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관 을유세계문학전집 115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지음, 이경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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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었던, 고골과의 만남 — 『감찰관』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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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출판사로부터 고골의 책을 제공받았고, 그에 나름의 소회와 감상을 덧붙여 작성된 글임을 앞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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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골과의 만남과 첫인상

11월. 아직 두 달이 남은 2021년이다. 도스또옙스끼 탄생 200주년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이런 식의 기념 주년 혹은 기념일 따위를 극히 부르주아적인 관습이라고 비하했지만(사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문학의 독자이자 학생인 나로서는 새로운 번역본들과 소장용 기념판, 그리고 관련서들의 출간이 일단은 반가운 마음이다.
올해 탄생 200주년, 즉 1821년생인 도스또옙스끼에 한 세대 앞선 작가로, 1809년생인 고골이 있다. 생년이 불과 1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도스또옙스끼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이 발표된 1846년에 이미 고골은 어떤 의미에서는 완결난(다른 말로는 끝장난) 작가였기 때문에, 한 세대 앞서 있다고 해 보았다.
그렇다면 2009년이 고골 탄생 200주년이었을 텐데, 한국의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수많은 광팬[애독자]을 거느리고 있는 도스또옙스끼에 비하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에 비하면 꽤나 초라할 정도로 조촐하게 지나갔던 것 같다. 물론 러시아에서 고골은 학교에서 중요한 작가로 다뤄지고, 교육과정상 거의 매년 등장한다고 하니, 그곳에선 달랐을 듯 하지만 말이다.* 그 해 한국에서는 번역서 한 권의 출간이 있었을 뿐이고,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모은 연구서 한 권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아마 러시아 문학 전공자들과 몇 안되는 애호가들만이 읽었을 듯 싶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책이 거의 새것이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로 「외투」를 읽었었다. 몸도 마음도 야위었던 시절에 읽었던, 내가 여전히 마음 속 가장 깊숙한 곳에 담아두고 아끼는 책이던 『가난한 사람들』(이 책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따뜻한 글을 꼭 쓰리라).『가난한 사람들』에는 고골의 「외투」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데, 나는 이 「외투」에 대한 대목에서, 그토록 처절하게 분노의 열변을 토하는 마까르 제부쉬낀에 무척 이입하였고,「외투」를 그의 말대로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작품으로 여기고 싶었었다. 그래서 나 역시 분에 받쳐 비난하기도 했었다. 그게 사랑하는 여인 바르바라가 그에게 선물한 책이었다는 걸 잊은 채. 다 지난 일이다. 
그랬기 때문인지 나는 고골을 좋아한 적이 없다. 단편이라면 뿌쉬낀과 체호프를 열심히 읽었고 좋아했다. 러시아 문학 전공 수업때 종종 마주치기도 했지만(돌이켜보니 학교에서 수업 때 다룬 작품은 「외투」, 『감찰관』, 「타라스 불바」 이 세 작품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는 끝끝내 정이 가질 않고 또 너무나 멀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떼어 버리려 해도 끈끈하게 달라붙어 결코 놓아지지 않는, 그런 도대체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매력을 내뿜는 특이한 작가가 고골이었다. 앞으로 고골을 좋아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여전히 고골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정말 독특하고 문제적인 작가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해야겠다(내가 고골에게서 최고로 꼽는 작품은『미르고로드』에 실린 무척이나 충격적인 단편「구시대의 지주들[옛 기질의 지주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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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가 고골의 기이한 삶**

니꼴라이[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일명’ 고골(‘고골’은 그의 원래 성에서 따온 필명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뽈따바[폴타바] 미르고로드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마추어 연극인이기도 했으며, 어머니는 몽상적인 성격의 광신자 기질을 소유했다고도 한다(니꼴라이는 양쪽의 영향을 모두 물려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어린 시절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 못했고(이 시절에 대해서는 그다지 상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는는 듯하다), 19살에 수도 뻬쩨르부르끄[페테르부르크]로 상경했지만, 그곳에서의 배우로서의 꿈도 시인으로서의 꿈도 모두 그에게 실패의 경험만을 안겨주고 금세 종결되었으며, 잠깐 동안의 관리 생활과 교직 생활 그리고 역사학 조교수로서의 삶도 짧기만 했을 뿐, 전혀 성공적이지도 결코 행복하지도 않았던 듯하다. 그는 가명으로 출판한 첫 시집을 모조리 수거해 불태워 버린다. 이 화형식 이후로 고골은 평생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게 된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나이 22살부터다. 그의 실질적인 데뷔작 「이반 쿠팔라 전야」를 포함하여 우크라이나 지역 민담을 주 소재로 한 여덟 이야기가 수록된, 문집 『지깐까[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가 1831년과 1832년에 걸쳐 발표된다(참고로 이 책은 도스또옙스끼의『까라마조프 형제들』에서 표도르의 책장에 꽂혀 있었고, 소년 시절의 스메르쟈꼬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 읽은 책으로, 읽고서는 죄다 거짓말이라며 못마땅해하기만 했던 책이다). 1835년에는 후속편 격인, 네 편의 우크라이나 이야기가 담긴 『미르고로드』가 출간된다. 이후 고향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에서 수도 뻬쩨르부르끄로 배경을 넓혀, 세 편의 뻬쩨르부르끄 이야기가 담긴 『아라베스크』를 낸다. 그리고 나서 그의 첫 희곡이자 가장 유명한 희곡인 『감찰관』이 발표, 초연된 해가 1836년이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작가 고골에게 특이점이 되는 해는 1842년이다. 그의 나이 33살. 그렇다면 그의 젊었던 시절의 짧았던 전성기는 10년 남짓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마저도 긴 공백기가 그 중간중간을 차지한다. 1842년 이후 그의 작가로서의 행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작가로서의 삶을 잃어버렸다, 한 마디로, 그는 이제 작가라기보단 독단적이고 광신적인 설교자와 교사이자 체제 수호자로 변해 버린다. 1852년 사망하기까지 10여 년을 몰두한 『죽은 혼』 제 2부는 미완성으로 남았고, 종국에는 그 자신도 실패작이라 생각해 그의 첫 시집의 운명을 따라 상당 부분이 불구덩이로 들어갔다. 1847년 『친구와의 서신 교환선』이라는 얼핏 보아 다소 낭만적이기도 한 제목을 앞세워 발표된 책은, 실제로는 책 속에 친구의 서신은 등장하지도 않을뿐더러 자기 글만 가득하며(이 “일방향성은 바흐친의 ‘대화주의’의 대척점에 선 ‘독백주의’”***로 봐도 될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종교적이고 숙명적인 올바른 삶’으로만 귀결되는, 정말 오로지 혼자만의 일방적인 설교와 독백으로 가득 찬, 그래서 거짓된 제목만이 기억에 남을 뿐인 괴상한 책이 되어 버린다(『서신 교환선』은 당대 러시아에서도 무슨 이런 책이 있냐며 혹평을 받았고, 2007년 무려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되었지만, 당연하게도 한국에서 이 책을 집어들 사람은 손에 꼽을 듯 싶고 책이 몇 권이나 팔렸을지 궁금할 정도이니, 정말로 고골에 미친 사람이면 읽어 보시라, 읽다가 같이 미칠 것 이다. 물론 그래서 나는 안 읽었다).
고골의 1842년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고골이 마지막으로 쓴 단편은 1842년의 (그가 한 시절을 보냈던 도시이기도 한) 「로마」이지만(미완성이라고 하며, 고골 숭배자조차도 잘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해 개정된 버전으로 다시 나온 「초상화」를 제외한다 치면, 어쩌면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외투」가 단편 영역에서의 그의 최종적인 마침표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마지막 희곡은 1842년에 발표된 「결혼」과 「도박꾼」인데(사실 마지막이라고 할 것도 없이, 완성되어 무대에 무사히 올라 상연된 고골의 희곡 작품은 『감찰관』과 「결혼」 둘 뿐이며, 실질적인 희곡 작품도 저 셋이 전부다), 다만 「결혼」은 1833년 이미 쓰이기 시작하여 이 해에 수정 발표된 것이라 하니, 희곡 중에서 그의 최종적인 마침표는 「도박꾼」이라 할 수 있겠다(이마저도 미완성작으로 평가되며 고골 생전에 상연된 적이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그리고 유일하게) 완성된 장편은 역시 같은 해 발표된 『죽은 혼』 제 1부인데, 이 작품은 「도박꾼」의 주제와 연결되며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고, 그렇다면 이 해에 일어난 고골의 완결은 아무래도 『죽은 혼』과 「외투」라 할 수 있겠다. 이 두 작품은 각각 고골 작품세계의 두 축을 이루는 ‘시골’의 세계(시골의 목가적인, 그러나 기이하고 감옥 같으며 몰락해 가는 중인 세계- 『지깐까』와 『미르고로드』, 『감찰관』)와 ‘도시’의 세계(바람 불고 기만 가득한 도시 뻬쩨르부르끄의 세계- 「코」, 「광인 일기」, 「넵스끼 거리」, 「초상화」 등 흔히 『뻬쩨르부르끄 이야기』라는 묶음으로 분류되는 단편들)를 대표한다.

고골은 1842년 6월 러시아를 탈출해 또다시 유럽으로 떠났고, 앞서 언급했듯이, 알려진 대로 그 이후의 삶은 작가로서 정말 기이하고도 끔찍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여생이었다. 사실 그의 도피성 탈출은 이게 처음이 아니었는데, 그는 1836년 4월 『감찰관』의 초연 이후 독자와 관객들의 반응에 실망해 그해 6월 곧바로 유럽으로 날랐던 전력이 있었다. 결국 도피는 그를 안정적인 상태에 내어 놓기보단 오히려 더더욱 극단적인 고립으로 이끌었고, 정신의 폐쇄적인 극기 속에서 그는 원고들을 불태우고 광신적인 단식에 돌입해 스스로를 벌하여 죽일 밖에 다른 방법은, 아마 없었던 것이다. 고골은 평생 연애도 결혼도 전혀 생각이 없었고(사실 동성애자였을 거라고 말해진다), 글쓰기 외엔 별다른 취미도 없었을 뿐더러, 저주스럽게도 식욕만이 왕성했다고 하니(최후의 단식 중에도 식욕만은 왕성했다고 한다****), 그에게 죽음이란 추악한 위장 활동을 중지하고 단죄하는 자기 파멸, 그게 아니고서야 이루어질 수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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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찰관」 읽기 - 고인 물들의 공포와 희극배우 흘레스타코프

감찰관은 5막으로 된 희곡으로, 먼저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도에서 감찰관이 오리라는 소식이 어느 시골 마을에 전해진다. 한편, 뻬쩨르부르끄에서 온 스물 셋의 하급 관리 흘레스타코프는 마을의 허름한 여관에 묵고 있다. 이미 외상을 할 대로 해서 여관에서는 그에게 식사도 제대로 내주질 않고, 돈은 이미 다 잃어 빈털터리가 되어 발이 묶여 있으며, 다른 할 일도 없고 배만 고파 여관에 더 좋은 식사를 내놓으라며 진상짓을 하는 등 시간을 때우는 중이다. 우연히 이 여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쌍둥이처럼 꼭 닮은 마을의 두 지주 둘, 그들은 자신들을 흘끔거리는 낯선 청년 흘레스타코프를 수도에서 온다는 바로 그 감찰관일거라고 지레짐작했고 시장과 관리들에게 알린다. 이제부터 시장과 관리들은 작업에 착수한다. 마을 사람들의 입단속을 실시하고, 거리와 시설들의 허물들을 감추고 단장하며, 무엇보다 가짜 감찰관인 그에게 온갖 뇌물과 돈과 맛있는 식사를 갖다 바치기 시작한다. 흘레스타코프는 상황을 자기 식대로 파악해 원래 본인이 가지고 있던 허세 끼에 더해 점점 대담해져가고, 받을 건 죄다 받아 챙긴 뒤 시장의 아내와 딸까지 농락한 후 잽싸게 마을을 떠난다. 마지막 장에서 진짜 감찰관이 도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얼어붙어 멈춘다.
줄거리는 단순하고 희극적이다. 희극적이지만 웃음 뒤에 찾아오는 서늘한 그로테스크함이 있다. 「감찰관」은 흔히 흘레스타코프라는 인간형, 소위 ‘흘레스타코프적 인간’이라는 테마와 권력과 ‘이름’이 만들어낸 형체 없는 ‘공포’라는 크게 두 가지 테마로 읽어볼 수 있는데, 두 번째 테마에 조금 더 집중해 보겠다.

먼저 마을을 덮치게 될 ‘공포’는 권력의 등장을 알리는 한 마디 ‘말’로부터 시작된다. 이 시골 마을은 저 멀리 뻬쩨르부르끄 중앙 정부의 권력이 거의 닿지 않아, 그들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굴러가고 있으며, 그 안에서도 고인물 중의 고인물인 시장과 관료들은 자연스럽게도 자기 이익만을 챙기기 위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들만의 기만적인 통치와 거기에 당연스럽게 종속된 마을의 삶은 가짜 감찰관의 등장이라는 사건으로 하여 그 스스로의 체계를 뒤집어 놓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하나씩 숨기고 싶은 비밀과 드러내고 싶은 욕망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거짓 감찰관의 등장으로 하여 그들의 비밀과 욕망의 내용이 하나씩 발설되고, 그러면서 ‘공포’라는 형체 없는 감정이 전면에 나타나 그게 마을 사람들을 역으로 덮친다. 실제로는 있지도 않았던 감찰관처럼, 있을 필요도 없었고 튀어나올 필요도 없었던 공포와 그에 덧붙어 나오는 경악, 흥분, 도취, 심지어 기이한 환희까지도 뒤섞인 감정이 마을을 접수한다. 감찰관의 발은 아직 고인 물웅덩이에 닿지도 않았건만, 웅덩이에 흐릿하게 비친 그림자만으로 그 표면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림자의 정체는 진짜 감찰관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지만, 이미 웅덩이는 한바탕 헤쳐진 후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불순물은 휘저어진 후에도 더러운 물로 남으리라. 마을은 그 후로도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골은 은근히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이를 독자와 관객들에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가짜 감찰관’이라는 장치이다. 감찰관에서는 두 겹으로 싸인 ‘가짜 주인공’이 등장하며, 이 가짜 주인공은 두 번 등장한다. 그것의 등장을 알리는 ‘소식’은 마을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며, 그리하여 고인 물의 균형을 깬다.
첫 번째 가짜 주인공은 ‘진짜 감찰관’, 그러나 주인공은 아닌, 이다. 그는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고 직급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수도에서 오기로 되어 있다는 꽤나 높은 자리에 있을 익명의 관리이자 감찰관이다. 그는 단지 ‘감찰관’이라는 역할의 이름으로 하여, 마을 사람들의 공포와 환희(사실 꽤나 많은 인물들이 은근히 감찰관이 오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를 불러오고, 뿐만 아니라 작품 제목에 떡하니 명시되어 있다는 이유로, 독자와 관객의 기대와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이 ‘감찰관’이라는 사람은 이야기 내내 코빼기도 보이질 않다가 뒤늦게야 도착한다. 그는 이야기 내내 무대 밖에 있다가 끝내는 얼굴도 비추지 않고, 당신들을 불러오라는 이야기를 했다라는 헌병의 말 한 마디로 자신을 ‘도착시킨다’. 그러니 그의 도착도 ‘도착한다’가 아니라 ‘도착했다고 한다’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는 작품 안에서 물리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못할 뿐더러, 가짜 주인공도 아닌, 사실상 살아있다고도 할 수 없을 하나의 ‘허수아비’이자 극적인 장치에 머문다. 그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그의 속성과 닮아 있는 ‘실체 없는’ 공포 그리고 막연히 뭔가가 이뤄지리라는 헛된 기대감을 마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기능만을 할 뿐일 ‘이름’으로 남는 것이다. 그는 정말로 권력의 속성과 묘하게 닮아 있는 것이다.

이 뒤늦게야 오는 감찰관에 살덩이를 붙여내고 가면을 씌워 무대 안으로 투입했다고 할 수 있는 인물, ‘또다른 가짜 주인공’이 바로 흘레스타코프인 것이다. 그는 실은 아무것도 아닌 인물임이 틀림없고, ‘가짜 감찰관’ 역할을 부여받은, 이렇게 단지 극에서의 역할처럼 ‘주인공 행세’를 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역시나 가짜 주인공이다. 그는 진짜 감찰관보다 물론 서사 전면에 등장하지만, 그는 마치 작가로부터 감찰관 연기를 하라는 지시를 받지도 못하고 무대에 투입되었다가, 극 후반부에나 가까스로 자신이 감찰관 역을 잘 연기해 내면 보수를 더 받겠구나 하고 깨닫는, 허수아비에서 겨우 한 단계 격상된 위치를 부여받은 ‘배우’이다. 배우 흘레스타코프는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무대에 선다. 그리고 그 역할을 자기 식대로 아주 잘 수행해 버린다. 그리고는 무대에서 내려올 타이밍을 잘 포착하여 유유히 떠난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를 희곡으로 써내 무대에 올렸고, 작가로서 성공해 떼돈을 벌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극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무대를 지키는 건, 마을 사람들이다. 결국 굳이 진짜 주인공을 뽑아야 한다면, 마을 전체, 혹은 마을 사람들이라는 집단적인 덩어리를 꼽아야 하겠다. 그리고 어쨌든 ‘감찰관’이라는 이름[진짜 감찰관], 그리고 실제 눈 앞에 나타나는 사실은 ‘가짜인 감찰관’인 흘레스타코프라는 장치가 마을 사람들의 무언가를 드러나게 했다. 그들의 삶은 정말이지 이 희곡 작품의 제목에 의미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던 것만큼이나 거짓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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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덧붙이는 말

이번에 출판사를 통해서, 고골의 실질적인 전작인 희곡 세 작품을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기 전 읽어 보았다(이 세 작품이 고골 희곡의 실질적인 전작이므로, 표제작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동 출판사에서 출간된 『체호프 희곡선』처럼, 『고골 희곡집』 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어도 좋았을 것 같다). 그 중에서 우리가 주로 다룬 「감찰관」은 가장 유명하고 대표작이라 할 만하고, 이미 여러 번역본으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본 을유문화사 판의 『감찰관』을 비롯하여(이경완 옮김, 을유문화사, 2021.), 내가 처음 읽었던 펭귄클래식 판에 수록된 「감찰관」이 있고(『고골 단편집』, 이기주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5(초판2010).), 아마 가장 많이 팔렸을 민음사 판의 『검찰관』이 있고(조주관 옮김, 민음사, 2002.), 여기에 하나를 더해보자면, 대학 도서관 보존서고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1974년 판 세로쓰기 서문당 문고판의 『檢察官[검찰관]』을 손에 넣어보았다. 기념삼아 집어들고 뒤적여 보니, 그동안 언어 사용이나 표기법이 많이 달라졌고, 그 시절 책에는 오타 오기가 참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편, 『감찰관』과 함께 『지깐까 근교 마을의 야회』도 동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이로서 『미르고로드』를 제외하면 고골의 실질적인 전 작품이 우리말로 거의 번역된 것이다. 최후의 작품 『죽은 혼』부터 최초의 작품 『지깐까』까지, 을유세계문학전집이 아니었으면 출간되기 어려웠을 고골의 작품들을 번역, 출간해 주신 번역가 선생님과 출판사에 감사드리며(러시아-소련문학 전문 출판사로 출발한 열린책들이 아직 고골을 한 작품도 출간하지 않은 걸 보면 놀랍다), 이 글을 마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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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라닌, 「러시아 중등교육에서의 고골 연구」, 『고골과 현대성』, 고려대학교출판부, 2009. 참조.
**고골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전기적 사실에 관해서는, 『고골 단편집』, 이기주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5(초판 2010). 에 수록된 작품 해설[로버트 맥과이어, 「고골이 창조한 세계,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다」]을 주로 참조하였다. 
***윤새라, 「고골의 현대성과 비현대성」, 『고골과 현대성』, 같은 책, 122쪽.
****고골의 식욕과 최후의 단식에 대해서는, 석영중,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148~153쪽, 예담, 20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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