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범죄
요코제키 다이 지음, 임희선 옮김 / 샘터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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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일본 추리소설계의 유망주다운 소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요코제키 다이,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루나 잔혹하지 않다. 일본 특유의 기괴함도 없다. 멋부리지 않은 문체로 가독성을 높이고, 스토리에 집중하게 한 듯하다. 시점 전환이 많음에도 전혀 번잡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심리 묘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흡입력이 상당한 웰메이드(well-made) 소설이다.

소설 속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바다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사체가 발견된다. 정황상 자살로 사건이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타살의 흔적이 발견되고, 모든 증거들이 그녀의 남편을 지목한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그와 관련된 여자들의 거짓말과 비밀이 드러나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데... 이렇게만 말하면 단순히 치정에 의한 범죄 추리소설이라 치부될 수 있지만, 그렇지마는 않다.

아무래도 이 소설은 여성 독자들을 겨냥한 것 같다. 요코제키 다이는 보수적인 시대 배경 속 여성들의 삶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려냈다. 30년 전 일본 여성들의 이야기지만, 그때 그 나라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의 부속물에 불과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모든 여성의 이야기다.

결혼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결혼에 의해 여자의 행복이 결정되었으며, 결혼과 동시에 여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보통의 삶이었다. 지금이야 그때와 비교해보면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잔재는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으며, 아직도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보통의 삶을 살고자 했던 '마유미', 보통 그 이상의 삶을 살았던 '유카리', 보통의 삶을 꿈꿀 수조차 없었던 '리코'. 그런 그녀들의 중심에 있던 남자, '도모아키'. 그녀들의 범죄는 단지 복수심? 아님 돈? 어쩌면 남자의 부속물,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기 위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범죄는 '그'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녀들의 범죄가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책임을 피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그녀들을 범죄케 하였는가'이다. 그것은 사회 깊숙이 박혀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아닐까. 그 뿌리를 도려내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러니 '그녀들'처럼 남성을 적으로 삼고, 같은 여성을 이용하는 짓은 이제 그만하자.

결혼은 선택이고, 결혼이 여자의 행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사회통념이 되고 있다. 결혼과 동시에 퇴직을 하는 여성들은 거의 없다. 이제는 전업주부를 찾기 어려운 시대다. 그럼에도 아직도 여성은 사회적으로 취약하다. 유리천장, 육아부담, 여성빈곤, 여성을 상대로 한 각종 범죄 등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우리 여자들은 계속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게 주체적인 여성으로 새롭게 태어나길 기대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2030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비록 대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함께 견뎌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그녀들의 범죄 또는 극단적인 선택을 예방할 수 있는 하나의 작은 노력이지 않을까.

글이 평소보다 길어졌다. 그만큼 좋은 소설임을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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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m.blog.naver.com/counselor_woo/22208429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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