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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 요한신부님. 신부가 되기 전 수사의 시절.. 요한신부에게 소중했던 세사람을 잃는다. 잃는다는 것은 헤어짐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듯 했다. 죽음인가? 단지 헤어짐인가..
수도원 생활동안 형제처럼 지내던 미카엘과 안젤로.. 냉소적이고 차가운 미카엘과 따뜻하고 잘생긴 안젤로.. 그 둘과 형제처럼 힘든 수도원 생활을 이어나가면서 소소한 일상부터 큰 사건의 일들이 일어난다.
아빠스(수도원의 원장)의 비서수사이면서 약간 냉철하면서 모범생이고, 뿌렷한 주관이 있는 요한에게 소희..사랑이 찾아온다. 수사에게 사랑이 찾아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금기이고 상상할 수 없지만, 또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사랑이 찾아오는 그 순간과 사랑에 빠진 여러 순간들이 잘 묘사되어 마치 내가 요한이 되어 수도원에 있는 기분이 들게 했고 설레이게 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 신앙과 소희 사이에서 요한은 기도를 하며 흔들렸고 “사랑하라”라는 응답을 받는다. 훗날, 그 음성을 원망하지만 큰 의미에서는 하늘의 그분이 주신 응답이 옳았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소희에게 빠져.. 사랑에 눈이 멀었던 그때, 요한의 절친 미카엘과 안젤로를 잃는다. 소희를 만나러 가는 비오던 그날.. 미카엘을 데리러 차를 끌고 가던 안젤로.. 둘은 돌아오지 못했다.
교통사고로 차가 다리 아래로 떨어졌고 차량에 불이 나서 시신은 검게 탄채로.. 게다가 둘은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채 서로 안고 있었다고 한다. 아. 얼마나 가슴아픈 죽음이였는지..
그렇게 절친했던 둘을 잃은 요한에게 또 한번의 실연이 왔다. 소희가 떠났다. 소희를 위해, 사랑을 위해, 그동안의 신앙과 믿음을 버리기로 한 요한은 소희와의 미래를 꿈꾸었지만 변덕스럽게 소희는 떠났다.
그리고 10여년 뒤에.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소희가 요한을 만나고 싶다고 찾아오면서 이 소설은 시작되었고 만나러 가면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만났을까?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눴고 다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을까. 너무 궁금했지만 열린 결말로 끝났다. 아쉬웠다.
신부님이 된 요한이.. 10년전 자신을 가장 아프게 하고 떠난 소희를 다시 만나.. 멀 어쩌겠냐만은... 그래도 신성한 수도원에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사랑을 하지 않았나..
그리고 이 소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소희를 잃고 방황했고, 수도원을 나오려고 했던 요한은 기적과 같은 옛 이야기를 듣는다.
한분은 본인이 아빠스와의 면담에서 왜 수도사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저기 복도에서 대걸레를 밀고 계시는 저 노수사님처럼 살다가 죽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던...그 노수사님인 토마스수사님..
미카엘이 토마스수사님을 돌보며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었던.. 아퍼서 누워계시는 토마스 수사님.
그분은 독일 분이였고 그 옛날 한국에 와서 전쟁을 겪고 돼지취급을 받으며 노동착취와 탄압을 받았던 그때를 이야기 해주신다.
그리고 할머니.. 요한의 할머니.. 북에서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홀로 내려와 수많은 체인점을 낸 냉면집을 하며 성공한 삶을 이루신 할머니의 부름을 받고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남으로 내려오게 되었을때를 이야기 해주신다.
그리고 방황하던 요한이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와 미국의 뉴튼수도원을 인수하는 일로 그 곳에 갔을 때 거기서 만난 마리너스수사님에게서 옛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마리너스 수사님께 얘기한다.
“당신이 구해준 그녀, 갓 낳은 아이를 안고 부둣가에 서있었던 그녀, 당신이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던 그녀..그녀가 나의 할머니라고..”.
토마스수사님과 요한의 할머니, 마리너스수사님이 겪은 한국에서의 생활, 전쟁....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전쟁과 탄압속에서.. 그들은 살고 이겨냈다. 그리고 모두 하느님을 원망했지만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냈다.
요한은 이 세분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너무나도 큰 사랑을 체험한다. 그리고 뉴튼수도원 숲길에 사랑한다는 말과 소희의 기억을 두고 돌아온다.
이 소설은 전쟁과 전쟁을 겪고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세대가 바뀌었지만 그들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으로 교묘히 엮여있다. 그리고 깨닫고 삶을 알아간다.
단지 사랑이라면 표현하나에도 시니컬했었던 요한은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고 헤어짐의 아픔을 알았다. 그리고 사랑에 실패해서 죽으려고 하는 만삭의 미혼모를 살렸고, 미카엘을 너무 사랑했기에 마카엘의 죽음을 받아드리지 못했던 한 여인을 위로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요한은 알게 된다.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성장한다는 것을.. 그리고 소희로 인해 고뇌하던 그때 들은 하느님의 음성.. “사랑하라”의 의미를..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소희와의 오해도 풀린다. 그리고 10여년전에 만삭의 미혼모가 낳은 요한의 첫 영성체를 위해 무슨 선물을 살까 생각하며 소희를 만나러 간다.
믿고 읽는 공지영 소설이지만. 이 묘하게 맞물리는 인연과 그리고 그 안에 숨은 뜻에 정신없이 책을 읽었다. 정말 고통속에서 사람은 성장하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듯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지만, 그 고통의 순간에 많은 시험을 경험한다.
수도사의 사랑과 우정..그리고 헤어짐, 전쟁이라는 인간이 어떤 다른 방법으로는 경험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최악의 고통과 슬픔... 그 속에서도 기적은 있고 기적속에서 사랑과 감사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전쟁은 정말 일어나지 말아야할 것이다. 너무 처참하고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