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을 쓴다]

스티븐 킹, 그가 유명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그린마일>(2000), <1408>(2007), <미스트>(2008)를 보았을 뿐이다. 세 편 모두 꽤나 인상적이었고 불가사의했다. 비록 영화 세 편이지만 그의 작품 스타일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워낙 독특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특유의 불가사의함은 여전했다.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것까지.

우리집에도 체중계가 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늘 숨어 있다. 올라갔다가 기분 좋게 내려온 적이 없는 체중계, 그 위에 오르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 된다면? 체중계의 숫자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그만한 희소식은 없을 거다. 그런데 체중이 느리지만 꾸준히 줄어든다면? 그러나 보여지는 것에는 변화가 없다면? 게다가 접촉하는 모든 것에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면? 기쁨을 한 순간에 공포로 바꾸는 스티븐 킹의 상상에 독자들은 유혹당할 수밖에 없을 거다. 점점 줄어들어 체중이 0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의 스토리텔링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완독하기 전까지는 손에서 책을 놓기 어려우니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상태에서 펼쳐보기를 권한다.

다만 내가 미국인이고, 그의 소설 애독자인 동시에 그와 함께 나이가 들었다면 조금 더 쉽게 읽혔을 것 같다. 번역서 특유의 이질감이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국 영화 보듯 읽으면 된다. 왠지 이 책도 곧 영화로 나오지 않을까. 할리우드라면 가능할 테니.

[삶의 무게가 줄어들면 고도가 높아진다]

저자는 말한다. "...중량도 시간처럼 기본적으로는 한낱 인간이 만든 생각 아닌가? 시계의 바늘, 욕실 체중계의 숫자, 그것들도 가시적인 영향력이 있는 비가시적 힘을 측량하려는 노력의 수단에 불과하지 않나? 미천한 우리 인간들이 실재라고 여기는 것을 초월한 보다 높은 실재를 손안에 넣어 보겠다고 애쓰는 미미한 노력 아닐까?"(32-33쪽) 어쩌면 '시간이 줄어드는 것'과 '중량이 줄어드는 것'은 '다르지 않음'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저자다(그의 나이 72세(만 71세)에 원서가 출간됨). 줄어드는 시간을 몸소 느끼면서, 이에 작가적 상상을 더하여 재창조해낸 인물이 몸무게가 줄어드는 남자, 스콧 캐리가 아닐까.

스콧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남은 인생을 만끽하기로 한다. 당면한 문제에 집중하며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꿈으로써' 작은 사회통합을 이뤄낸다. 그는 솔직히 두려웠고,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은 그를 힘들게 했지만 행복 그 이상의 고양된 기분을 느끼며 스스로 고도에 오른다.

노년의 스티븐 킹 또한 죽음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람들에게는 불꽃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초월영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한 그의 통찰이 동성혼 만큼 낯설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덕분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이는 삶의 무게가 줄어든 것이기도 하겠지.

[고도에서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책을 읽고나면 종종 저자의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해본다. 읽기 전이 아닌 읽은 후에 하는 이유는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대하지 않기 위해서고, 저자에 대해 검색하는 이유는 책을 더 깊이 곱씹기 위함이다. 그래서 한 검색에서 그의 장녀가 동성혼을 했다는 흔적을 발견했다. 그의 표현처럼 '좀처럼 낫지 않는 입병 같은 문제'이지 않았을까. 동성혼을 한 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딸이라서. 그녀를 향한 사회적 시선과 그 시선을 대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하고픈 이야기가 참 많았을 거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처럼 상냥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

​기독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따르지만 유독 성소수자는 이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동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그들을 조롱하고 밀어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성적취향은 그들의 한 면에 불과하고, 그 한 면이 다르다고 그들을 폄하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 그들을 향한 닫힌 마음을 조금 열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이 보일 거다. 상처받고 아파하는 한 사람. 이 책은 그들을 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이웃으로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을 혐오하거나 차별하지 않지만 자신의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며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스콧이 그랬다. 스콧에게 찾아온 변화와 그가 일으킨 변화의 순간들을 함께 하다보면 사회적 시선이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돌아설 지도 모른다. 고도에서 바라보면 늘상 보던 것들도 달리 보이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법이니까. 이 책을 통해 그런 불가사의를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고도에서 #스티븐킹 #황금가지출판 #소설 #미국문학 #서평 #서평단 #책리뷰 #독후감 #사회적편견 #사회적관심 #동성혼 #성소수자 #인권 #차별 #종교적관점 #삶의무게 #죽음 #고도 #노년 #불가사의

(원본: https://m.blog.naver.com/counselor_woo/2217250326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