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친구들이 나보다 잘 나갈 때 열받아. 엄청, 정말 싫다니까."

"나는 친구들을 사랑해. 그런데 걔네가 나보다 돈을 더 잘 벌지. 게다가 사는 집도..."

"친구들이 잘 되는 게 싫어. 근데 그게 또 죄책감이 든단 말이야."

누구나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적 비교우위에서 오는 심리적 박탈감이다.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한정된 자원과 권력을 가지고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본능이다.

독일어로 샤덴 프로이데(이하 샤덴)는 부정적 반응, 공감의 부재, 공감의 반대말로 타인의 고통(피해)을 즐긴다는 말이다. 즉 의도적 공감 회피다. 샤덴은 질투, 시기, 조롱, 열등감 등 복잡한 감정이 숨어있다.

과연 사람들은 남의 실패를 즐길까?

2015년 독일 한 심리학 연구실에서 서른두 명의 축구 팬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들의 얼굴에 근전도 검사 패드를 붙이고 경기 중계를 보여주면서, 독일 팀과 그 숙적인 네덜란드 팀이 페널티 킥을 성공하거나 실패할 때 그들이 미소 짓거나 찌푸리는 표정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독일 팀이 골을 넣을 때보다 네덜란드 팀이 골을 넣지 못할 때 독일 팬들은 더 빨리,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즉 자신의 성공보다는 적의 실패에 더 많이 웃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일 잘나가던 친구의 좌절만큼 달콤하면서도 찝찔한 샤덴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도공은 도공을 시기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의 실패에서 은근한 희열을 맛보고 일시적 우월감을 느낀다. 약자가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자기 위안이다.

인터넷 매체의 확장으로 샤덴은 언제 어디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철저히 악한 마음과 하찮은 도덕성의 확실한 징후이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악의 본성이다.'라고 했다. 윤리적인 면에서는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샤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샤덴은 좁게는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폭넓게는 불특정 다수에게 향한다.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바라는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게 마련이다. 샤덴은 조직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 친구나 직장 동료는 잠재적 경쟁 상대이기 때문이다.

샤덴은 자기 기만이고 비생산적인 감정일까?

세상에 남의 고통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샤덴은 대부분 자업자득, 인과응보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규칙을 어긴 자가 망신을 당할 때,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벌을 받을 때, 부도덕한 정치인의 비리가 드러날 때 느끼는 샤덴은 긍정적 선의의 힘이 되어 공적 담론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샤덴은 선. 악과는 상관없이 대부분 일시적이고 무해한 즐거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타인과 우리는 서로의 실수에서 기쁨과 안도감을 찾는다. 그러니 샤덴을 느낀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 내면에 잠재된 본능적인 감정의 일부일 뿐이다. '남의 불행은 꿀맛'이라는 일본 속담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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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티파니 와트 스미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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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친구들이 나보다 잘 나갈 때 열받아. 엄청, 정말 싫다니까."

"나는 친구들을 사랑해. 그런데 걔네가 나보다 돈을 더 잘 벌지. 게다가 사는 집도..."

"친구들이 잘 되는 게 싫어. 근데 그게 또 죄책감이 든단 말이야."

누구나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적 비교우위에서 오는 심리적 박탈감이다.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한정된 자원과 권력을 가지고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본능이다.

독일어로 샤덴 프로이데(이하 샤덴)는 부정적 반응, 공감의 부재, 공감의 반대말로 타인의 고통(피해)을 즐긴다는 말이다. 즉 의도적 공감 회피다. 샤덴은 질투, 시기, 조롱, 열등감 등 복잡한 감정이 숨어있다.

과연 사람들은 남의 실패를 즐길까?

2015년 독일 한 심리학 연구실에서 서른두 명의 축구 팬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들의 얼굴에 근전도 검사 패드를 붙이고 경기 중계를 보여주면서, 독일 팀과 그 숙적인 네덜란드 팀이 페널티 킥을 성공하거나 실패할 때 그들이 미소 짓거나 찌푸리는 표정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독일 팀이 골을 넣을 때보다 네덜란드 팀이 골을 넣지 못할 때 독일 팬들은 더 빨리,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즉 자신의 성공보다는 적의 실패에 더 많이 웃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일 잘나가던 친구의 좌절만큼 달콤하면서도 찝찔한 샤덴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도공은 도공을 시기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의 실패에서 은근한 희열을 맛보고 일시적 우월감을 느낀다. 약자가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자기 위안이다.

인터넷 매체의 확장으로 샤덴은 언제 어디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철저히 악한 마음과 하찮은 도덕성의 확실한 징후이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악의 본성이다.'라고 했다. 윤리적인 면에서는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샤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샤덴은 좁게는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폭넓게는 불특정 다수에게 향한다.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바라는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게 마련이다. 샤덴은 조직사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 친구나 직장 동료는 잠재적 경쟁 상대이기 때문이다.

샤덴은 자기 기만이고 비생산적인 감정일까?

세상에 남의 고통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샤덴은 대부분 자업자득, 인과응보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규칙을 어긴 자가 망신을 당할 때,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벌을 받을 때, 부도덕한 정치인의 비리가 드러날 때 느끼는 샤덴은 긍정적 선의의 힘이 되어 공적 담론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샤덴은 선. 악과는 상관없이 대부분 일시적이고 무해한 즐거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타인과 우리는 서로의 실수에서 기쁨과 안도감을 찾는다. 그러니 샤덴을 느낀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 내면에 잠재된 본능적인 감정의 일부일 뿐이다. '남의 불행은 꿀맛'이라는 일본 속담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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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리비언 알마 인코그니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신지영 옮김 / 알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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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에는 깨달음도, 즐거움도, 교훈도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할 뿐이다. - 소설가 정지돈의 추천사 中 -

두 권의 산문집으로 먼저 만나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단편 소설집이다. 지난 산문집에서 논리적인 사고와 지적 현란함을 보여줬는데 이 소설집도 예외는 아니다. 주제가 무엇이든 현학적이고 사변적 지론을 자유자재로 펼친다.

<오블리비언>은 여덟 단편이 실려있다. 단편 대부분이 상당한 전문지식을 요한다. 철학, 의학, 심리, 경영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과 모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등에 관해 쓰여있다.

표제작 <오블리비언>은 부부 사이 미세한 균열이 아내의 코골이 문제로 점화되어 점차 갈등으로 치닫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다. 이비인후과 검사 결과 아내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코골이는 가수면 상태에서 들리는 환청이라고 주장한다. 부부는 옥신각신하다가 급기야 전문적인 부부 상담사를 찾고, 수면 클리닉을 방문하여 뇌파검사를 받는다. 그러나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단편 제목(Oblivion)처럼 의식과 무의식,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는 과학으로도 밝혀지지 않을 신비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미스터 스쿼시>는 기업의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광고주와 기업, 클라이언트의 삼각관계를 다룬 이야기다. 마케팅 전문 용어가 쉴 새 없이 나오고, 광고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스파이 작전도 펼친다. 마치 마케팅 전문가가 작성한 기업 보고서를 읽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가명으로 발표했지만 월리스가 아니면 쓸 수 없을 글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대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엄청난 만연체에 치밀한 묘사와 위트 감각은 월리스의 독보적인 특기다.

<더 서퍼링 채널>

"어쨌든 똥이잖아요."

"동시에 예술이야. 정교한 예술작품이라고."

믿기 어렵지만 말 그대로 '응아'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어느 아티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한 잡지사는 '응아'에 관한 기사를 준비한다. 아이러니한 건 인간의 몸속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우리는 역겨움을 느낀다. 몸 안에 있을 때는 신체 일부분인데 말이다.

잡지사는 독자들이 불쾌하게 받아들일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의 진실 -생산 과정- 을 보여주기 위해 아티스트를 밀착 취재한다. 잡지사 편집부의 세계,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티스트 아내의 불순한 욕망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쓴 단편이다.

우리 내면에 잠재된 본능적인 욕구 중 하나는 인정 욕구다. <굿 올드 네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기만적인 삶을 살아온, 인정 욕구에 중독되어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기만적인 삶을 살아오면서 타인들에게 능력 있고 멋있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기만의 역설- 남들에게 멋지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수록 속으로는 스스로를 덜 멋지고, 덜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것 - 을 깨닫고 기만적인 삶에 회의를 느낀다. 그는 기만적이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노력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기만이 작동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근본적으로 무언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고, 타인의 인정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다. 욕망과 시선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삶의 온전한 만족감에 도달할 것이다. 소설 속에 월리스도 잠깐 등장하는데 코카인 중독, 우울증과 정신과 치료, 자살로 생을 마친 남자 이야기는 월리스의 삶과 흡사하다.

<오블리비언>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소설집이다. 능수능란한 언어 구사와 폭넓은 사고의 다양성은 산문집과 소설의 경계를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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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지돈 지음, 윤예지 그림 / 마음산책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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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있는 매력적인 작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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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를 요리하는 법
어득천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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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언어 채집이다. 채집된 언어는 밀도 높은 언어로 승화되어 시가 된다. 시인의 언어를 통해 일상은 구체화되고 특별한 순간으로 바뀐다. 시인은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언어의 마법사다.

'글 몇 줄에 의미意味를 담아 세상에 드리운다'라는 어득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권태를 요리하는 법>이 출간됐다. 죽음, 삶, 영혼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다.

어득천 시인은 삶의 본질을 섬세하게 바라본다. 특히 자연의 흐름인 사계절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우리 삶과 밀착시킨다. 이번 시집에는 자연과 일상적인 풍경 외에 산문 형식의 시가 제법 많이 수록되어 있다. 산문 형식의 시는 시인의 내면이 좀 더 깊게 담겨 있다.

<어머님 전 상서>는 마치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산문시로 압축했다. '어머니라는 이유 하나로' 한평생 인고의 세월을 감내해온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무심한 듯 절절하다.

어머니

어머니는 견고한 성인 줄만 알았습니다

어떠한 비바람이나 폭풍우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모든 것을 지켜 주는 그러한 성 말입니다

세월이 지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모래성이었다는 것을

(중략)

영민하고 꿈 많던 소녀였을 당신은 인생의 굽이굽이를 돌아 낯선 도시의 한편에서 생선 장수가 되었습니다

시장 어귀에 작은 천막으로 하늘을 가리고

외상으로 마련했을 생선을 자본 삼아 세상과 맞서야 했지요

겨울날의 당신은 무척이나 추워 보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 시장 길로 접어들면,

멀리 가로등 아래 당신의 삶의 터전,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의 삶의 터전이 보였습니다

먼 발치에서의 풍경은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어둠을 배경으로 환하게 켜져 있는 가로등,

가로등 불빛을 조명 삼아 하얀 눈송이들 허공으로 흩어지고,

사람들 종종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당신은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면서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요

차운 겨울바람에 이미 볼은 시퍼렇게 얼어 버렸습니다

투박한 겨울 털신도 몰려드는 냉기를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중략)

건강하시기를,

건강하여 언제나 제 가슴속에 살아 계시기를

----- <어머님 전 상서' 中에서>

시는 멀리 있지 않다. 시는 일상의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열린 시선으로 빚어내는 시는 다채롭다.

사노, 라면

이 세상

많고 많은 라면 중에

가장 이상한 라면이지

먹어도

먹어도 아침이면 다시 한 그릇 뚝딱!

화수분이랄까

(중략)

사노,라면

이게 원래 좀 싱겁기는 해

훌훌 잘 넘어가다 목에 컥 걸리기도 하고 말야

한 사십 년 먹으면 그때부터 좀 질린다 하지

그래도 있을 때 맛있게 먹어

레시피도 좀 바꿔 보고

사노라면

좋은 날도 오겠지만

또 죽는 날도 오지 않겠어

죽는 날 오기 전에 사노,라면 맛있게 먹자

권태, 우울, 허무 이런 양념 넘 쓰지 말고

맛들이면 몸에 안 좋은 거 알잖아

(중략)

- 재치 있는 시다. 일상적인 언어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끄덕, 빙그레 미소가 떠오른다.

바보 같은 여자

나는

너에게 쉬운 사람이고 싶다

물이 되라 하면 물이 되고

바람이 되라 하면 바람이 되고

그냥 돌이 되어 그대로 멈추라면 돌이 되어 멈추겠다

문득 생각난 듯 전화를 하였다가

생각해 보니 시시해서 다음에 만나자, 하여도

전혀 마음의 부담이 되지 않는 백 퍼센트 쉬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나는 너에게 순진한 사람이고 싶다

물을 보고 술이라 하면 술로 알고

하늘 보고 바다라 하면 바다로 알고

나무 보고 꽃이라 하면 꽃으로 알겠다

애인처럼 만나다

문득 네가 싫어졌다 하여도

전혀 마음의 부담이 되지 않는 백 퍼센트 순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바보 같은 사람이고 싶다

바보 같은 웃음이 싫다 해도 바보같이 그저 웃고

바보 같은 마음이 싫다 해도 바보같이 마음 주고

바보 같은 눈물이 싫다 해도 바보같이 울겠다

똑똑한 세상에 바보 하나쯤은 곁에 있어 줘야 하지 않을까

눈물 콧물 다 받아 줄 수 있는 그런 왕바보 하나쯤은

어려운 세상에

어떤 이유로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제일 쉬운 사람이고 싶다

그런 바보 같은 여자 하나 있으면 좋겠다

-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나는 네가 된다. 그것은 기쁨이고 아름다움이고 신비스러운 일이다. 사랑의 힘은 우리 안에 내재된 존재의 전환을 일으킨다. 하여 사랑은 영원을 꿈꾸는 영혼의 비상이다. 스탕달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만 혼자 훌쩍이며 울고 만다'라고 했다. 어쩌면 '바보 같은 여자'도 그러할 것이다. 사랑의 일방통행은 아프다.

권태를 요리하는 법

나른한 오후

권태가 잠들길 기다려 목을 조른다

질긴 모가지에 핏줄이 도드라지도록 힘껏 조른다

사지가 축 늘어지면 숨을 쉬고 있는지 다시 확인한다

도마 위에 올린다

중화반점 주방장 묵직한 칼로 목을 단칼에 찍어 낸다

보드라운 듯 끈적한 점액질의 껍질을 조심히 벗겨 낸다

가슴 중앙과 배꼽들 지나도록 배를 가른다

탄력을 잃은 지 오래인 심장을 떼어 낸다

끊임없이 시간을 되새김질하던 밥통도 제거한다

요리하기 좋은 사이즈로 토막 낸다

갖은양념에 재워 숙성시킨다

비 오는 어느 날

마음에 맞는 지구인 두엇 초대한다

은근히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갖은양념에 잘 숙성된 권태를 올려놓는다

속살까지 발갛게 부풀어 오르도록 굽는다

녹슨 시간의 즙汁이 그 맛을 좌우하니,

즙이 새지 않도록 이리저리 정성껏 뒤집는다

한 점 입에 넣는다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천천히 맛을 음미한다

녹슨 시간의 즙汁 이 가득 고이면 천천히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생경한 그 맛에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니,

권태롭지 않도록 가슴으로 마알간 소주를 간간이 들이붓는다

마음에 맞는 지구인 두엇으로도 이 세상이 충분하다는 듯 웃어 재낀다

허나,

나는 권태가 고기인지 야채인지, 질긴지 부드러운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알지를 못한다는 사실에 함정이 있다

권태를 목 조르면 권태만 달랑 죽는 것인지, 권태의 宿主인 나도 같이 죽는 것인지 알지를 못한다는 사실에 더 큰 함정이 있다

정작 나는 권태를 죽일, 아니 이별한 생각이 전혀 없는지도 모르겠다

게으른 듯 따듯한 눈빛으로 유혹하는 끈적한 점액질의 덩어리들을,

녹슨 시간의 즙汁을

- 권태는 평온한 일상에서 온다.

익숙함은 권태를 수반한다.

권태는 욕망의 부산물이다.

시인은 '권태를 이별할 생각이 전혀 없는지도 모르겠다'라고 한다.

어쩌면 삶이 고단한 이에겐 권태를 느낄 여유조차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권태를 적당히 즐기고 떠나보내자.

권태를 요리하는 팁 하나, 갖은양념에 '도파민'이라는 소스를 넣어보자.

단, 과식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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