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라인 M 1 - 한국 근현대 군사사 프로젝트 타임라인 M 1
김기윤 지음, 우용곡 외 그림 / 길찾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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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윤의 ‘타임라인 M’.



‘Help Me.’ 테크노 스릴러의 거장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소설 ‘타임라인’에서 유적을 발굴하던 대학원생들은 수백 년 전 프랑스 유적에서 영어 글씨체를 발견한다. 수백 년 전 프랑스는 잉글랜드가 지배하던 지역도 있었으니 영어 글씨체가 나올 수 있는 건 당연한 일. 그렇지만 문제는 필체다. 필체가 누가 봐도 자신들의 대학 교수 글씨체였다. 학위를 따려면 교수 글씨체를 질릴 만큼 봤어야 하니 그들이 잘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알고 보니 그들의 유적 발굴을 지원해주던 기업 ITC는 타임머신, 공간이동 장치를 발명하던 회사였고 그 타임머신 장치를 타고 수백 전 프랑스에 있을 교수님을 찾으러 간다.



대학원생들이 교수님을 구하러 간다니 참으로 이상한 흐름이지만 학위가 그만큼 중요하긴 했을 것이다. 교수님이 중세 프랑스에서 죽었다면 학위는 물건너가니까. 그렇게 중세 프랑스로 간 대학원생들은 교수님을 구하려다가 자기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이미 멈춰버린 유적을 뒤적거리고 역사책으로 읽던 것과 직접 현장에 뛰어드는 것은 워낙 차이가 크니까. ‘역사의 풍경’에서 이야기하듯 너무 현실적이면 오히려 역사를 이해하기보다 그 순간에 매몰되어버린다.



타임라인을 정리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데드풀 2’에서 타임라인을 정리하는 과정이 유쾌하게 표현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그 타임라인 정리의 어려움이 드러나기도 한다. ‘나비효과’ 같은 작품에서는 그 타임라인 정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난장판도 잘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마다 타임라인 정리가 필요하다. 교수님을 되찾아야 학위를 받거나, 세계를 구하거나, 불행이 끝나게 할 수 있다. 타임라인을 정리하다 보면 본인들이 바라던 모습과는 다른 결과를 만나곤 한다. 블랙 위도우가 죽거나, 흑사병 시대에 진입하거나, 아기 히틀러를 차마 죽이지는 못하거나. 조지 워싱턴이 델라웨어 강을 건널 때 늠름하게 건너지 않았을 수 있고 클레오파트라가 코가 그렇게 높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임라인을 정리함으로써 그 시대, 그 상황에 명확하게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무언가를 구할 수 있게 된다. 타임라인을 정리하는 과정은 볼 수 없었던 걸 보게 하며 다른 세상, 다른 관점을 만날 수 있도록 한다.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후원하던 기업 ITC는 결국 엉망이 되며 발굴 지원은 앞으로 기대하지 못하게 되겠지만 대신 교수님을 구하며 학점도 구하게 된다.



‘타임라인 M’은 한국 근현대 군사사의 타임라인을 정리하는 프로젝트 도서다. 아마도 M은 Military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밀리터리, 군의 타임라인을 정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한국 근현대 군사사에서 타임라인을 정리해야 할 정도의 일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있다. 사실 한국 역사에서 군사사는 안개가 자욱한 분야다. 보통 전쟁터에서 나오는 불확실한 요소를 전쟁의 안개라고 부르지만 전쟁 중이 아니더라도 안개가 흐릿하게 남아있다. 이는 한국 군사사에서도 그러한데, 한국 군사사는 안개가 많이 흐릿하게 가리는 부분이 많다.



교과서를 펼쳐보면 한국 근현대사의 군사적 사건들은 제법 등장한다. 한국 중등교육에서 근현대사의 비중은 아주 크다. 한국 근현대사는 시기 자체는 고종 즉위인 1864년부터를 기준으로 잡았을 때 5천 년 역사 중 고작 159년에 불과하나 주요 사건들을 전부 담아보고자 한다. 그래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대한제국군 해산, 독립군과 광복군에 대한 서술은 상당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사학적 논란을 뒤로 하되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가 언급되고 독립군과 연계된 항일조직의 활약들도 등장한다. 한인애국단의 훙커우 공원 의거나 이봉창의 의거도 자주 주제로 등장하며 이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많이 등장한다.



현재 극장에 걸려있는 ‘영웅’의 주인공 안중근도 의병이라 할 수 있고 ‘봉오동 전투’는 470만 명이나 보았으며 청산리 전투도 암시를 하고 있다. 공전의 히트를 쳤던 ‘미스터 선샤인’ 역시 시작이 신미양요로 시작하고 중간 주인공들은 의병 활동과 대한제국군 출신으로서 활동하며 마지막에는 의병 활동을 암시하고 ‘암살’이나 ‘밀정’ 같은 일제강점기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는 독립군, 광복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되는 이야기가 많다.



그만큼 한국 근현대사에서 군사적 변화와 갈등, 충돌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반대로 한국 근현대 군사사에 대한 소개는 그닥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지만 가볍게 접하기는 어려운 건 사실. 이는 한국 근현대 군사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조선/대한제국 정규군과 한국군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을 보면 거의 모두 의병/독립군을 주제로 하고 있지 정규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아니다. 사람들의 인식에서 조선/대한제국 정규군은 어지러운 망국의 군대, 국가를 지키지 못한 무능력의 군대로 인식되고 대한민국 정규군은 역사에 매몰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일지 모른다.



그 구조와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조선/대한제국 정규군은 무능력한 망국의 군대가 아니며 대한민국 정규군은 각자의 경험에 매몰될 수만은 없는 군대다. 1864년을 기준으로 조선/대한제국은 근 50년을 유지될 수 있었고 한국 역시 바로 위에 북한이라는 존재를 놓고도 70년이 넘게 존속되며 평화와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는 군의 역할이 컸으며 이들 나름대로 그 시기와 시대에 어울리는 변화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이들의 타임라인은 아직 정돈될 여지가 크다. ‘타임라인 M’은 이들에 대한 타임라인을 다시 조정하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타임라인 M’은 1편에서 우선적으로 1866년 병인양요부터 1894년 동학농민운동까지를 다루고 있다. 철종 사후 왕위에 오른 고증과 그의 아버지로서 섭정을 맡은 흥선대원군의 등장, 쇄국정책과 개항, 동학과 동학농민운동, 한반도 땅에서 일어난 청일전쟁으로 계속 이어지며 한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 중 하나로 꼽히는 시기다. 가장 정신없는 시기기도 하다. 이 시기를 살아간 자들은 평범한 조선국을 살아가다 왕의 아버지가 살아 국가를 운영하고, 이양인과 전쟁을 벌이고, 이양인과 친구가 되고, 밤에도 낮처럼 밝아지는 걸 만날 수 있었다.



‘타임라인 M’은 조선/대한제국 국군의 주요 전투와 변화를 상세하게 서술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은 매우 녹록치 않았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당대 열강이던 프랑스와 미국의 군대였으며 운요호 사건의 일본도 조선보다 더 최신예 무장을 구비하고 있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은 국가 내부의 혼란이자 내전, 혹은 반란 진압에 가깝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프랑스와 미국의 전략적 목표 달성을 막았으니 정치적으로는 성공이라 하더라도 군사적으로는 피해와 실책이 만만치 않고, 운요호 사건은 일본의 작은 범선에 대응치 못해 국가 전체가 쇄국에서 벗어나 개항을 해야 할 정도였던 사건이다. 임오군란은 나라가 군인 월급도 못 줘서 군인들이 들고 일어난, 말이 군란이지 달리 보면 쿠데타. 반정이나 마찬가지이며 갑신정변은 실패한 정변이자 일본과 연결되는 점이 많다. 동학농민운동은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반란, 동학교도의 입장에서 보면 민간인 진압으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 여러모로 좋은 기억으로 남기 어려운 사건들이다. 평소 쉬쉬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조선/대한제국 국군은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조선이 무능하여 조선 말, 개화기 시기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고 변화도 못했다고 기억하지만 오히려 왕조가 오랫동안 유지되고자 했다면 군대는 빠르게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조선 역시 조직 변화를 이루어내는데 열심이었다.



서양 근대 국가와의 첫 군사적 충돌이던 병인양요 이후 포수인 포군을 대량으로 강화하고 상비군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수도로 향하는 강화도의 방비를 강화하였고, 오랫동안 비변사 아래 고여있던 군 지휘 체계를 되살리고자 삼군부를 재건하였다. 군의 지휘 체계를 다시 세움으로써 유사시 더 기민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신형 무기를 보급하고, 수도 한양만이 아닌 전국 대부분의 군현에 포군과 포대를 배치하며 지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외세의 침략에 맞설 방도도 찾았다.



물론 뜻하는 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조선은 오랜 평화와 체제의 안정을 통해 군 조직과 무기가 오래되었고 급작스러운 변화에 기민한 대응은 어려웠다. 왕조 유지를 위한 군대는 친위대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고, 상당 부분 부패하거나 정권 교체 과정 속에서 방향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조선군은 개항이 코앞에 온 상황에서 대원군의 실각을 마주하였고, 이는 혼란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도 언급하듯 고종의 친정에 장점도 있었고 궁극적으로 일어나야 할 일임은 틀림없으나 언제나 그렇듯 국자적 위기 상황에서 군 체제의 혼란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개항을 통해 무위소가 개편되고 근대적인 조선군이 형성된다. 책을 통해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부분이 있다면 조선이 군 체제와 무기의 근대화에 굉장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청나라, 일본, 서양 등 손을 내밀 수 있는 곳을 향해 모두 손을 내밀었고 신식 군사제도를 도입하였다. 놀랍게도 동아시아의 국제 무기 시장의 형성 과정에서 조선의 역할이 중요했던 것과 무기를 다양하게 구매한 것도 알 수 있다. 자체적인 무기 생산 시도로 외부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던 근대적 무기의 국산화도 시도했다. 관심을 두지 않던 수군의 변화와 양성 시도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책에서도 드러나듯 임오군란, 갑신정변과 같은 국가적 혼란은 군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 상실로 이어져 실패로 이어지고 말았다. 신식 군대와 구식 군대의 차별을 두고, 청나라의 방식으로 교육된 부대와 일본의 방식으로 교육된 부대의 갈등이 이어지고, 그때마다 비극이 일어났다. 그 비극은 곧바로 군과 국가의 혼란으로 연결된다.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민란에도 제대로 대응 못해 결국 조정이 청나라를 끌어들이게 만들어 큰 비극, 청일전쟁과 을미사변까지 이어지도록 만든다.



책을 읽으며 안개를 걷어냈을 때 보이는 19세기 말 조선 군사사는 방향성을 잡지 못한 혼란으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난장판. 19세기 말 조선군에게 요구된 큰 흐름은 ‘지휘가 단일화된 충성심 가득한 근대적 상비군’이 될 것이다. 불행히도 원하는 결과를 내는데 너무 혼란이 컸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책을 읽다보면 좌절의 역사나 다름없다. 군 조직이 매번 이름이 바뀌고, 무기도 바뀌고, 복장도 바뀐다.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너무 자주 바뀐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책 내용 자체도 어느 정도 매니아가 읽는 책이라는 걸 감안해도, 정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문제인 거다. 그만큼 원하는 결과를 향하는 길이 어려웠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타임라인 M’은 그들의 복장, 무기, 편제 등을 그림과 지도, 그래프 등을 통해 소개함으로써 최대한 쉽게 다가가고자 노력한다. 전쟁의 안개를 걷어내는 과정 자체가 어려운 것인데 그걸 쉽게 표현한다는 건 더 어렵다. 심연의 괴수 그림자를 봤다고 그게 괴수를 봤다 하기는 어려운 것인데 심연의 괴수를 봤는데 그걸 잘 소개하는 건 몇 배는 어렵다. 책은 근현대 군사사라는 괴물의 모습을 잘 소개하고자 최대한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한국사가 요동치는 순간에 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군이 어떻게 나설지, 또 모르고 있던 어떤 것이 드러날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타임라인을 정리하다보니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 복잡함을 통해 다른 세상과 다른 관점을 만난다.



조선군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위기를 넘어가보고자 했다. 그랬기에 안개가 걷힌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망국이란 비극을 향해 나아가는 군대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보았던 군대의 모습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Help Me’라는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우리는 타임머신이 없기에 그 타임라인을 조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보내온 유적들을 파내며 그들이 말하고 싶던 걸 찾아가고 있다.



병인양요 이래로 한국사는 157년을 이어간다. 책의 1편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129년이 더 남아있다. 을미사변과 의병, 독립군과 광복군을 거쳐 대한민국 국군까지 다가올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그렇게까지 멋진 모습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비중이 높은 건, 그만큼 험난한 세상이었단 것이며 그만큼 군은 고통과 시련, 추악함과 비난의 순간들을 마주해왔으니까. 그렇지만 군기를 받쳐 든 조선의 병사들은 선명한 붉은색과 푸른색을 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 안개가 걷혔을 때도 그들은 그들에게 찾아올 고통만큼이나 명성을 드높일 자신을 하고 있다.



‘세계의 바다에 첫 걸음을 내디딘 조선에게는 스스로를 지킬 새로운 군대가 필요했다.’ - 김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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