠가 있는지 이곳에 자주 오는지 그런데 왜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그 아이는 나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전학을 왔다고 하는데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아이와 가까워졌다. 그 아이 이름은 신 수 현 이다.

나는 종종 학원을 빠지며 수현이와 시간을 보냈다. 주로 옥상에 오거나 노래방에 갔다.

학원을 빠지는 날이면 엄마의 눈치가 보였지만 엄마는 혼내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왜 빠졌는지 묻고 그냥 피곤해서 그랬다고 하면 더이상 묻지 않았다.

원이의 삶은 어쩌면 그 사건 이 후로 정해져있을지 모른다. 아니 주변의 시선이 늘 원이를 괴롭히고 옭아맺은건지도 모른다.

p.83 " 얘, 너는 그렇게 살면 안돼. 그러면 안돼 너는."
나는 얼어붙었다.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깨우친 것처럼
그 눈빛 안에, 네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라려고 하면 될 것 같냐는 말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p.100 나는 더 나태하게 살아도 됐을것이다. 사고가 없었더라면.

나태하게 살면서도 죄책감을 덜 느꼈을 것이다. 실수를 두 세번 반복해도 초조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무언가에 자꾸 쫓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창비 출판사에서 창간 전에 서평단을 모집하는 이벤트를 보고 지원하여 일반 독자들 보다 먼저 책을 볼 수 있는 영광의 기회가 왔다. 소설 책은 한 번 읽으면 결과까지 읽어야 속이 후련한데, 이 책은 한 번 붙잡고는 놓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몰입도와 인물의 성격이 모난 부분이 있지만 그만큼 주변 사람들이 따스하게 감싸주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어릴적 부터 "ㅇㅇ 해야만 한다." 라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착한 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유원.

그 마음속에 갈등과 누군가를 향한 분노,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며 천천히 마음을 정라해나간다.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 속 깊이 쌓아놓은 묵은 때가 벗겨지는 기분이다.

스포가 될 것 같아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가 없는 점 양해바랍니

# 높은 곳에 서러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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