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리비언 알마 인코그니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신지영 옮김 / 알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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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에는 깨달음도, 즐거움도, 교훈도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할 뿐이다. - 소설가 정지돈의 추천사 中 -

두 권의 산문집으로 먼저 만나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단편 소설집이다. 지난 산문집에서 논리적인 사고와 지적 현란함을 보여줬는데 이 소설집도 예외는 아니다. 주제가 무엇이든 현학적이고 사변적 지론을 자유자재로 펼친다.

<오블리비언>은 여덟 단편이 실려있다. 단편 대부분이 상당한 전문지식을 요한다. 철학, 의학, 심리, 경영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과 모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등에 관해 쓰여있다.

표제작 <오블리비언>은 부부 사이 미세한 균열이 아내의 코골이 문제로 점화되어 점차 갈등으로 치닫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다. 이비인후과 검사 결과 아내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코골이는 가수면 상태에서 들리는 환청이라고 주장한다. 부부는 옥신각신하다가 급기야 전문적인 부부 상담사를 찾고, 수면 클리닉을 방문하여 뇌파검사를 받는다. 그러나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단편 제목(Oblivion)처럼 의식과 무의식,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는 과학으로도 밝혀지지 않을 신비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미스터 스쿼시>는 기업의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광고주와 기업, 클라이언트의 삼각관계를 다룬 이야기다. 마케팅 전문 용어가 쉴 새 없이 나오고, 광고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스파이 작전도 펼친다. 마치 마케팅 전문가가 작성한 기업 보고서를 읽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가명으로 발표했지만 월리스가 아니면 쓸 수 없을 글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대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엄청난 만연체에 치밀한 묘사와 위트 감각은 월리스의 독보적인 특기다.

<더 서퍼링 채널>

"어쨌든 똥이잖아요."

"동시에 예술이야. 정교한 예술작품이라고."

믿기 어렵지만 말 그대로 '응아'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어느 아티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한 잡지사는 '응아'에 관한 기사를 준비한다. 아이러니한 건 인간의 몸속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우리는 역겨움을 느낀다. 몸 안에 있을 때는 신체 일부분인데 말이다.

잡지사는 독자들이 불쾌하게 받아들일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의 진실 -생산 과정- 을 보여주기 위해 아티스트를 밀착 취재한다. 잡지사 편집부의 세계,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티스트 아내의 불순한 욕망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쓴 단편이다.

우리 내면에 잠재된 본능적인 욕구 중 하나는 인정 욕구다. <굿 올드 네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인정받기 위해 평생을 기만적인 삶을 살아온, 인정 욕구에 중독되어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기만적인 삶을 살아오면서 타인들에게 능력 있고 멋있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기만의 역설- 남들에게 멋지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수록 속으로는 스스로를 덜 멋지고, 덜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것 - 을 깨닫고 기만적인 삶에 회의를 느낀다. 그는 기만적이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노력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기만이 작동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근본적으로 무언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고, 타인의 인정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다. 욕망과 시선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삶의 온전한 만족감에 도달할 것이다. 소설 속에 월리스도 잠깐 등장하는데 코카인 중독, 우울증과 정신과 치료, 자살로 생을 마친 남자 이야기는 월리스의 삶과 흡사하다.

<오블리비언>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소설집이다. 능수능란한 언어 구사와 폭넓은 사고의 다양성은 산문집과 소설의 경계를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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