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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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2차세계대전의 전후가 시대적 배경인 소설은 어렵다. 소설의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전시상황에서 보이는 비인간성, 자유의 억압과 통제, 가난 등의 이유로 소설의 분위기는 대부분 어둡거나 자조적이다. 거기다 전범국이면서 패전국이 되고, 분단과 함께 다른 정치이념으로 인한 고통을 겪은 독일, 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이면서 전쟁의 승리로 독립이 되었어야 하는데 공산국가가 되면서 소련의 영향권안에 들어가버리게 된 동유럽 국가들의 소설은 더욱 그런 느낌이다. 서유럽과는 달리 다른 이념아래 교류도 적었던 동유럽의 문화가 익숙치 않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소설속에서 느껴지는 전쟁의 트라우마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것 같아 더 무겁게 느껴진다.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에 주인공들이 2차 세계대전의 영향하에 있었던 소설들 - 양철북, 생의 한가운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모두, 나는 소설속에서 전쟁, 시대가 남긴 트라우마를 함께 읽었었다. 그리고 또 여기에 하나 더해진 책.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루마니아에 사는 아마도(?) 독일인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달한 1945년 러시아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점령지의 독일인들을 수용소로 보내는데, '나'도 수용소행을 통보받고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다. 소설속에서 수용소에 끌려가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나'는 들키면 감옥행인 동성애자이긴 하지만, 수용소에 끌려갈 때 그런 이유로 가는 것도 아니고 '독일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모두가 가는 것도 아니며, 실제 전쟁터에서 싸운 군인도 아니다. '나'처럼 러시아의 수용소에 끌려가는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아뭏든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알지도 못하는 러시아 어느 지역에 존재하는 수용소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통제아래 강제 노역을 하며 지낸다. 식량도, 의복도, 모든 생필품도 부족하고 일은 고되며, 언제 수용소의 삶이 끝날지 알 수 없는 시간들. 자신이 맡은 노동량에 비례하여 받는 빵 두덩이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수용소의 생활. 모든 사람들의 신경이 '허기'에 쏠려 있는 수용소의 삶은 '배고픈 천사'가 지배한다.

나는 전쟁당시 루마니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전쟁 후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전쟁이 어떤 비극을 낳았는지 전쟁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지 이 소설로 미루어 짐작해본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이들은, 입을 닫는다. 남아있던 가족들은 돌아온 이를 반기지만, 그들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수용소에서 돌아온 이들은, 자신들이 수용소에서 여전히 전쟁속의 삶을 살아낼 때 바깥에 있었던 가족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참전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우리가 러시아인들에게는 히틀러가 저지른 범죄에 책임이 있는 독일인들이었다. - P50

나는 지금까지도 배고픔을 상대로, 내가 그로부터 벗어났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더는 굶주리지 않아도 되었을 때부터 나는 글자 그대로 삶 자체를 먹는다. 먹을 때면 음식의 맛에 포위된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이후로 육십 년 동안, 나는 굶주림에 대항해 먹는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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