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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평점 :
미국에서도 출판되어 2024년 ‘타임 선정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정보라 작가의 단편소설 8편 모음집이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이다.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후보에 올랐고, 올해는 이 책으로 세계 3대 SF상인 ‘필립 K. 딕’상 후보에 한국인 작가 최초로 올랐다.
“너의 유토피아” 첫 장면에 ‘나’는 눈과 바람을 뚫고 차를 몰고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는 인간이 정착하려다 실패한 척박한 행성이다.
뒷좌석에서 그가 속삭인다.
”너의 유토피아는.”
“1부터 10까지 수치화한다면, 너의 유토피아는.”
“오늘은 8이야.” 내가 대답한다.
‘나’는 인간이 버리고 간 기계이다. 인간을 뒷좌석에 태우고 먼 거리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자 만들어졌다. 뒷좌석에 인간의 형태를 하고 인간의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 역시 고장난 로봇이지만 나에게 ‘위안’이 된다.
나는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된다.
나는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을 구한다.
인간은 혼란스럽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유자였던 인간을 기억하며, 병에 걸려 떠난 그가 죽지 않고 무사히 고향 행성으로 돌아갔기를 바란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킨다.
나는 자유롭게 이동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나의 파괴됨으로 이어질지라도..
어떤 존재의 부속품이 되기를 거부하며, 몇 층일지 모르는 건물 바깥으로 허공 속으로 차체가 날아 떨어지는 장면은 아름답고 장렬하다.
소설집 맨 끝의 '작가의 말'을 읽고서, SF소설처럼 펼쳐졌던 상상의 세계가 사실은 작가의 현재 세계와 단단하게 연결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기계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서 청년이 죽었고, 크레인이 무너져서 밑에 사람을 깔아 죽였고, 지하철이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사람을 치어 죽였고, 배가 가라앉아서 사람들을 죽였다.
그녀는 기계에 의해 더 이상 사람들이 죽지 않는 세상을 상상했다.
또한 그 기계도 죽지 않고 자신을 지켜 살아가기를 바랬다.
작가의 유토피아는 아마도 사람이 더 이상 허망하게 죽어나가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그녀는 진정한 행동가로 살아가며, 학생들을 가르치며, 끊임없이 소설을 쓴다. 살아 있는 동안 유토피아가 오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더 좋은 세상이 반드시 올 것임을 믿고 계속 행동하는 멋진 분이다.
“One More Kiss, Dear” 5번째 소설도 계속 마음에 남는다.
기계가 93세의 작고 마르고 연약한 인간을 애도하며 계속 질문한다.
“인간은 어째서 출생하고 성장하며 어째서 노화합니까? 인간은 어째서 약해집니까? 약해진 인간을 곧바로 수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이 창조한 기계는 부품을 수리하고 교체하여 장기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그렇게 사용하지 못합니까?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해결 방법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물의 둥지가 말했다.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