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못 쓰는 남자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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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 기괴. 엉뚱. 황당. 유쾌. 이 소설에 붙일 수 있는 다양한 수식어이다. 이 단어들을 딱 두 글자로 압축하면 이렇다. '재미'


작가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지만 키리니의 기발한 발상은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거짓말과 엄살이 이 정도면 가히 슈퍼 울트라급이라고나 할까.


평범하고 정직한 이야기는 호소력이 약하다. 본질을 살짝 벗어난 비본질적인 것, 예측불허함이 우리 감성을 툭 건드릴 때, 거기에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가미된다면 호기심과 재미는 배가 되는 것.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환상적인 거짓말의 향연이다. 비현실적 이야기를 마치 현실인양 태연히 말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 허구의 세계에 푹 빠져든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세 편을 소개하면.


첫 문장 못쓰는 남자 - 첫 문장이 뭐길래

여기, 첫 문장에 목을 매는 남자가 있다. 첫 문장의 어려움 때문에 책을 쓰지 못하는 굴드. 고민 끝에 두 번째 문장부터 쓰기로 한다. 그러나 독자들이 두 번째 문장을 첫 문장으로 오인한다면? 그래서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했다는.


후일 작가가 되어 한 권의 책을 썼다. 이번엔 마지막 문장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문장을 감추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문장을 지운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을 지우면 바로 앞 문장이 또 마지막 문장이 된다. 그는 마지막 문장을 남기기 위해 미친 듯이 거꾸로 지워나가다 그만 숨을 거둔다. 미처 다 지우지 못한 미완된 작품을 남겨둔 채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중요성은 알지만, 굴드의 엄살은 상상초월이다.


거짓말 주식회사 - 거짓말은 고차원적인 예술

거짓말을 파는 회사이다. 잘 나간다. 부서 이름도 사기 부서, 기만 부서 등. 주요 고객은 정치인들, 스파이, 대기업. 등등 기득권 세력들이다.


거짓말 상품을 나열하면 유대인 대학살 부정론, 제약회사 결함 있는 약품, 북한 및 프랑스 정치계 루머, 재벌들의 탈세, 다단계 사기 등.... 이 모든 것들을 조작하고 허위로 만든다. 한마디로 우리 시대 대표적인 거짓말을 통쾌하게 비틀어서 풍자한다.


높은 곳 - 더 이상 거짓은 안 통한다

공중부양이라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진다. 진정한 지식인들이 생각에 지나치게 몰두할 때 공중부양이 된다는 것. 대학교수들은 천장에 달라붙은 채 강의를 했고, 어떤 지식인은 과도한 천재성을 발휘하는 바람에 너무 높이 올라가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지적 사유 능력과 공중부양의 높이는 비례한다. 어떤 스타들은 추락한 자신의 명성을 공중부양으로 증명하기 위해 몸에 헬륨으로 부풀리다가 죽기도 한다. 사회구성원들의 허구성을 공중부양으로 걸러낸다는 것. 이것 참 기발한 발상이다. 난 과연 공중부양할 수 있을까.


그 밖에 마르크스의 부활로 현대인들이 그의 저서 오류를 비판하는가 하면, '플란의 정리'에서 상호 분자 교환이라는 비과학적 설명이 현실화되는 이야기. '물뿌리개'의 코믹한 이야기도 베스트에 꼽힌다.


장담하건대, 이 단편집을 읽고 한 번도 웃지 않은 사람은 분명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아! 어느새 나도 키리니의 뻥을 닮아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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