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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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선물로 받은 책. 선물로 받았지만 제목은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오랫동안 책을 펼치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우지만 고양이가 나오는 작품을 그리 좋아하진 않고, 우아한 밤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손보미 소설이어서 받고 기분이 좋았다. 손보미는 좋아하니깐. 읽어 본 작품은 많지 않았지만 학교 수업시간에 <폭우>를 읽고 감탄한 기억이 있어서 이 책도 언젠간 읽어보겠노라 생각하고 책장에 고이 두고 모시다가... 올 봄에야 읽어보게 되었다. 


여기 실린 <임시교사>와 <산책>은 젊은작가상에 실렸을 때 이미 읽어본 소설이었다. <산책>은 처음 읽을 때도 결말부분에서 당황스러웠는데, 이번에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그 당황스러움이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인 것 같다. 이 당황스러움을 더 잘 알고 싶어서 또 읽어보고 싶게 만들지만.. 귀찮아서 또 읽진 않음.  <임시교사>는 다시 읽으니 더 좋았다. <임시교사>에서 인물들이 갖는 태도가... 어느 정도 교양있는 사람이 갖기 쉬운 태도인 것 같다.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지만, 사실은 내가 이해해야지, 받아들여야지하는 약간의 오만함이 깃들어 있는 태도. 나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이런 태도를 가질 때가 종종 있고, 나중에 사실 이게 다 나의 오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부끄럽게도 내가 하는 생각은 아 그때 한 소리 안 얹길 잘했다는 생각... 인간이란 왜이렇게 치졸한지. 그래도 남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니깐 이런 오만함에는 관대해도 괜찮다고 본다. 어쩌면 바깥으론 무시 당해도 속으로는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자기 본능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런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약간의 오만함은 오히려 필요한 것이 아닐까. 


<고귀한 혈통>과 <죽은 사람(들)>은 기대 없이 읽었는데 몰입해서 읽었다. 막 엄청 재밌었던 건 아닌데 독자를 계속 붙잡아두게하는 힘이 있나보다. 그런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아... 그럼 내가 몰입해서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에 실린 <고양이의 보은>은 재밌게 읽었다. 내용도 대충 기억난다. 무엇보다도 설정이 재밌었다. 눈물을 계속 흘리는 설정도, 주인공이 작가인 설정도, 그게 묘하게 손보미와 관련 있어보인다는 점도, 물고기 안과라는 이름도 귀엽고 재밌었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 건 무척 괴롭고 성가신 일일 것 같은데, 대신 운다는 건 어떤 것일까. 눈물의 씨앗을 공유한다는 걸 모르는 채로 대신 울기만 하는 삶은 조금 애처롭다.


"그래, 나의 아가씨와 넌 눈물의 씨앗을 공유하고 있어. 눈물의 씨앗 하나를 함께 사용한단 말이야. 네가 그곳에서 그토록 운이 좋게, 울 만한 일이 없게,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이곳 세계에서 너의 눈물을 다 가져와버렸기 때문이야. 아가씨가 너의 눈물을 대신 다 흘려버렸기 때문이라고." (p.256)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책에 실린 단편을 하나씩 읽었다.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히면 단편 소설에서 새로운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다시 전개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느정도 도움이 되기도 했고, 감흥 없이 심심하게 읽은 작품도 있었다. 단편집에 실린 모든 소설이 마음에 들기란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그냥 딱 기대한만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손보미를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그의 작품의 결이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도 이번에 읽으면서 알게 되었네. 이 소설집은 퇴근 후에 학교 열람실에서 읽기도 했고, 주말 아침에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앉아서 햇볕 아래에서 따뜻한 치즈 크로크무슈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읽기도 했다.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원래 나는 스타벅스에 잘 안가는데, 스타벅스가 좋아지게 된 것도 이 책 덕분이지.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와 못 본지도 오래됐다. 반년이 훌쩍 넘은 거 같네. 오랜만에 다시 연락해보아야겠다. 만나면 드디어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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