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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인간, 그리고 하나님 - 실재에 대한 통전적 앎을 위한 과학과 신학의 연대
이안 바버 지음, 김연수 옮김 / 샘솟는기쁨 / 2024년 3월
평점 :
(서평) 자연 인간 그리고 하나님
이안 바버 지음 / 김연수 옮김
요즘 기독교 학계에 창조론과 진화론을 함께 아우르고자 하는 유신진화론(有神進化論)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게 제기 되기도 한다. 성경의 문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창조론과 무신론적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진화론 간의 엄청난 간극을 어떻게 좁혀갈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고 발생된 것이 아마도 유신진화론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면서 이 책을 시작해 봅니다.
이 책의 저자 이안 바버(Ian Barbour, 1923~2013)는 핵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이다. 진화와 양자물리학에 기초하여 이 세계가 ‘결정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세계’가 아니라 ‘총체적이면서 유기적인 세계’임을 주장했다. 또한 화이트 헤드의 급진적 경험론을 수용하면서 세속 신학에 반응하여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추진하면서 1999년에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자신의 학문 여정을 “나는 20대에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데에, 30대에는 종교학을 가르치는 일에, 40대에는 ‘과학과 종교’를 연결하는 일에, 50대에와 60대에는 ‘기술과 윤리’를 연결하는 일에, 그리고 70대에는 ‘진화와 인간의 본성과 환경윤리’를 연구하는 데에 헌신했다.”고 회상하였다.
p. 17 들어가는 말에서 오늘날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논함에 있어서 네 가지의 견해들이 널리 수락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갈등 모델(Conflict), 독립 모델(Independence), 대화 모델, 통합 모델(Integration)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생명 과학들(biological sciences)이 갖는 신학적 함의들을 다루었다고 한다(p. 19).
이 책의 구성은 「1. 들어가는 말 2. 하나님과 진화 – 진화해 나가는 다윈주의, 생물학적 과정들, 자연 속에서의 하나님의 활동하심에 간한 여러 모델들, 과정 신학에서의 하나님의 활동. 3. 진화와 유전학 그리고 인간 – 인간의 진화, 신학이 말하는 인간, 유전적 결정주의와 인간의 자유. 4. 신경과학과 인공지능 그리고 인간 – 신경과학과 자아, 신학이 말하는 인간 자아, 인공지능과 인간, 의식에 대한 철학적 해석들, 과정 철학. 5. 과정 신학적 관점에서 보는 하나님과 자연 – 역사적 배경, 하나님의 자기 제한, 과정 신학. 6. 신학과 윤리학 그리고 환경 – 역사적 배경, 하나님과 자연, 인간과 자연, 정의와 기술 그리고 환경」 목차만 보아도 이 책의 저자가 과학과 신학, 신학과 과학에 대한 조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p. 118 이후에 다루고 있는 원죄에 대한 부분에 대한 내용 중 “오늘날 우리는 창세기의 메시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담의 이야기를 상징적인 해석으로, 즉 무지(innocence)에서 책임성 내지 죄로 나아가는 모든 인간의 여행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후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죄를 소외됨(estrangement)의 세 차원과 동일시함, 죄라는 개념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할 것을 제안한 필립 해프너(Philip Hefner)의 죄를 유전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문화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 사이의 투쟁과 동일시함, 사회생물학과 원죄 교리를 비교하면서 흥미로운 글을 쓴 페트리샤 윌리암스(Patricia Williams)의 원죄에 대한 정의를 소개하고 있다. 사실 상경학자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함 이었다. 그것도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마음에서 시작된 불순종이었다. 이러한 범죄가 후손들에게 어떻게 전가되었는가를 과학자들이나 일부 신학자들은 유전학적인 접근을 통해 밝혀내려 애썼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접근이 과정신학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p. 219 “과정신학자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제한하는 것’과 ‘하나님의 자발적인 자기 제한’을 동일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전능 개념을 보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표기하기로 결정하신 선택 사안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다른 존재들을 억압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능을 다른 존재들에게 위임하셨다는 해석이 생겨났다. 이렇게 신적 권능의 우주적 범주를 부이하지 않은 채 그 권능의 본질을 재규정함으로써 하나님의 전능과 무능(impotence)에 대해서 하나의 대안이 마련이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이러한 의견은 고전적인 신관인 하나님은 이 우주의 절대적 통치자이시다.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영원한 의지에 따라서 예정되어 있다는 의견이 네 가지 문제들로 인해 도전을 받고 있음에 대한 방안이라고 한다. 네 가지 문제는, 첫째, 과학과 신학에서 이해하는 자연의 순전성(integrity)의 문제이고, 둘째는, 악과 고난과 인간의 자유의 문제이며, 셋째는, 기독교인들의 십자가에 대한 이해이고, 넷째는, 가부장적 신관에 대한 여성 신학자들의 비판이라고 하였다. 이런 네 가지의 문제가 고전적인 신관에 도전하였기에 상기와 같은 과정신학자들의 의견이 돌출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문제는 사람들의 현실적 삶의 환경에 많은 의문과 더불어 석연치 않음을 가져오게도 함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과정신학자들의 견해를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의 내용은 매우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항들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학과 과학의 조화가 과연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어떠한 부분에서 얼마만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의 신학적 사유에서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변함이 없으시고 이 세계에 의해서 영향 받지 많은 분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이러한 견해들이 도전 받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음은 사실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성경의 창조 사건을 과학적으로 전부 입증해 낸다거나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함 자체가 무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모든 역사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창조 계획도 포함) 그분의 뜻이 이루어져 간다고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견에 얼마만큼 동의할 수 있을까?
성경 말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젊은 지구론’과 ‘늙은 지구론’이 단지 사람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말하고 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유신진화론 또는 과정신학을 단호하게 단절해야만 하는 걸까 아니면 절충함을 통해 어느 선까지 받아드려야만 하는 걸까?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혼란스럽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시며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의 문화명령에 충실하게 답하고 실천해야 함이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이라 여기며 자연 환경을 아름답게 잘 가꾸어 가길 힘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