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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끝 바다
닐 게이먼 지음, 송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어른이 되면 과거를 모두 잊고 산다.
어떤 때는 애초에 내게 어린 시절이란 게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뭔가를 계기로, 그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야말로 나를 지탱해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곧 현실을 살면서 또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인상 깊었던 구절들
어렸을 때 나는 때때로 만족은 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책 속에서 살았다. _27p.
어른들은 길을 따라간다. 아이들은 탐험한다. 어른들은 같은 길을 수백 수천 번 걸어가도 만족한다. 아마 어른들에게는 길에서 벗어나고, 진달래 덤불 아래를 기어가고, 울타리 사이의 공간을 찾아낸다는 생각이 아예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였고, 그것은 우리 집 대문 밖을 벗어나 오솔길로 들어갈 수 있는 서로 다른 방법을 십여 가지는 안다는 뜻이었다. 진입로를 걸어가 나가는 것과는 다른 방법들을. _95~96p.
나는 머릿속으로, 책 속으로 도망쳤다. 그곳은 언제든 현실이 너무 힘들거나 너무 꽉 막히면 내가 찾아가는 곳이었다. _99p.
“몰라. 왜 그 여자가 뭔가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해? 그 여자는 어른이잖아, 안 그래? 어른과 괴물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
“오, 괴물들은 두려워해. 그래서 그들이 괴물인 거야. 그리고 어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레티는 말을 멈추고, 주근깨가 돋은 코를 손가락으로 문지른 다음 말했다. “중요한 걸 하나 너한테 말해줄게. 어른들도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어른의 모습이 아니야. 바깥에서 보면 그들은 크고 배려심도 없고 언제나 자기가 뭘 하는지 알고 있지. 하지만 안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야. 네 나이와 다르지 않아. 진실은, 어른이란 없다는 거야. 이 넓은 세계 전체에 하나도 없어.” _184~185p.
나는 어린 시절이 그립지는 않지만, 큰일들을 망쳤을 때에도 작은 일에서 기쁨을 느꼈던 그 방식은 그리워한다.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을 지배할 수 없고, 상처를 입히는 일이나 사람들이나 순간들에서 걸어 나가버릴 수는 없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서 기쁨을 찾았다. _2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